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연 시위에 고무줄 잣대 된 ‘무정차’ 규정…서울교통공사 “문제 없다”면서도 개정 추진
오세훈 “만나지 못할 이유 없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시위를 저지하기 위해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가 ‘무정차 통과’로 대응하면서 승하차 시위에 무정차 결정을 내릴 근거가 자의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교통공사는 이같은 결정을 내리는 데 규정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내부적으로는 관련 규정에 ‘집회·시위’ 조건을 추가하는 개정안을 마련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교통공사가 무정차 결정 근거로 내세우는 규정은 두 가지다. 우선 관제업무내규 제62조는 ‘운전관제는 승객폭주, 소요사태, 이례상황 발생 등으로 승객 안전이 우려될 경우 역장과 협의해 해당 역을 무정차 통과시킬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또 영업사업소 및 역업무 운영예규 제37조는 ‘역장은 승객폭주, 소요사태, 이례상황 발생 등으로 승객 안전이 우려될 경우 상황을 종합관제센터에 보고하고 열차 무정차 통과를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서울교통공사는 지난해 10월29일 발생한 이태원 참사 당시에도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에서 무정차 통과가 이뤄지지 않은 이유와 관련해 “핼러윈 사례는 이 규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한 바 있다.
전장연 시위에 해당 규정을 적용하려면 ‘전장연 시위가 승객폭주, 소요사태, 이례상황에 해당하는지’와 ‘전장연 시위로 인해 승객 안전이 위협받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4일 기자와 통화에서 “(전장연 시위는) 소요사태 및 이례상황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장시간 열차가 한 역에 정차해 있으면 승객이 많이 몰려 인파사고 위험이 있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탑승 시위를 ‘불편 상황’이 아닌 ‘위험 상황’으로 보는 것은 시위를 봉쇄할 목적의 ‘끼워 맞추기식’ 해석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김상철 공공교통네트워크 정책위원장은 “승강장에 화재가 발생하는 등 위급 상황도 아닌데 시위로 인해 승객 안전이 우려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면서 “무정차는 특정 역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배제하는 조치이기 때문에 특수하고 제한적으로 사용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서울교통공사는 기존 규정상으로도 무정차 대응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내부적으로는 관련 규정 개정을 추진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27일 공사가 마련한 개정안에 따르면, 관제업무내규 62조는 ‘관제센터장은 집회·시위 또는 지역축제 등으로 관련 기관의 사전 요청이 있는 경우 역장과 협의하여 무정차 통과를 시행할 수 있다’로 바뀔 예정이다. ‘사전 요청이 없더라도 관련 기관의 책임 있는 자가 긴급하게 요청할 경우’도 무정차 가능 요건으로 추가된다. 무정차 조건이 ‘소요사태 등 승객 안전이 우려되는 경우’에서 ‘집회·시위 또는 지역축제 등으로 요청이 있는 경우’로 바뀌는 것이다.
서울교통공사는 내부 의견 수렴 후 국토교통부 승인을 거쳐 올해 상반기 중 개정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규정이 바뀌면 전장연 시위 상황에서 무정차 통과가 더 쉽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공사 관계자는 “전장연 시위를 막기 위해 개정하는 것은 아니고 기존 규정을 더욱 명확히 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한편 전장연 측은 4일 오후 김석호 서울교통공사 영업본부장과 면담을 진행한 뒤 “오세훈 서울시장과 면담 요청에 대한 답을 기다리며 19일까지 탑승 시위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오 시장은 이날 밤 9시50분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전장연,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면담에 응할 의사가 있음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서울교통공사는 앞서 ‘열차 1대에 휠체어 1대씩, 지하철 보안관을 대동해 이동하면 승차를 허용해주겠다’고 제안했으나 전장연 측은 “장애인의 권리를 무시하는 관치”라며 강력 반발했다.
강은 기자 e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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