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명단 없었다' 이상민 장관의 거짓말 증거 입수... 서울시 내부 자료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 명단을 갖고 있지 않았다"던 이상민 행정안전부(이하 행안부) 장관의 주장을 뒤집는 정황이 확인됐다. 행안부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이 늦어도 참사 발생 이틀 후인 지난해 10월 31일 유가족 관련 자료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 각종 자료로 드러났다. 이상민 장관의 국회 국정조사 위증 의혹이 제기된다.
이상민, 경찰·서울시 부인에도 끝까지 '유족 명단 없었다' 주장
이상민 장관은 이태원 참사 직후부터 줄기차게 '행안부엔 유가족 명단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전국에 흩어져 있던 유가족들은 정부를 향해 "유족끼리 만나게 조치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이 장관은 11월 16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행안부는 (유족) 명단조차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연락처는 물론이고요"라고 말했다. 유족 명단은커녕 연락처도 없어 유족과 접촉해 만남을 주선하기 어려웠다는 얘기였다. 이 장관 발언에 대해 행안부 측은 "실무진 차원에서 유족 정보를 일부 갖고 있었지만 장관이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이상민 장관이 '거짓말을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런데 행안부 설명 뒤에도 이상민 장관은 같은 주장을 계속했다. 지난해 12월 27일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1차 기관 보고에서 이 장관은 "(유족) 명단을 서울시에서 갖고 있었는데, 개인정보 보호 때문에 서울시에서 넘겨주지 않는다고 실무자들이 여러 차례 답변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이 "서울시하고 협조를 하든지 방법을 찾으셨어야 되는 것 아니냐"라고 하자 "(서울시가) 명단을 안 주겠다고 하는데 저희가 어떻게 강제로 뺐어 올 수도 없지 않습니까"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이 주장도 곧 뒤집혔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국회 국정조사에 나와 "경찰은 중대본에 유족 연락처를 넘겼다"고 했고, 서울시도 "행안부에 유족 정보를 공유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상민 장관은 "유족 명단을 갖고 있지 않았다"는 주장을 계속 고수했다.
서울시가 행안부로 보낸 '사망자 현황 자료', 사실상 유가족 명단이었다
뉴스타파는 이상민 장관의 주장을 다각도로 검증했다. 경찰과 서울시가 행안부에 넘겼다는 '유가족 관련 정보'를 추적했다. 하지만 경찰에는 문서화 된 자료가 없었다. 지난해 12월 27일 국정조사에서 윤희근 경찰청장은 "개별로 흩어져 있는 유족 정보를 종합해서 일괄적으로 취합, 관리하진 않았다"고 말한 바 있다.
반면 서울시에는 문서화 된 자료가 있었다. 지난해 12월 29일 국정조사에서 김상한 서울시 복지정책실장은 "유가족 연락처가 담긴 특정 문서를 행안부에 줬다"고 했다. 아래는 김상한 실장의 국정조사 발언 내용.
유가족 연락처를 저희들이, 사망자 현황 자료를 다 정리를 해서 행안부에다가 자료를 공유했습니다. 저희들이 정확하게 (지난해) 10월 31일부터 세 번에 걸쳐 자료를 제공했습니다.
- 김상한 서울시 복지정책실장 / 지난해 12월 29일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2차 기관보고
뉴스타파는 서울시가 행안부에 넘겼다는 '사망자 현황 자료'를 확인했다. 행안부에 세 번에 걸쳐 자료를 줬다는 김상한 실장의 주장은 사실이었다.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서울시의 이메일 전송 내역에 따르면, 서울시 안전총괄과는 지난해 10월 31일 오전 8시 11분 행안부 사회재난대응정책과로 "이태원 사고 광역자치단체별 사망자 현황(2022.10.31 03시 30분 기준)"이라는 제목의 엑셀 파일을 보냈다. 행안부 사회재난대응정책과는 이태원 참사 이후 의료비·장례 지원 등 업무를 담당한 부서다. 서울시 안전총괄과는 11월 1일 "이태원 사고 서울시 자치구별 사망자 현황(2022.11.1 06시 기준)" 파일을 행안부로 보냈고, 11월 2일에도 "이태원 사고 사망자 현황_내국인(2022.11.2 15시 기준)" 파일을 전송한 것으로 확인됐다.
