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에 무릎 꿇은 컬리…연쇄 폭풍 일으킬까
한때 4조 몸값 1조 아래로
SSG·11번가 등에도 영향 전망
컬리가 상장 추진을 잠정 보류하기로 했다. 재추진 일정도 정해지지 않은 '무기한 보류'다. 지난해부터 불어 온 기업공개(IPO) 시장의 찬바람이 컬리의 시장 가치에도 악영향을 미치면서 결국 마지막 카드를 꺼내들 수밖에 없었다는 평가다.
호언장담으로 그친 "연내 상장"
지난해 국내 IPO 기업은 총 90개(스팩 제외)로, 전년 대비 22개나 감소했다. 연초 현대엔지니어링을 시작으로 자람테크놀로지까지 총 13곳이 상장을 철회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LG CNS·SSG닷컴·카카오모빌리티·CJ올리브영 등 시장에서 거론되던 대어들도 잇따라 상장 계획을 미뤘다.
이와 함께 컬리에 대한 기대감은 더 높아졌다. 컬리는 올해 상장을 준비하던 기업 중 가장 눈에 띄는 '대어'였다. 김슬아 대표는 지난 10월 상장 철회설이 돌았을 때도 "사실무근"이라며 "기한 내 상장"을 강조했다. 몸값이 어떻게 평가되든 정해진 기한 내에 상장하겠다는 컬리의 의지는 잇단 '상장 보류'의 파도 속에서 돋보였다.
업계에서는 당초 컬리의 몸값을 최대 4조원에 달할 것으로 점쳤다. 현재보다는 미래를 본 평가였다. 2018년 1571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던 컬리는 2019년 4259억원, 2020년 9531억원으로 매년 배 이상 몸집을 불렸다. 2021년에도 1조5614억원을 기록했다. 쿠팡이 생각나게 하는 성장세였다.
하지만 하반기로 갈수록 컬리의 몸값은 하락했다. 지난해 말에는 이곳저곳에서 컬리가 상장을 보류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시간도 촉박했다. 컬리의 상장 시한은 오는 2월 말이었다. 기업가치가 회복되길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컬리는 "글로벌 경제 상황 악화로 인한 투자 심리 위축을 고려해 상장을 연기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유니콘' 아니면 상장 안 해
컬리는 상장 보류 소식을 알리며 "향후 기업가치를 온전히 평가 받을 수 있는 최적의 시점에 상장을 재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결국 기업가치 악화가 상장 보류의 이유라고 밝힌 셈이다. 컬리의 기업가치가 1조원 아래로 떨어졌다는 평가도 나왔다. 기업가치 1조원이 넘는 비상장 기업을 '유니콘 기업'이라고 부른다. 컬리는 '유니콘'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컬리의 상장 재추진은 IPO 시장이 다시 활기를 띠게 된 후 재개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하반기 이후를 점친다. 상반기 중에는 시장이 살아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하반기로 들어서면서 물가와 금리 관련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피어그룹(기존 상장 유사 기업)의 주가가 회복되면 IPO 시장에도 다소 온풍이 불 것이란 설명이다.
다만 컬리 측은 상장이 시급한 문제가 아닌 만큼 섣부르게 재추진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컬리는 지난해 이커머스 업계 평균을 크게 뛰어넘는 성장을 이뤘고 계획 중인 신사업을 무리 없이 펼쳐 가기에 충분한 현금도 보유하고 있다며 상장이 최우선 과제가 아님을 명시했다. 기업가치 회복이 우선이라는 선언이다.
컬리 관계자는 "상장 재추진 일정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시장 상황이 호전된다면 가능성은 언제든지 열려 있다"고 말했다.
IPO 찬바람 계속될까
컬리가 백기를 들면서 오아시스마켓·SSG닷컴·11번가 등 올해 상장을 준비 중인 유통 기업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더 차가워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컬리마저 발을 뺀 IPO 시장에서 이들이 버틸 수 있겠냐는 것이다.
첫 번째 타자는 오아시스마켓이다. 오아시스마켓은 지난해 말 상장 예비심사에 통과했다. 오는 6월 말까지 상장 작업을 마무리해야 한다. 신선식품 배송이 주력 사업인 만큼 컬리의 상장 보류에도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컬리와는 주어진 상황이 조금 다르다는 게 위안거리다. 오아시스는 새벽배송 기업 중 유일하게 흑자를 내고 있다. 2019년 10억원, 2020년 97억원, 2021년 57억원을 남겼다. 몸값은 1조원대 초반으로 평가받고 있다. 과도한 기대감이 없는 만큼 상장 작업도 원활할 수 있다는 평가다.
11번가도 연내 상장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2018년 국민연금 등에서 5000억원을 투자받으며 5년 내 IPO 추진을 명시했다. 다만 이어지는 적자가 걸림돌이다. 11번가는 지난해 3분기까지 1000억원이 넘는 적자를 냈다. 올해에도 흑자 전환은 어렵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올해 상장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
11번가 관계자는 "시장 상황이 어렵게 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현재까지는 예정대로 내년 중 상장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아름 (armijjang@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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