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경질 후폭풍은 어디까지, 우승·흥행·김연경을 모두 담기 어려운 흥국생명

이정호 기자 2023. 1. 4.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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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찬 전 감독. 한국배구연맹 제공



흥국생명은 V리그 출범 초기부터 여자배구 인기를 주도했다. 인기와는 반대로 ‘사건·사고가 많은 팀’이라는 꼬리표도 늘 따라붙었다. 2023년 새해 V리그가 시끄럽다. 진원지는 흥국생명이다.

흥국생명은 지난 2일 “구단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와 함께 권순찬 감독과 김여일 단장의 동반 사퇴를 발표했다. 시즌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는 감독을 급작스럽게 물러나게 한 배경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사실상 경질된 권순찬 감독은 “단장의 선수 기용 지시(개입)를 받아들이지 않았던게 이유일 것”이라고 분노했고, 진흙탕 싸움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사실 어느 종목이나 시즌을 치르면서 현장을 지휘하는 감독과 팀을 운영하는 구단간 갈등은 늘 있어왔다. 최근 트렌드를 보면 구단이 원하는 방향성에 맞춰 감독을 선임해 장기적인 플랜을 갖고 운영하는 팀들도 있는 만큼 ‘방향이 맞지 않아’ 결별하는 것 자체를 이상하게 볼 일만은 아니다.

하지만 팀이 잘 나가는 상황에서 팀 운영에 큰 문제가 없었던 권순찬 감독까지 교체하는 흥국생명의 결정에 파장이 크다. 무엇보다 흥국생명이 2018~2019시즌 이후 정규시즌·챔피언결정전 우승 도전에 그 어느 때보다 가까워진 시점이라는 데서 이해하기 어렵다. 지난 시즌 6위였던 흥국생명은 현재 선두를 다투고 있다. 독주하던 선두 현대건설(승점 45점·16승2패)을 바짝 추격해 리그 2위(승점 42점·14승4패)를 달리고 있다. 지난달 28일에는 현대건설을 올 시즌 처음으로 꺾으면서 분위기도 끌어올렸다. 부상자가 속출한 현대건설을 추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구단 내부나 배구계에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시즌 반환점을 돈 정규리그 레이스에서 흥국생명의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면, 일반적으로는 일단 감독에게 힘을 실어주는게 일반적이다. 평가는 시즌 뒤에 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흥국생명은 반대로 감독까지 날려버리는 초강수를 뒀다.

흥국생명은 우승 기회 뿐 아니라 팬들까지 잃을 수 있는 결정을 했다. 여자배구 흥행 열기에도 찬물이 될 수 있다. 흥국생명은 1년 만에 V리그로 돌아온 ‘월드 스타’ 김연경을 앞세워 리그 흥행을 주도하고 있는데,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팬 여론도 싸늘하다. 흥국생명은 지난 몇 시즌 사이에도 팀 내 불화설, 이재영-이다영 자매의 학폭 문제 등에 부적절한 대처로 화를 키워왔던 경험이 있다.

피해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왔던 선수들과 프런트, 그리고 팬들이 고스란히 안는다. 1970년대 전신 태광산업부터 오랜 기간 여자배구를 지켜온 흥국생명이지만, 많은 팀들이 탐내는 우승, 흥행, 김연경이라는 세 가지 모두를 품기에는 그릇이 작아 보인다.

이정호 기자 alp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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