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칼럼] 누가 진보인가
기득권 옹호당이 진보 자처
혁신과 개혁 지지하는
야당의 진보 경쟁 기대한다
보수주의(conservatism)는 현재 상황을 안정적인 사회로 보고 점진적 변화를 중시한다. 과거에 축적된 전통과 경험을 존중해 오히려 급격히 변할 경우 부작용을 걱정한다. 반면 진보주의(progressivism)는 기존 체제나 제도를 바꿔 새로운 사회를 추구한다. 이 때문에 역사가들은 인류사가 진보의 역사라고 한다. 그러나 진보를 자처하는 민주당을 보면 진보의 분위기를 감지하기 힘들다. 기득권 세력에 대항해 약자 이익을 옹호한다는 것도 진보의 주요 어젠다인데, 이런 어젠다도 보이지 않는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당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큰 요인이기도 하지만 정부·여당과 달리 개혁 어젠다를 내놓지 못하면서 어젠다 설정에서 뒤처지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보수정당으로 불리는 여당이 오히려 개혁적인 느낌이다. 노동개혁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화물연대 파업 때부터 노동개혁을 본격 강조하기 시작했다. 지난 1일 신년사에서도 노동개혁을 비롯한 3대 개혁을 재차 피력했다. 지난 2일 정치권과 경제인 신년인사회에 이어 3일 새해 첫 국무회의에서도 노동개혁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특히 기득권과 손을 잡지 않겠다고 천명한 윤 대통령의 신년사는 눈여겨볼 만하다. "기득권의 집착은 집요하고 기득권과의 타협은 쉽고 편한 길"이라고 언급한다. 오히려 대통령은 약자 편이라고 선언한 셈이다. 진보가 선점한 '약자'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이다.
약자를 위한 분배와 복지 정책이 진보정권에서는 최우선 순위다. 그러나 정책에서도 승패가 갈리면서 진보 입지는 줄어든다. 지난 정부에서 시행한 소득주도성장은 성장정책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분배나 복지 정책에 가깝다. 대표적인 게 급속한 최저임금 인상이다. 약자를 위한 정책이지만 단기 일자리의 대폭 축소로 결론이 난다. 사업자들이 인건비 절약을 위해 아르바이트 고용을 확 줄인 결과다.
진보정권이라면 핵무기를 반대해야 하는데, 북한 핵무기를 제거하기보다는 탈원전 정책을 펼친다. 그 여파로 전기요금이 인상되고 취약계층이 피해를 볼 판이다. 약자는 늘 포섭 대상이지만 결과적으로 행복하지 않았던 것이다. 진보로 포장한 정부는 약자를 위한다며 정부의 시장 개입을 당연시한다. 시장경제에서 제도를 바꾸거나 개혁을 단행하기 위한 해법이 별로 없기 때문에 선택하는 방식이다. 과거 사회주의 노선을 지향하던 진보에서 탈피하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진보는 결국 포퓰리즘에 편승한다. 나라의 재정 건전성은 별로 관심이 없고 퍼주기식 지원에 나선다. 과거 보수정권에서 성장을 중시하는 정책으로 나라 살림을 키워 놓으면 성장정책으로 포장된 분배정책으로 나라 살림을 축낸다. 더욱이 진보정당이라면 평등과 분배 외에도 인권을 중시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민주당의 북한 인권에 대한 발언은 매우 소극적이다.
이러니 진보라는 단어를 독점한다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이제 진보와 보수라는 이분법도 요즘 정치와는 거리가 멀다. 진보와 보수라는 용어는 시대에 따라 변하는 상대적 특성을 가진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관점을 놓고 좌파와 우파로 분류하는 게 더 어울린다. 좌파와 우파에 각각 진보와 보수가 따로 있다고 하는 게 맞는다. 혁신적이고 개혁적인 정책으로 중도파의 지지를 받는 정당이야말로 진정한 진보라 할 만하다. 요즘 시점에선 진보 우파 또는 개혁적 보수가 시대정신일지도 모른다.
과거나 지금도 우리 중 많은 사람이 지지했거나 지지하고 있고, 그로 인해 대한민국에서 여러 차례 집권했던 민주당. 그 정당이 환골탈태해야 한국 사회 변화를 가져오는 진정한 진보 경쟁이 시작될 것이다. 이재명 대표의 신년 기자회견이 기대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명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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