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치솟는 와인 수익률 매력 있지만… 투자에 취하는 건 금물 [김기정 컨슈머전문기자의 와인이야기]
와인은 '시간'을 이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재화입니다. 일반적인 상품, 특히 식품은 생산된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가격이 내려갑니다. 반면 와인은 시간이 지날수록 값이 오르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물론 모든 와인이 다 그런 것은 아니고 무조건 오래된 와인이 좋은 와인도 아닙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 부르고뉴 보졸레 지역에서 생산되는 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는 생산된 지 6개월 이내에 소비할 것을 권합니다. 반면 '시간'을 이기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와인이 부르고뉴 '그랑 크뤼' 등급 와인입니다.
최근 들어 부르고뉴의 최고 등급 와인인 그랑 크뤼 가격이 치솟으면서 뉴욕에서도 한 병에 200달러 밑으로는 '1등급 버건디'를 찾기가 힘들어졌습니다. 한국에선 올드 빈티지 부르고뉴 그랑 크뤼는 아예 구하기조차 힘든 '희귀템'이 돼 버렸습니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도 와인을 '투자' 대상으로 보는 비즈니스 모델이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마침 프랑스 부르고뉴 와이너리 오너인 파비앙 장테가 한국을 방문해 '투자 상품'으로서 와인에 대한 의견을 나눴습니다. 그는 도멘 장테 팡시오(Domaine Geantet Pansiot)를 설립한 에드몽 장테의 손자입니다. 도멘 장테 팡시오는 1954년 에드몽 장테가 프랑스 부르고뉴의 주브레 샹베르탱(Gevrey-Chambertin)에 설립한 와이너리입니다. 지금은 주브레 샹베르탱, 샹볼 뮈지니(Chambolle-Musigny), 모레이 생 드니(Morey-St-Denis), 사비니 레 본(Savigny-Les-Beaune) 등에 약 20㏊의 포도밭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도멘 장테 팡시오는 와인 생산자의 이름, 주브레 샹베르텡은 지역명입니다. 도멘 장테 팡시오는 부르고뉴의 최고 등급인 그랑 크뤼 등급 포도밭을 소유해 그랑 크뤼 샹베르탱, 그랑 크뤼 샤름 샹베르탱 등 1등급 와인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장테 대표는 "부르고뉴 그랑 크뤼 와인은 안전한 투자처라고 생각한다. 등급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나 자신도 부르고뉴 포도밭을 매입하는 데 큰 자산을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생산자에 따라 좋은 포도밭에서 나쁜 와인이 만들어질 수는 있다. 하지만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밭이 필수"라고 강조했습니다.
물론 부르고뉴의 모든 와인이 안전한 투자처는 아닙니다. 와인이야기 1회에서 언급한 것처럼 '숙성 잠재력'이 있는 와인이 시간을 이길 수 있고 동시에 투자가치가 있습니다. 와인을 병에 담아 숙성시키는 것을 '병 숙성'이라고 부르는데 병에서 와인이 숙성되는 동안에도 맛이 좋아지면 '숙성 잠재력'이 있다고 표현합니다. 투자자로서는 '재고' 부담 없이 와인 창고에 쌓아두는 목적으로도 와인을 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대략적인 투자 척도는 '금리'입니다. 병 숙성 기간에도 와인 가격이 올라 런던 금융시장의 단기금리인 리보(LIBOR) 금리보다 수익률이 높다면 투자자들은 은행에서 돈을 빌려 와인 투자가 가능합니다. 역설적으로 이런 이유로 재고 부담이 없는 와인이 비쌉니다. 매입해 놓고 안 팔려도 기다리면 되니까요.
부르고뉴 와인의 가격을 결정 짓는 와인의 등급은 사실상 '포도밭'의 등급입니다. 병당 5000만원이 넘는 와인인 '로마네 콩티'가 생산되는 포도밭도 부르고뉴 그랑 크뤼 등급 포도밭입니다. 같은 와인 생산자가 만들었어도 그랑 크뤼 등급 포도밭에서 나온 와인과 바로 경계하고 있는 밭에서 생산된 포도로 만든 와인은 가격이 천지 차이입니다. 실제 와인 맛도 신기할 정도로 다릅니다.
결국 부르고뉴 와인은 '테루아르'를 빼놓고는 얘기할 수가 없습니다. 테루아르(Terroir)는 '토양'이란 뜻의 프랑스어로 와인 생산에 영향을 주는 땅과 기후 조건 등을 의미합니다. 테루아르는 프랑스 부르고뉴 와인의 기가 막힌 마케팅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랑스 와이너리들이 테루아르 개념을 강조하면서 신대륙 와인들은 감히 넘볼 수 없는 가격 차를 이뤄 냈습니다. 포도 품종이 같아도 결국 포도가 재배되는 '땅'을 극복할 수 없다는 브랜드 포지셔닝은 부르고뉴 와인 가격 상승을 부채질하는 한 요인입니다. 그러나 장테 대표는 투자 대상으로써 와인을 보는 시각에는 경계를 표했습니다. 그는 "부르고뉴 그랑 크뤼 와인은 생산량이 한정된 데 비해 수요가 늘면서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다. 희소성이 가격을 더 높이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일반 소비자가 와인을 접하기 어렵게 되면 와인으로서의 진정한 가치를 잃을 수 있다. 와인은 투자 대상이 아닌 마시면서 즐겁게 웃고 즐기게 하는 도구"라고 밝혔습니다.
장테 대표는 "레스토랑에 가서 와인을 고를 때 '지역'이나 '포도밭'만 보고 와인을 선택하지는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와인 종류가 워낙 많기 때문에 좋은 와인을 찾기가 쉽지 않다"면서도 "단지 와인 평론가의 점수나 등급을 맹신하기보다는 여러 가지 와인을 마셔보면서 자신만의 와인 취향을 찾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부르고뉴 그랑 크뤼 와인의 가격이 치솟으면서 그 땅을 사려는 투자자들이 늘고, 땅 가격도 크게 올랐다고 합니다. 그러면 보유세, 증여세 등 땅에 대한 세금도 높아집니다. 장테 대표도 "포도밭 가격이 오르면서 아버지가 소유한 포도밭을 사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부르고뉴의 와이너리 오너들은 냉해나 온난화 등 기후변화와 함께 또 다른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셈입니다.
[김기정 컨슈머전문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강남 스와핑클럽’ 남녀 26명... “자발적 성관계, 처벌 어렵다” - 매일경제
- “꼭 그렇게 다 가져야 했냐”…‘탐욕화신’ 그랜저 HV, 가성비 사장차 [카슐랭] - 매일경제
- “시세차익 5억”…로또분양 단지 매물로 나온다 [매부리레터] - 매일경제
- “하루새 불합격으로”…목동 자사고 합격자 60명 ‘날벼락’, 왜? - 매일경제
- “생포 힘들면 사살하라”… 제주서 벌어진 OOO 소탕작전 - 매일경제
- “격하게 환영한다”…이 사람 오자 난리 난 중국, 누구길래 - 매일경제
- [속보] “둔촌주공 청약당첨 포기할 필요없겠네”...실거주의무 없애고 중도금 대출 허용 - 매일
- 한 때 몸값 4조였는데...코스피 상장 연기한 컬리, 무슨 일이? - 매일경제
- “김밥이 이 가격이라고?”…만원으로 냉면도 못 사먹네 - 매일경제
- 삼성 ‘황태자’는 어떻게 범죄 종합 세트로 전락했을까 - MK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