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이스라엘 국가안보 장관의 성지 방문에 아랍국 대거 반발
이스라엘의 극우 성향 국가안보 장관이 동예루살렘 성지를 방문하면서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국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타마르 벤-그비르 이스라엘 국가안보 장관은 이날 경호인력을 대동하고 약 15분간 동예루살렘 성지를 방문했다. 그는 성지에서 “성전산(유대인의 성지 호칭)은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곳이다. 이슬람교도뿐 아니라 기독교인들, 유대교인들도 마찬가지”라며 “내가 있는 이스라엘 정부에서는 인종차별적인 행위가 없어질 것이다. 이제 유대교인들도 이곳에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벤-그비르 장관이 방문한 동예루살렘 성지는 유대교인들의 기도와 예배가 제한된 곳으로, 수십년 동안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 갈등을 유발한 요인 중 하나다. 이슬람교도가 ‘고귀한 안식처’, 유대교도는 ‘성전산’이라 부르는 이곳은 이슬람교·기독교·유대교의 공통 성지로, 지난 1967년 3차 중동전쟁을 계기로 이스라엘이 점령했다. 경내엔 이슬람교의 3대 성지 중 하나인 알아크사 사원이 있다. 이곳에선 이슬람교도의 기도와 유배만 허락되며, 유대교인들은 방문은 할 수 있지만 기도와 예배는 ‘통곡의 벽’이라 불리는 서쪽 벽에서만 가능하다.
벤-그비르 장관이 이곳에서 유대교인들도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고 꾸준히 주장해온 반아랍·반팔레스타인 성향의 극우 정치인이라는 점도 역내 긴장을 고조시켰다. 벤-그비르는 극우 정당 ‘오츠마 예후디트’(이스라엘의 힘) 대표로, 팔레스타인을 몰아내고 서안지구를 병합하자고 주장해온 인물이다. 그는 이곳에 있는 이스라엘 정착민들과 합류해 알아크사 사원을 수차례 방문하면서 팔레스타인인들과 갈등을 빚은 바 있다.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국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외무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극단주의자 벤-그비르 장관이 알아크사 사원을 유대교 사원으로 만들기 위해 기습했다”며 그의 성지 방문은 “모든 규범, 가치, 국제법 및 국제 협약을 위반한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가자지구를 관할하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도 벤-그비르 장관의 방문을 “범죄”로 규정하고 성지가 “팔레스타인과 아랍, 이슬람의 것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알아크사 사원의 관리 권한을 가진 요르단은 자국 주재 이스라엘 대사를 초치해 항의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성명을 통해 “알아크사 사원 경내에 침입한 이스라엘 관리의 도발적 행동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한 아랍에미리트(UAE)와 카타르는 벤-그비르 장관이 “알아크사 사원 경내를 침범”했다고 비판했다. 최근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를 추진 중인 튀르키예도 이번 방문이 “도발적”이었다고 비난했다.
이번 ‘성지 도발’ 사건이 아랍국들과 이스라엘 간 외교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간 예루살렘 포스트 등에 따르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다음주에 UAE를 방문해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UAE 대통령과 회담할 예정이었으나, 방문 일정을 갑자기 취소했다. 총리실은 이와 관련 “향후 성공적인 방문을 위한 양국 정부의 협조를 위해서”라고 설명했지만, 벤-그비르 장관의 성지 방문이 압박으로 작용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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