[기고] 보험산업에서 '소버린 사태' 재현 막아야

2023. 1. 4. 17:2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교보생명과 외국계 사모펀드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소송은 2003년 국내 자본시장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소버린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소버린은 당시 검찰 수사 등으로 위기에 처한 SK(주)의 주식을 매입하면서 행동주의 펀드로서 시장의 환영을 받았으나, 곧 그룹의 경영권을 빼앗으려는 의도를 드러냈고 끝내 투자금의 4배인 1조원의 수익을 챙기고 떠났다.

어피니티는 교보생명의 지분 24%를 인수한 동반자적 관계였지만 2018년 시장가치보다 2배 이상 높은 주당 41만원에 풋옵션(주식을 특정 가격에 되팔 권리) 행사를 시도하면서 교보생명과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분쟁의 핵심인 풋옵션의 적정 행사 가격은 교보생명이 상장하면 자연스럽게 정해지겠으나, 2대 주주인 어피니티는 상장을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기업공개(IPO) 이후 시장가치가 41만원에 크게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고 풋옵션을 밀어붙이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만약 어피니티가 원하는 가격으로 풋옵션을 행사하면, 최대주주가 감당할 수준을 넘어 끝내 교보생명의 경영권이 넘어갈 수도 있다.

여느 기업보다도 보험사에서 책임경영이 중요하다. 보험의 손익이 장기에 걸쳐 나타나는 특성 때문에 선진국 보험사의 대주주는 최고경영자(CEO)에게 눈앞의 매출보다 긴 호흡으로 수지 안정화와 자산운용을 꾀하도록 요구한다. 하지만 우리 보험업계 CEO는 그야말로 '임시직'이다. CEO는 단기 실적주의 유혹에 빠지고, 그 결과 무리한 상품 개발과 불완전판매, 고위험 자산운용 등을 초래해 끝내 보험사의 부실과 계약자 피해를 낳기 마련이다.

그런데 보험사가 재무적투자자(FI) 손에 넘어간 사례를 보면 책임경영과 멀어지는 경향을 보여왔다. FI가 보험사 지분을 되팔 때 오로지 가격만 볼 뿐, 업(業)에 대한 이해나 책임감은 안중에도 없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몇몇 보험사 인수·합병(M&A)은 횡령 및 조세포탈 후 황제노역으로 유명한 건설사 회장, 업의 이해 없이 자신의 잣대를 들이댄 은행, 자본력도 없이 무리하게 인수전에 뛰어든 PEF 등에 의해 이뤄졌다. 이들이 인수 후 가격덤핑, 부실 인수심사, 우량자산 매각 등으로 손실 물타기에 주저하지 않았고 끝내 회사의 장기가치 훼손과 재무건전성 악화를 가져와 소액주주와 계약자에게 손해를 끼치는 일이 적지 않았다. 매각 차익이나 막대한 자산운용에 흑심을 품은 이들에겐 업의 본질인 상부상조나 사회 안전망 역할은 애초에 관심 밖이었다. 이런 손바뀜을 겪은 보험사들은 지금까지 부실이나 보험 민원이 많은 곳이란 꼬리표가 달려 있다.

지금 교보생명에는 20년 전 국민이 보여줬던 SK그룹에 대한 지지가 필요하다. 이는 교보생명이 건실한 대형 보험사이거나, 항일독립과 민족자본 형성의 기업가 정신을 실천했던 설립자를 뒀거나 임직원 4000여 명의 고용 불안 때문도 아니며, 국민들의 지식 성장을 위해 수익성이 떨어지는 교보문고를 운영해온 회사이기 때문도 아니다. 보험사 중 유일하게 오너 경영 아래 있는 만큼 보험업의 책임경영이 정착해 타 기업의 모범 사례가 되도록 좀 더 지켜볼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보험산업의 선진화나 소비자 보호는 규제나 호소보다는 책임경영이 가능한 지배구조에서 출발해야 한다. 어피니티와 교보생명의 분쟁 사태가 시장에서 합리적으로 조속하게 해결되기를 바란다.

[김재현 상명대 글로벌금융학부 교수]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