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것이 서럽지 않은 것은 아니나 이것이 삶의 순리다”

김종목 기자 2023. 1. 4.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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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석 유고집 ‘나의 공부는 여기서 멈추지만’
병실서 온 힘 다해 에필로그 쓰고
일주일 뒤 천상으로 먼 길 떠나
머리말·후기 곳곳에 ‘삶과 죽음’
학자로서 ‘지식의 민주화’ 소명

“이 책 원고를 1월25일경에 넘기고 에필로그는 2월6일에 동네병원 병실에서 쓰고 8일 화요일 저녁에 동신병원에서 박 대표님께 보내고 13일날 아침에 먼 길 떠났지요.” 지난해 2월13일 작고한 역사학자 이영석(광주대 명예교수)의 부인 최옥희가 상을 치른 뒤 박혜숙(푸른역사 대표)에게 보낸 메시지다.

지난해 2월5일 페이스북에서 이영석은 “건강이 좋지 않아 당분간 모든 세속사와 제 학문적 관심조차 차단하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간을 가지려 합니다”라고 알렸다. 다음날까지 <나의 공부는 여기서 멈추지만>(푸른역사) 마무리 작업에 매달린 것이다. “한 글자 안 틀리는 분이 짤막한 문장에도 몇 글자가 틀려 있더라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온 힘을 다해서 에필로그를 써서 넘겨주신 거더라고요.” 박혜숙은 “그러고도 마지막까지 ‘병상 일지’를 쓰셨다고 한다”고 전했다.

고 이영석 광주대 명예교수가 <공장의 역사>(푸른역사) 출간 뒤인 2012년 2월 15일 경향신문사에서 책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마지막 순간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그것과 닮았다. 사이드도 죽을 때까지 읽고 썼다. 2003년 9월25일 아침 눈을 감을 때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On Late Style)>(마티)를 쓰던 중이었다. 앞서 병으로 쓰러진 뒤 기운을 차리고는 일을 시작했다. 다시 앓아누운 뒤에도 책을 쓰다 일어나지 못했다. 당시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이자 사이드의 친구인 마이클 우드가 책 ‘들어가는 말’ 첫 문단에 쓴 “우리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음을 뼈저리게 인식할 수 있다. 이때 시간의 질은 빛이 변하듯 바뀐다”는 구절이 떠오른다. 우드가 들머리 첫 문장으로 인용한 “죽음 때문에 우리는 하루도 한가하게 지낼 수 없다”는 새뮤얼 베케트의 말 중 ‘죽음 때문에’를 ‘죽음이 다가오더라도’로 바꾸면, 이영석의 ‘말년의 양식’을 뜻하는 말이 될 것이다. 사이드는 백혈병에 걸린 뒤 “나는 내가 죽어가는 것을 의식하며 두려워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비록 시간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안타깝게 여겼지만 말이다”라고 했다. 이영석은 사망 1주일 전 아내 최옥희에게 “나는 누구보다 밀도 있게 살았다. 공부는 여한 없이 한 것 같다. 생각보다 더 일찍 떠나게 됐는데, 그 점이 서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 영국 사회사 연구 권위자, 이영석 광주대 명예교수 별세
     https://www.khan.co.kr/people/obituary/article/202202141624001

책 머리말과 후기에 삶과 죽음이 오간다. 머리말에 “지적 호기심도 체력도 그리고 무엇보다 끈기도 점차로 약해지는 이때야말로 말 그대로 현장 연구자의 생활을 마감할 순간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이 책이야말로 논문 모음 형식으로는 마지막 출간물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은 곧 ‘논문을 더 쓰긴 힘들지만 비논문 형식 책은 앞으로도 출간할 것’이라는 자신에 대한 다짐과 독자에 대한 약속을 녹인 말이었다. 그다음 문장 “이것이 삶의 순리다”가 눈에 밟힌다. 후기엔 “이 책은 나의 마지막 저술이다. 발간 후까지 얼마간 잔명을 유지하더라도 피폐해진 육체와 정신으로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다. 한편으로 허전하고 쓸쓸하기도 하나 다른 한편으로 허허롭고 평화롭다”고 썼다.

이영석의 유고집 <나의 공부는 여기서 멈추지만>은 학자가 일생을 수행한 소명이 무엇인지, 죽음을 선고받은 인간은 무엇을 할지에 관해 성찰할 시간을 던져준다. 역사 서술 방식과 관점, 역사학자의 태도를 두고도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고 이영석 광주대 명예교수 페이스북(facebook.com/youngsuk.lee.94043)엔 페북 글쓰기 중단을 알리는 마지막 포스팅과 부고를 전하는 글이 한데 올라 있다.

책은 10편의 근래 논문을 엮었다. 학문의 방향과 전환을 반영한 책이다. 대중이 쉽게 읽도록 다시 손봤다. ‘지식의 민주화’를 내건 이영석은 ‘표와 숫자 없는 경제사’ ‘내러티브를 담은 역사 서술’을 추구했다. 5년 전 페이스북을 시작한 것도 ‘지식의 민주화’였다. 소수의 학자들만 읽고 사장될 글을 여러 사람이 읽게 하려고 노력했다.

