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 분 바이오 시장…"이 또한 지나가고 희망은 있다"

김상희 기자 2023. 1. 4.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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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바이오 시장 전망 대담에 나선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왼쪽)과 정태흠 미국 SV 바이오벤처스 대표/사진제공=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에너지 위기, 인플레이션과 이어지는 금리 인상, 주식 시장과 부동산 시장 침체 등. 지난해는 코로나19 대유행이 지루하게 이어지는 가운데 경제마저 침울한 한 해였다.

전염병 대유행에 따라 주목받았던 바이오 시장 역시 쉽지 않은 한 해를 보내긴 마찬가지였다.

신년을 맞아 시장 관련 최고 전문가인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과 정태흠 미국 SV 바이오벤처스 대표가 만나 바이오 시장의 현황을 점검하고 올해를 전망해 보는 대담 시간을 가졌다.

유 원장은 국내 처음으로 기업가 정신 경영학 석사(Entrepreneurship MBA)를 도입했으며 유니콘과 스타트업 분야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정 대표는 바이오 벤처캐피털리스트 1세대로 제넥신, 메디톡스, 크리스탈지노믹스, 바이오니아, 아미코젠, 바이오톡스텍, 안트로젠, 제노포커스, HLB제약, 바디텍메드 등 약 30개 기업에 투자했다.

유=2022년 마지막 거래일까지 하락 마감하며 작년 미국 증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래 최악으로 마무리됐습니다. 지난해 미국 바이오 시장을 어떻게 분석하시나요?

정=미국 바이오 지수는 2021년 2월 최고점을 기록한 후 거의 2년간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시가총액 2억 5000만 달러 이하인 마이크로캡 주식들은 최근 1년간 평균 90% 하락했고, 시가총액 2억 5000만에서 20억 달러인 스몰캡 종목들도 시가총액의 4분의 1만 남았습니다. 그러나 100억 달러 이상인 라지캡 주식들은 약 20% 정도 하락하면서 비교적 선방했습니다. 유전자·세포치료제 회사 주식이 가장 많이 하락했고 대부분의 바이오 회사에서 종업원 감원, 구조조정과 자산매각 등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바이오에 투자를 활발히 했던 벤처캐피털이나 투자은행 등도 투자를 동결하고 스타트업들은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유=작년 한국 바이오기업들은 자금조달도 굉장히 어려웠고 IPO(기업공개)도 쉽지 않아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상장에 성공한 기업들도 주가가 공모가보다 큰 폭으로 하락했습니다. 미국 바이오 업계도 상황이 좋지 않았다고 하는데 어느 정도였나요?

정=2022년도 미국 IPO 수는 전년대비 80% 감소해 지난 20년간 최악의 한 해를 보냈습니다. 자금조달액도 전년대비 90% 감소했습니다. 그리고 불과 1년 전까지 활황세던 기업인수목적회사(SPAC) IPO도 세제개편, 상환(redemption) 비율 악화로 전년대비 80% 줄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스컬노트와 피크바이오 등 한국계 회사들이 스팩을 통해 나스닥에 입성했고 지금도 몇몇 한국 바이오 회사들이 스팩 상장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또 VC(벤처캐피털)나 PE(사모펀드) 같은 FI(재무적 투자자)보다는 전략적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조달을 하거나 M&A(인수합병)로 엑시트(투자금 회수 등 출구 전략)를 고민하는 기업들이 급속히 늘고 있는 상황입니다.

유=재작년에는 IPO나 M&A가 활발히 일어났기 때문에 펀드도 많이 만들어졌고 아직 투자를 할 수 있는 실탄 즉, 드라이 파우더가 굉장히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어떤 상황이고 언제까지 투자가 주춤할까요?

정=지난해 벤처 투자가 저조했으나, 2021년 호황에 만들어진 펀드들이 굉장히 많고 펀드 존속기간이 10년 이상이므로 앞으로도 향후 5~7년간 스타트업에 투자할 드라이 파우더는 상당량을 갖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모멘텀이 생기면 쉽게 유동성이 개선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러나 올해 현 상황에서는 신규 투자보다는 기존 포트폴리오 업체 중에서 옥석을 가려 전망이 좋은 회사에만 추가로 투자하는 보수적인 태도를 취할 것으로 보입니다. 당분간은 초기 스타트업보다 FDA(미국 식품의약국) 신약 허가가 임박했거나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후기기업에 한정해 투자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유=이처럼 좋지 않은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의견이 갈립니다. 이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계십니까?

정=25년간 투자업계에 종사하면서 한 가지 확실하게 느낀 것은 주식시장에는 항상 사이클(주기)이 있다는 점입니다. 월스트리트 리서치에 따르면 이러한 하락 사이클은 평균 26개월 동안 지속되고 완전히 회복하는 데 50개월이 걸린다고 합니다. 이러한 데이터는 2021년 2월 최고점을 찍었고 하락장이 2023년 상반기에 바닥을 치며 2023년 하반기부터 상승기조로 전환될 것이라는 뉴욕 투자은행들의 예상과도 일치합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 또한 지나갑니다. 절대 혼란에 빠져서는 안 되고 담담하게 시장의 변화를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국내 대형 제약사들은 글로벌 제약사들과 달리 M&A에 소극적입니다. 기업 매출이 적은 탓도 있지만 M&A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큰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대 변화에 따라 M&A는 기업 생존이나 해외 진출을 위한 경영 수단이 됐고, 특히 바이오 분야는 엑시트 전략으로 IPO보다는 훨씬 가능성도 높고 바람직하다고 보는데 올해 바이오 분야 M&A는 어떻게 전망하시나요?

