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 위해 계 들었다가… 사기로 재판을 받게 된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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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법정에는 창이 없다.
계불입금을 ㄴ씨가 갚기로 둘 사이에 약속했지만, 형편이 어렵던 ㄴ씨가 곗돈을 갚지 않자, 계원으로 불입금을 낼 의무가 있는 ㄱ씨가 사기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 것이다.
그는 약속했던 곗돈을 445만원 냈고 1심 재판이 진행되는 도중에 1200만원을 계주에게 송금했다.
ㄱ씨는 항소심 재판이 진행되는 중에도 돈이 마련되는대로 50만원, 10만원씩 계주에게 입금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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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법정에는 창이 없다. 환한 빛이 드는 법정은 영화와 드라마에만 존재한다. 외부와 차단된 이 공간에서 매일 수많은 이들의 한숨과 환호가 교차한다. 몇 줄 판결문에 평탄했던 삶이 크게 출렁이기도 하고, 스스로 어쩌지 못했던 누군가의 삶은 전환점을 맞기도 한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보통 사람들의 재판은 우리 이웃을 한 뼘 더 이해할 수 있는 가늠자다. 평범한 이들의 재판이 열리는 법정에 작은 창을 내려는 이유다.
2023학년도 전국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지난해 11월1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한 법정에서는 체구가 작은 72살 여성 ㄱ씨가 곗돈 사기 혐의로 항소심 재판을 받았다. ㄱ씨는 목돈의 곗돈을 미리 받고 약속된 불입금을 내지 않아 1심에서 징역 3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계는 상호부조의 성격을 가진 오랜 전통문화지만, 지금은 주로 사금융 역할을 하고 있다. 계에서 먼저 돈을 타가는 사람은 이자에 상당하는 웃돈을 얹는 등 방식으로 추가 납입금을 내고, 나중에 돈을 타는 사람은 그만큼 많은 곗돈을 받는다. 예금·대출 금리차의 중간 정도로 우수리를 보태기로 약속해, 급전이 필요한 이와 이자 수익을 원하는 사람들이 ‘윈윈’ 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사적 관계망으로 큰 돈을 융통하다보니 곗돈과 관련한 분쟁으로 법정을 찾는 이들은 끊이지 않는다.
ㄱ씨가 가입한 ‘낙찰계’는 가장 낮은 금액을 받겠다고 써낸 계원부터 곗돈을 받는 방식이었다. 2014년 12월 계모임에 가입한 ㄱ씨는 “포기금 1520만원을 제외한 곗돈을 주면 매달 불입금 320만원을 14개월간 내겠다”고 써내, 순번 2번으로 총 3160만원을 지급받았다. ㄱ씨는 이전에 이 계모임 멤버였던 지인 ㄴ씨에게 급전을 마련해주기 위해 계모임에 가입했다고 한다. 계불입금을 ㄴ씨가 갚기로 둘 사이에 약속했지만, 형편이 어렵던 ㄴ씨가 곗돈을 갚지 않자, 계원으로 불입금을 낼 의무가 있는 ㄱ씨가 사기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 것이다.
그래도 ㄱ씨는 천천히 돈을 갚아 나갔다. 그는 약속했던 곗돈을 445만원 냈고 1심 재판이 진행되는 도중에 1200만원을 계주에게 송금했다. ㄱ씨는 항소심 재판이 진행되는 중에도 돈이 마련되는대로 50만원, 10만원씩 계주에게 입금했다고 한다. ㄱ씨의 국선변호인은 “ㄱ씨가 파출부 일을 하면서 돈을 나름대로 변제하고 있다. 참작해서 선처해달라”고 했다.
한달여 뒤 항소심 재판부는 ㄱ씨에게 징역 3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추가로 돈을 갚았고, 본인이 돈을 다 쓴 것도 아닌 점 등을 감안해 선처한다”고 말했다. 선고를 들은 계주 ㄷ씨는 “손해 본 다른 계원들한테 내가 돈을 갚아줘야 하는데 어떡하느냐”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정혜민 기자 jh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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