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리버스' 지금까지 이런 서바이벌은 없었다
아이즈 ize 한수진 기자
걸그룹 멤버 30인이 모였다. 하지만 서로가 누군지, 또 지켜보는 시청자마저 이들의 진짜 정체를 모른다. 투명하게 공개된 건 오직 목소리뿐이다. '복면가왕'도 아닌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냐고? 이들이 모인 장소가 메타버스이기 때문이다.
'소녀리버스(RE:VERSE)'에서는 서른 명의 걸그룹 멤버들이 각자의 아바타를 부여받아 버추얼 세계에서 데뷔전을 치른다. 최종 선발 인원은 5명. 춤과 노래, 매력으로 최종 멤버를 선발하는 건 기존 서바이벌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경쟁을 치르는 공간이 가상의 세계 'W'라는 메타버스에서 이뤄지고, 본체가 아닌 아바타로 서바이벌에 참여하는 참가자들의 베일에 싸인 정체가 신선한 차별점을 낳는다.
얼마 전부터 "오디션 지겹다"는 말이 나온 뒤로 아이돌 선발 서바이벌에 대한 대중 관심은 급격하게 격하됐다. SBS는 간판 오디션이던 'K팝 스타'를 진작에 폐지했고, MBC가 지난해 야심차게 선보인 '방과후 설렘'도 1%대 시청률을 벗어나지 못한 채 조용히 막을 내렸다. 오디션 강자 Mnet도 '걸스플래닛'으로 면치레 정도만 했을 뿐 '프로듀스 101' 시절만큼의 영광은 손에 넣지 못했다.
아무리 다른 설정을 부여해봤자 이 같은 오디션은 비슷한 연속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연속성은 기시감으로, 기시감은 지루함이 된다. 서바이벌은 결국 땀과 눈물, 열정 같은 것들로 서사를 채워나갈 수밖에 없고, 그것을 반복적으로 지켜보는 시청자 입장에서는 감명의 통로가 점점 좁아진다.
지난 2일 베일을 벗은 '소녀리버스'는 메타버스로 공간을 옮긴 후 기존 서바이벌의 땀과 눈물, 열정과 같은 서사를 벗어던졌다. 출연진들은 서로 놀거나 놀리기 바쁘고, 자신이 받아든 낮은 평가에 급기야는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기도 한다. 가상 공간이 주는 효과다. 이들은 압박이나 간절함 같은 것들보다는, 마치 게임을 즐기는 것처럼 그곳에 존재한다. 분신이 선사한 자유를 감동이 아닌 재미로 승화하며 성격이 다른 아이돌 오디션 세계를 경험하게 한다. 물론 현재 출중한 가창력으로 1등을 기록한 '집순이'를 비롯해 많은 참가자들은 가상의 무대에서 출중한 노래와 퍼포먼스도 동시에 보여준다.
반응도 나쁘지 않다. "예상한 것과 달리 재미가 있다"는 입소문이 돌면서 공개 이틀만에 유튜브에 공개된 1회가 조회수 45만 회를 넘었다. 800여 개가 달린 댓글에도 온통 호평뿐이다. 가장 많이 달린 댓글이 "웃기다"라는 점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얼굴을 가린 참가자들은 자신의 행동을 착해보이는 쪽으로 절제하지 않는다. 경쟁자가 자신에게 낮은 점수를 줄 때 기존의 오디션 같았으면 눈물을 흘리며 낙담하거나 뒤돌아 눈을 치켜뜨며 미묘한 신경전을 벌였을 테지만, '소녀리버스'의 소녀들은 점수를 준 상대에게 곧장 맹수처럼 달려든다. 갈등을 눈앞에서 해갈하며, 모든 과정에 찝찝할 수 있는 뒤를 남기지 않는다. 이들의 정확한 정체는 모르지만 분명한 건 걸그룹 멤버라는 점이 이러한 요소에 반전감 있는 재미를 준다. 현실 세계에서는 마음 표현이 자유롭지 않은 아이돌이기에 일련의 해방감마저 들게 한다. 여기에 이 과감한 발언을 한 이의 정체가 누군지 추리하게 되는 호기심까지 발동시킨다.
'소녀리버스'는 기존의 틀을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만들었기에 새로운 재미를 창출한다. 결국 예능의 갈래인 아이돌 서바이벌도 시청자들의 마음에 직구를 날려야 생존 가능하다. 첫 공은 나름 직구 던지기에 성공한 듯 보인다. 허나 아직은 넓은 시청층을 포용하기엔 메타버스는 낯선 공간이다. 앞으로의 과제는 분명하다. 재미 이상의 유대감과 친숙함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과거 싸이월드 속 아바타에게 진짜 돈을 들여 옷을 사 입혔던 것처럼, 참가자들의 아바타 자체에 애정을 갖게 할 지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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