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어든 서울시교육청 예산에 사각지대 아이들 지원 줄줄이 끊겼다
교육후견인제·학교밖청소년 교육참여수당 예산 0원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A양(10)과 B군(9), C군(8) 등 3남매는 키르기스스탄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속눈썹이 길고 예쁜 아이들”이지만 드리운 그늘은 짙었다. 첫째인 A양은 직접 112를 눌러 아버지의 폭력 사실을 신고해야 했다. B군은 우물쭈물하며 자꾸 남의 눈치를 살폈다. 막내인 C군는 자기 몸을 함부로 위험 속으로 내던지곤 했다. 부모가 이혼하면서 3남매는 어머니와도 헤어졌다. 그런 3남매를 보살펴준 건 교육후견인 이은정씨(55)였다.
3남매와 이씨는 주말마다 캠핑, 보드게임 등을 하며 놀고 한글 공부를 했다. 어느 날 C군이 이씨에게 “선생님, 우리 끝말잇기 해요”라며 다가왔다. 이씨는 “한글을 전혀 모르던 막내가 한글로 놀이를 할 줄도 알게 됐네 싶어 너무나 뿌듯했다”고 했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가 있는 C군이 약을 먹었는지 매일 확인해준 것도 이씨였다.
이씨와 3남매의 만남은 반년 만에 끝이 났다. 올해 교육청의 교육후견인제 예산이 없어지면서 사업 진행이 불가능해졌다. 이씨는 “방학에 선생님이 놀러 갈게. 빠빠이”라고 쓴 카드로 마지막 인사를 했다. 방학숙제도 봐주고 싶었고 C군이 2학년이 되면 어떻게 자라는지도 보고 싶었지만 어렵게 됐다. 이씨는 “이번 일로 아이들이 또다시 거절당했다고 느낄까 봐 걱정”이라며 “몇 년 동안 방치된 아이들이 어떻게 몇 개월 만에 치유됐겠냐”고 말했다.
지난해 말 서울시의회가 서울시교육청 예산을 5688억원 삭감한 여파로 이달 들어 교육청의 주요 사업 중 상당수가 중단됐다. 특히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학생들과 학교 밖 청소년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제공되던 지원이 하루아침에 끊겼다.
4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위기아동에게 1대1 맞춤형 통합지원을 제공하는 교육후견인제 사업은 예산 문제로 지난달 31일부터 ‘완전 멈춤’ 상태다. 교육후견인제는 가정형편이 어렵거나 도움이 필요한 위기아동을 교육후견인이 직접 만나 돌봐주거나 공부와 진로상담 등을 도와주는 사업이다. 학교 등 여타 기관처럼 ‘1대 다수’로 지원하지 않고 1대1 맞춤형이라는 게 특징이다. 지난해 학생 352명이 교육후견인 214명에게 도움을 받았다. 올해는 예산 4억원이 전액 삭감됐다.
교육후견인 서희경씨(52)는 지난해 애니메이션에 관심 있는 중학생 아이가 꿈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비를 이용해 미술학원을 등록해줬다. 그러나 사업이 중단되면서 아이는 3개월 만에 학원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서씨는 “지속해서 지원이 돼야 아이가 꾸준히 발전할 수 있을 텐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학교 밖 청소년 교육참여수당 예산 8억5000만원도 의회 심사과정에서 전액 삭감됐다. 교육청은 학교 밖 청소년 지원기관 프로그램에 주 2회 이상 참여한 청소년들에게 매달 10만~20만원의 수당을 지급해왔다. 2019년 처음 시작해 지난해에는 4410명이 혜택을 받았다. 수당으로 생계나 학원비 등을 의지했던 청소년들에게는 큰 타격이다.
아르바이트로 생활비와 학원비를 벌면서 실용음악 입시 준비를 하는 D양(18)은 교육참여수당 20만원을 받지 못하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당황했다고 했다. D양은 “지금 하는 아르바이트 시간을 늘려야 학원비를 댈 수 있을 것 같다”며 “제가 조금 더 부지런해야죠”라고 말했다.
교육참여수당이 끊기면서 공교육의 틀 바깥에 있는 학교 밖 청소년들의 소외감이 깊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홈스쿨링으로 두 자녀를 키우는 김윤서씨(48)는 “수당을 받을 때는 ‘우리가 학교를 떠나도 교육청이 우리를 기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원이 끊겼다는 얘기를 듣고 아이들이 ‘우리 이제 찬밥 된 거야’라며 속상해했다”고 말했다.
해당 사업이 당장 재개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4일 “예산 삭감으로 큰 차질을 빚은 사업을 파악 중”이라며 “이를 위주로 오는 2월 서울시의회에 추경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했다.
김나연 기자 nyc@kyunghyang.com,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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