정=지난 12월 암젠이 호라이즌 테라퓨틱스를 280억 달러, 우리 돈 약 35조 원에 인수한 예에서 볼 수 있듯 다국적 제약사들이 약 1700억 달러의 자금을 바탕으로 동종 파이프라인을 가진 회사들을 흡수합병하는 추세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분야는 항암제가 유망하고 이미 판매 중이거나 임상 3상 등 후기기업들이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2022년 M&A 수가 줄었지만 인수가격은 비교적 높게 유지됐습니다. 종합적으로 예상해 보면 2023년에는 저평가된 회사들을 대상으로 전략적 투자자에 의한 M&A가 활발하게 전개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또 IPO가 어려워지면서 역합병(Reverse Merger)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우량 기업인 비상장사와 이미 상장이 돼 있는 회사가 합병해 비상장사가 우회상장하는 것으로, 성장 동력을 상실해 시가총액이 보유한 현금보다 적은 마이너스 기업 가치(negative enterprise value)의 바이오텍 상장회사와 미래 전망이 밝지만 자금과 시간이 필요한 유망 바이오회사가 결합하면서 대주주의 지위를 비상장회사에 넘겨주는 것입니다. 현재 미국에는 마이너스 기업 가치 바이오회사가 200개가 넘습니다. 스팩과 유사하나 합병 시 상환조건이 없고 양사 간 합의만 되면 거래가 성사되므로 매력적입니다.

다만 평균 경쟁률이 30 대 1이 넘을 정도로 치열합니다. 우수한 기술이나 좋은 비즈니스모델을 보유한 바이오 스타트업만이 가능성이 있습니다.

유=세계 의약품 시장이 바이오 의약품을 중심으로 재편됐습니다. 기업들도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나서며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도 M&A를 속속 추진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유행한 동안 현금을 쌓은 진단키트 기업들이 해외 M&A 시장에서 적극적으로 매물을 물색하고 있으며 제약·바이오산업에 뛰어들기 위해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을 진행 중인 국내 대기업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2023년을 맞은 바이오 업계의 희망적인 부분은 무엇인가요?

정=인플레이션이나 전쟁 등 외부 변수로 업계 전체가 영향을 받고 있지만 2016년 이후로 대형 제약사의 R&D(연구개발) 투자가 급격하게 늘었고 개발 중인 임상의 숫자도 사상 최대입니다. 지난 하반기부터 투자자들이 협상의 테이블로 돌아오고 있다는 점 역시 상당히 고무적입니다. 국내 CDMO 기업들도 규모를 키우기 위해 적극적으로 M&A를 추진할 기업을 찾고 있습니다.

특히 자금력을 손에 쥔 기업들은 지난해 굵직한 거래를 연달아 성사시켜 시장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현재 미국 신약 개발 기업을 사들이기 위해 인수 절차를 밟고 있는 LG화학이 대표적인데 2022년 말 나스닥에 상장된 항암제 개발 기업 아베오 파마슈티컬를 5억 6600만 달러에 인수하기로 했습니다.

국내 중소형 신약 개발 기업들도 작은 규모 M&A를 통해 사업을 확장할 기회를 찾고 있습니다. 최근 카나리아바이오엠은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헬릭스미스를 350억 원에 인수하기도 했습니다.

유=최근 한국바이오협회와 한국바이오경제연구센터가 발간한 '국내 바이오산업 실태조사 심층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시장은 향후 연평균 16.6% 성장해 2026년 바이오산업 매출이 40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한국 바이오산업은 어떤 전략으로 나가야할지에 대한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정=글로벌로 나아가야 합니다. 한국 바이오산업은 2015년 한미약품이 프랑스 다국적 제약사 사노피와 약 5조 원 규모의 당뇨 신약 기술 수출 계약을 필두로 지난 7년간 라이선스 아웃과 바이오 스타트업의 놀라운 성장과 IPO 기반의 급격한 발전을 거듭해 왔습니다. 비록 최근에는 세계적인 경제 환경 악화로 성장통을 겪고 있지만 이제 글로벌 신약개발과 공격적 인수합병을 통해 다시 치열한 무한 경쟁의 세계무대로 나아가야 할 중요한 변곡점에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다케다제약은 2008년 밀레니엄을 10조 원에, 2018년 샤이어를 67조 원에 인수하고 2021년 매출액 기준 약 35조 원으로 전통적 빅파마와 바이오텍의 대명사인 일라이릴리와 암젠을 넘어서는 세계 14위 제약사가 됐습니다. 영어를 공용어로 쓰고 CEO도 GSK 출신인 외부 전문가를 과감히 영입했으며 회사 문화에서 일본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글로벌화에 성공했습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한국의 바이오산업은 2022년에 글로벌 M&A 측면에서 진일보해 LG의 아베오를 인수 외에도 셀트리온이 에이비프로와 2조 원 규모의 라이선스 거래를 발표했습니다. 또 SD도 2조 원으로 메리디안을 인수했고, 이 밖에 대기업과 제약사의 CDMO(의약품 개발과 제조 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하는 위탁개발 생산 전문 회사) 인수가 잇따랐습니다.

한국 바이오회사들은 글로벌 신약개발 경험과 내공을 쌓는 유기적 성장(organic growth)에 역량을 쏟되, 다른 한편으론 선진 바이오회사의 인재, 네트워크와 파이프라인을 과감히 도입하는 무기적 성장(Inorganic growth)을 추진해야 합니다.

김상희 기자 ksh15@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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