뉴스타파는 이 사망자 현황 자료의 '문서 양식'을 입수했다. 서울시는 희생자·유족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사망자 현황 자료에 들어있는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원문 자료에 있는 양식은 공개했다.
사망자 현황 자료의 양식에는 모두 유가족 정보를 기재하는 공간이 있었다. 먼저 지난해 10월 31일자 '사망자 현황 자료' 파일에는 희생자의 이름, 거주 광역자치단체, 주소, 성별, 생년월일, 국적, 안치된 병원, 장례식장과 함께 유가족 연락 여부, 유가족 연락처(이름·가족관계 포함), 이송지를 적는 공간이 있었다. 11월 1일과 2일에 보낸 자료 양식에도 희생자별로 유가족 연락 여부와 유가족 연락처(이름·가족관계 포함)를 적는 공간이 있었다. 서울시 측은 "유가족 연락처를 적는 공간의 경우 유가족의 성명·연락처가 모두 있는 것도 있지만, 가족관계와 연락처만 있는 경우, 이름 없이 연락처만 있는 경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여하튼 분명한 사실은 서울시가 행안부에 건넨 사망자 현황 자료에 '유가족 연락처는 빠짐없이 적혀 있었다'는 점이다. 또 희생자의 이름과 지역·병원 등 정보까지 들어 있었다. 서울시가 행안부로 보낸 '사망자 현황 자료'는 사실상 '유가족 명단'이나 다름 없었던 것이다. 이 자료만 갖고도 어느 지역·병원·장례식장에 어떤 희생자의 유족이 있는지 알 수 있고, 충분히 접촉도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10월 31일, 11월 2일 보낸 자료는 각각 '광역자치단체별', '내국인' 사망자 현황이었기 때문에 '전국 단위 유가족 명단'이나 마찬가지였다.
중대본이 배포한 '대전 지역 현황 자료' 입수... 유가족 이름·관계·연락처 모두 있었다
뉴스타파는 한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통해 대전광역시가 갖고 있던 '대전 지역 사망·부상자 현황' 문서도 입수했다. 희생자 장례식장에 파견된 대전시 공무원이 소지하고 있던 것이다.
문서에는 대전 지역 희생자별로 유가족의 이름과 관계, 전화번호가 빠짐없이 적혀 있었다. 빈 공간이 없었다. 심지어 희생자의 직계 가족이 아닌 이모의 이름과 전화번호도 적혀 있었고, 약혼자 이름과 연락처까지 있었다.
확인 결과 이 자료는 대전시가 자체적으로 만든 게 아니었다. 중대본에서 받은 자료에 일부 내용(담당공무원 정보)만 추가한 것이었다. 대전시 관계자는 "중대본에서 주무 부서로 자료를 줬다. 유가족 이름과 관계·연락처가 모두 적혀 있었고, 장례식장도 나와 있었다. 우리는 여기에 담당공무원 정보 정도만 추가했다"고 말했다. 중대본, 즉 행안부에서 처음 자료를 줄 때부터 유가족 정보가 충실히 기재돼 있었다는 것이다.
대전시 자료의 작성 일시는 지난해 10월 31일 오후 2시다. 담당 공무원을 배정하고 내용을 추가해 새로 문서를 만든 게 오후 2시라는 얘기다. 당연히 중대본으로부터는 오후 2시 이전에 자료를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서울시가 행안부(중대본)에 '사망자 현황 자료'를 최초로 준 때는 10월 31일 오전 8시 11분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두 가지 가정이 가능해진다. 10월 31일 오전 8시 서울시가 행안부에 보낸 '사망자 현황 자료'가 처음부터 내용이 상당히 충실해서 행안부는 이를 대전시로 전달만 했을 경우, 아니면 행안부가 서울시의 자료를 보완해 대전시에 줬을 경우다. 어느 경우든 행안부가 10월 31일 오후 2시 이전에 대전 지역의 유가족 이름과 가족관계·연락처가 모두 담긴 자료를 이미 보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행안부, 10월 31일에 '전국 단위 유가족 리스트' 갖고 있었다
행안부는 대전시에만 자료를 준 게 아니다. 지난해 12월 29일 국정조사에서 서울시는 "(유가족 연락처가 담긴 사망자 현황 자료는 서울시에서) 행안부를 통해서 해당 지자체별로 통보됐다"고 했다. 모든 지자체가 행안부로부터 유가족 정보가 담긴 사망자 현황 자료를 받았다는 얘기다.
