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이코노미스트] 脫성장 시대 리더의 덕목
첫째 회복력과 실행력
둘째 투자 안 미루는 용기
셋째 신사업 진두지휘
넷째 신기술에 대한 이해
"내가 임원이 된 이후 지난 10년 동안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시장은 계속 호황이었고, 성장의 시대였다. 지금 겪고 있는 인플레이션과 예상되는 불황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것이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기업 경영이 필요한 상황이다."
필자가 최근 연 수조 원 매출 규모의 대기업 CEO에게서 들었던 말이다. 맥킨지가 최근 한국, 일본, 중국, 인도 등 아시아 100개 기업 CEO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단 11명만이 기업의 고위 임원으로서 현재와 같은 위기를 경험한 적 있다고 답했다. 90%의 CEO가 책임 있는 임원으로서 심각한 위기를 겪어보지 않았고, '성장의 시대'만을 경험해왔다는 것이다.
지난 성장의 시대는 기업에 많은 '자유'를 제공했다. CEO들은 생존에 대한 고민 대신 위험을 수반한(Risk taking) 많은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었다. 디지털화, ESG, 대규모 M&A, 해외 시장 진출 등 기업이 새로운 S커브를 만들어내기 위해 필요한 요소들이었다. 이에 필요한 자금은 시장에 차고 넘쳤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얼마나 깊고 길지 모를 위기에 대비해 기업의 본질적인 경쟁력 강화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맥킨지가 경제적 혼란기에 CEO가 갖추어야 할 첫 번째 덕목으로 '회복력(Resilience)과 실행력'을 꼽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기업은 코로나로 인한 공급망 붕괴,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영향을 면밀히 파악하고 재무, 운영, 기술, 조직, 비즈니스 모델, 평판 등에 있어 세밀한 계획을 세우고 더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예를 들어 구매 조직은 지금까지 설계 및 생산에 필요한 부품과 소재를 적시에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조달하는 것이 주 역할이었다. 그렇지만 공급망 붕괴의 시기에는 부품·소재 확보에 대한 위기를 미리 감지하고, 설계와 생산에 대한 대체 방안을 요구하고, 심지어 이로 인한 상품 기획의 변경까지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경제적 혼란기에 CEO가 갖추어야 할 두 번째 덕목은 '용기'다. 어려움이 예상될 때 가장 쉬운 결정은 계획을 미루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답이 아니다. 향후 시장 성장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투자를 무작정 미룰 것이 아니라 선택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고급 승용차로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면 형편이 어려워졌다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대중교통이나 하다못해 자전거를 타고라도 여행을 떠나야 한다. 리더는 당장 내년도 걱정해야 하지만 10년 후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자제품 유통 업체 베스트바이의 전 CEO 허버트 졸리는 CEO로 취임하던 해에 베스트바이가 17억달러의 손실을 보며 벼랑 끝에 몰려 있었다. 하지만 졸리는 용기 있게 기존의 온라인 유통에서 오프라인 매장으로 전환해 고객들의 경험에 초점을 맞췄고, 그 결과 졸리가 물러날 때까지 베스트바이 주가는 330% 급등했다.
세 번째 덕목은 '신사업'에 대한 진두지휘다. 미국 대기업 CEO의 절반 이상이 신사업 개발을 현재 자신들의 최우선 순위 3가지 과제 중 하나로 꼽는다. 5년 후에는 자신들 기업 매출의 50% 이상이 지금 하고 있지 않은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 비즈니스 모델에서 창출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신사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신기술'에 대한 이해와 탐구가 CEO가 갖춰야 할 네 번째 덕목이다. 바야흐로 모든 기업은 소프트웨어 회사가 돼가고 있다. 최근 3년간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15% 이상 증가한 기업 중 70%가 자체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통해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기업은 디지털을 통해 개별 소비자에 대한 최적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다양한 채널을 통해 24시간 고객과 소통한다. 기업이 창출하는 가치의 대부분이 소프트웨어로부터 나오는 시대적 변화 속에 CEO는 자신의 기업가치 향상을 위한 기술을 끊임없이 찾고 이식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탈성장의 시대에 기업 리더는 기업 내실을 다지면서 여전히 성장을 추구해야 하는 이중의 책임을 지고 있다.
[유원식 맥킨지 시니어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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