이영석은 <역사가가 그린 근대의 풍경>(2003)에서 주제나 방법론의 측면에서 방향 전환을 시도했다. 그는 2019년 5월27일 영국사학회 김상수(한국외대 영어통번역학부 교수)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첫 저서인 <산업혁명과 노동정책>(1994)을 다시 읽어 보니까 저도 못 읽겠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이런 식의 글을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래서 학자로서 논문을 써야 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최소한 고졸자 또는 역사를 전공하지 않더라도 대학에 재학 중인 정도의 지적 수준을 가진 사람이면 무리 없이 읽을 수 있는 스타일로 논문을 써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 [책과 삶]“공장제 기반한 유럽 복지국가 모델, 탈공장 시대 맞춰 재고를”
     https://www.khan.co.kr/article/201202172137225

그는 지배층 시각과 영웅 위주 역사 서술을 피했다. <나의 공부는 여기서 멈추지만>에 “사회사가에게 사람들의 삶의 기록은 참으로 중요한 자료다. 이런 기록들은 그 개인이 살았던 시대와 사회를 좀 더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것은 공식적인 지배층 위주의 시각을 나타내지 않는다.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 속에서 느꼈을 다양한 정서, 희망과 절망, 기쁨과 슬픔, 환호와 비탄을 공유하며 한 시대의 역사상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도록 유도한다”고 적었다. 나폴레옹 군대에 세 차례 징집당해 복무한 독일인 병사였던 야코브 발터 회고를 한 장으로 다룬 것도 이런 뜻의 연장선이다. 이영석은 “기억이란 ‘자신의 과거를 자신의 현재와 관련짓는 정신 행위’인 것이다. 현재의 삶과 현재의 상황에 따라 과거에 대한 기억은 선택되고 변형되고 왜곡될 위험이 있다”며 엄정성을 유지했다.

이영석은 플로라 트리스탄의 비참한 영국 공장 노동자 목격담 등 개인 생애사를 주로 서술한 리처드 에번스의 저작도 소개한다. 제2차 세계대전 대공습기 때 영국 아동과 여성의 고통, 도시 최하층 주민 문제를 다룬 장도 넣었다.

늘 오늘날 세계와 한국 사회를 이해·성찰하려고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인들의 피란 경험을 두고 “전쟁의 비극을 되씹고, 그럼으로써 전쟁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요구해야 하는 연구 대상이다. 영국만이 아니라 독일, 일본, 남·북한, 베트남에 이르기까지 이 여러 나라 주민들에게서 공습과 피란 경험 및 기억이 어떠했는가를 서로 비교하고 탐사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고 썼다. 1819년 영국 맨체스터에서 발생한 피털루 학살과 1919년 인도 펀자브주 암리자르 잘리안왈라 공원 학살, 1980년 5·18민주화운동을 두고 “국가(또는 식민지 권력) 폭력에 의한 학살, 그 경험과 기억, 민중운동의 동력 제공이라는 비슷한 패턴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세 사건을 연결, 분석한 논문도 내놓았다.

영국 역사로 오늘날 자본주의 문제와 기후위기 등을 사유하려 했다. 영국의 석탄 역사를 짚으며 물질적 번영과 대량 소비, 자연 파괴로 빚어질 ‘화석 문명의 미래’를 걱정했다. “‘적정 성장’을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자본주의 경제의 변혁 없이는 ‘적정 성장’은 불가능하다. 마르크스는 계급착취를 넘어서기 위해 자본주의 이후의 세계를 꿈꿨다. 그러나 이제 계급론을 넘어서 인류문명의 파국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하지 않은가.”


☞ ‘대중과 소통’ 역사학 새길 찾기…‘사회사의 유혹’
     https://www.khan.co.kr/culture/scholarship-heritage/article/200610241727201

사이드는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에서 “우리 모두는 말년의 작품이 어떻게 평생에 걸친 미적 노력을 완성하는지, 그 예를 얼마든지 열거할 수 있다”고 했다. 여러 예술가를 두고 한 이 말을 ‘평생에 걸친 역사 쓰기 노력’으로 바꿔 이영석에게 대입해도 될 법하다. 이 역사가의 말년은 ‘완성’을 눈앞에 두고 끝이 났다.

박혜숙은 “세계사, 문명사까지 이야기할 수 있는 분이셨는데, 그런 문제의식이 생길 때 떠나신 것”이라고 했다. 그 학문후속세대에게 그 ‘완성’을 맡겼다. 후기에 “한국의 서양사 학자들, 나아가 인문학자들이 지구 문명의 위기를 극복하고 세계 평화를 이루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적었다. “촉망받는 과학철학자로 성장한 아들 이승일의 대견한 모습과 피폐해진 내 모습을 보고 애통해하는 아내 최옥희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며 이 짧은 글을 맺는다”고 썼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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