취재진이 접촉한 세 곳의 지자체도 "10월 31일경 중대본으로부터 대전시와 유사한 자료를 받았다"고 밝혔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이태원 참사 전담 공무원 지정 내역'에 따르면, 대부분의 지자체는 10월 31일 장례·심리치료 지원 업무 등을 담당하는 공무원을 지정했다. 인천광역시 관계자는 "(행안부에서) 자료가 왔을 때 희생자 정보·장례식장, 연락해야 할 유가족 이름·연락처 정도는 적혀 있었던 걸로 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서울시는 지난해 10월 31일부터 세 번에 걸쳐 행안부에 사망자 현황 자료를 보냈다. 여기엔 전국의 희생자별 유가족 연락처가 빠짐없이 들어 있었다.
2) 대전시 자료의 내용·전달경로·작성일시를 종합하면, 중대본(행안부)은 10월 31일에 이미 대전 지역 유가족의 이름과 관계·연락처가 모두 기재된 자료를 갖고 있었다.
3) 복수의 지자체 증언과 전담 공무원 지정 내역에 따르면, 중대본(행안부)은 10월 31일경 각 지자체로 희생자별 유가족 정보(최소한 연락처)가 담긴 지역별 사망자 현황 자료를 배포했다.
결론적으로 행안부는 늦어도 참사 이틀 후인 10월 31일경에는 '전국 단위의 유가족 리스트'를 갖고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행안부 내부 공문에도 나온 '유가족 내역'... 이상민 장관의 위증 의혹
서울시와 대전시 자료 말고도 행안부가 유가족 명단을 갖고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증거는 또 있다. 행안부의 공문 수발신 내역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10일 행안부는 서울시장과 한국지역정보개발원에 "이태원 사고 관련 지방세 감면 대상자 통보" 공문을 보냈다. 여기에는 "유가족에 대한 정보를 붙임과 같이 통보하오니 지방세 감면이 원활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 주민번호 등 민감한 개인정보를 포함하고 있으니 각별히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쓰여 있다. "이태원 사고 관련 사망자 및 유가족 내역" 파일이 붙임 자료로 첨부됐다.
지난해 11월 7일, 행안부 지방세특례제도과는 유족 지방세 감면 정책과 관련해 각 지자체와 법무부에 '가족관계증명서', '사망자 유가족을 확인할 수 있는 서류' 등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세종시와 법무부는 11월 9일 참사 희생자 유가족 정보, 가족관계증명서 등을 행안부로 보냈다.
이렇듯 행안부가 유가족 명단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은 여러 경로를 통해 점점 명백해지고 있다. 이상민 장관의 위증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상민 장관은 지난해 12월 27일 국정조사에서 '국회에서의 증언·감청 등에 관한 법률' 8조에 따라 "진술이나 서면답변에 거짓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서"했다. 같은 법 14조에 의하면, 위증죄 형벌 규정은 징역 1년 이상 10년 이하다.
뉴스타파는 행안부 대변인실을 통해 이상민 장관의 입장을 물었다. "서울시가 행안부에 보낸 '사망자 현황 자료'를 본 적이 있는지", "'유가족 명단이 없었다'는 기존 주장을 바꿀 생각은 없는지" 등을 질의했다. 행안부 대변인실은 "이상민 장관의 발언 취지는 '서울시의 사망자 현황 자료엔 유족 정보가 부분적으로 포함돼 있을 뿐 온전한 형태의 유족 명단이 아니었다는 것'"이라며 "자료 제목도 '사망자 명단'으로 돼 있고, 유족 연락처는 있지만 이름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서울시에서 유족 명단을 안 줬다", "행안부에는 유족 명단이 없다"는 이상민 장관 주장이 거짓말은 아니라는 얘기였다.
이상민 장관은 오는 1월 6일 국정조사 청문회에 또 증인으로 나온다. 이 장관이 "행안부엔 유족 명단이 없었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할지, 아니면 거짓말을 시인할지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이상민 장관이 거짓말을 한 의도가 무엇인지, 어느 단위에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추가로 밝혀져야 한다. 만약 6일 청문회에서도 '유가족 명단이 없었다'는 주장을 계속한다면, 이는 고발 조치는 물론 탄핵의 사유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뉴스타파 홍주환 thehong@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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