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없는 한반도 시작” 文 자평한 9·19 군사합의…北 연이은 도발에 존폐 기로

尹 “북한이 우리 영토 침범 도발 시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 검토” 지시
앞서 文, 그동안 남북 간 합의에 ‘정부 바뀌어도 마땅히 존중해야 할 약속’ 강조

지난 2018년 9월20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임석한 가운데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북한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문에 서명하고 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무인기 영공 침범 등 북한의 연이은 도발로 문재인 정부 시절 수립된 ‘9·19 군사합의’가 결국 체결 4년여 만에 존폐의 기로에 섰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퇴임 후에도 9·19 군사합의 등 그간의 남북합의를 두고 ‘정부가 바뀌어도 마땅히 존중하고 이행해야 할 약속’이라며 강조했었지만, 북한의 잇따른 도발로 사실상 합의가 유명무실해지자 윤석열 정부가 효력 정지 검토로 시선을 돌리면서다.

9·19 군사합의는 문재인 정부 시기인 2018년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때 남북이 모든 군사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한 합의이며, 정식 명칭은 ‘판문점선언 군사분야 이행합의서’다. 남북 접경지대에서 우발적 무력충돌을 막자는 게 핵심이며, 군사분계선(MDL)을 기준으로 비행금지구역·포병사격 및 연대급 이상 야외기동훈련 금지구역·완충수역 등을 설정했다.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가안보실·국방부·합동참모본부·국방과학연구소로부터 무인기 대응 전략을 보고받는 자리에서 “북한이 다시 우리 영토를 침범하는 도발을 일으키면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김은혜 홍보수석이 이날 브리핑에서 전했다.

윤 대통령은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감시, 정찰과 전자전 등 다목적 임무를 수행하는 합동 드론부대를 창설하고 탐지가 어려운 소형 드론을 연내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라”고 지시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해 10월14일 북한이 포병 사격으로 군사합의를 위반한 데 대해 “검토하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 시절 체결된 군사합의 효용성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뉘앙스로 말했는데, 이번에 합의 폐기 가능성이 거론되는 점으로 미뤄 북한의 숱한 도발과 위반에도 준수를 촉구해온 우리 정부가 무인기 영공 침범으로 북한이 선을 크게 넘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지난해 10월14일·18일·19일·24일, 11월3일, 12월5일·6일 잇따라 합의에 따른 동·서해상 북방한계선(NLL) 북방 해상완충구역 안으로 포병 사격을 가했고, 지난달 26일에는 소형 무인기 5대를 MDL 이남으로 침투시켜 또다시 9·19 군사합의를 위반했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해 ‘9·19 군사합의 4주년 기념 토론회’를 하루 앞두고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측을 통해 공개된 서면 축사에서 그동안 남북 간의 여러 합의에 대해 “정부가 바뀌어도 마땅히 존중하고, 이행해야 할 약속”이라고 강조했었다.

문 전 대통령은 축사에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역지사지하며 허심탄회한 대화와 협상으로 만들어낸 역사적 합의”라고 의미를 치켜세운 후, 북한을 향해서도 “합의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며 “합의 준수를 위해 남북이 함께 노력해나갈 때 신뢰가 쌓일 것이며, 한 걸음 더 나아간 대화의 길을 모색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9·19 군사합의에 관해서는 “반목과 대립, 적대의 역사를 끝내겠다는 의지를 담아 ‘전쟁 없는 한반도의 시작’을 만방에 알렸다”며 “남북군사합의서를 부속합의서로 채택해 군사적 위험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실천적 조치를 합의했다”고 문 전 대통령은 평가하기도 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