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망한 줄 알았던 태양의서커스, 어떻게 살아났나

김수현 문화전문기자 2023. 1. 4.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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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성 없이는 비즈니스도 없다 - 태양의서커스 부회장 인터뷰

태양의서커스는 1984년 캐나다에서 창립된 거대 공연 기업, '아트 서커스'의 대명사입니다. 라스베이거스의 상주 공연들 외에도, 전세계 곳곳에서 끊임없이 다채로운 공연을 진행하던 공연계의 '태양'이었습니다. 태양의서커스 연 매출은 10억 달러, 수익률은 20퍼센트에 이르고, 매년 1500만명이 태양의서커스 공연 티켓을 샀습니다. 이는 브로드웨이 쇼 39개의 관객 수를 합친 것보다 많은 숫자였습니다.

태양의서커스는 경영학계에서는 '블루 오션 전략(Blue Ocean Strategy)'의 대표 사례로도 유명했습니다. 서커스는 경쟁자가 많은 사양 산업으로 여겨졌지만(Red Ocean), 태양의서커스는 서커스에서 필수로 여겨졌던 동물 쇼를 없애고, 연극과 음악, 발레 등 다른 예술 장르를 접목해 '아트 서커스'라는 완전히 새로운 공연 형태를 만들어냈습니다. 즉 '블루 오션'을 개척한 것이죠.

'지지 않는 태양'일 것만 같았던 태양의서커스. 하지만 코로나19가 덮치자 태양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2020년 3월, 단 이틀 만에 전세계에서 44개에 이르는 태양의서커스 공연이 모두 중단된 겁니다. 연 매출 10억 달러에서 순식간에 제로로 곤두박질, 5천 명 직원 중에 95퍼센트를 해고했지만, 재정난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다들 회생 불능이라고 했습니다. 2020년 7월, 태양의서커스는 파산보호신청을 합니다. 전 세계에 이 뉴스가 전해지자 공연계가 충격에 빠졌습니다. 코로나19가 언제 종식될지 모르고, 공연 산업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위기감이 커지는 중이었는데 태양의서커스마저 무너졌다는 소식이었으니까요.

이렇게 태양이 지는가 했는데, 뜻밖의 일이 벌어집니다. 태양의서커스를 인수하겠다는 투자자들이 몰리기 시작한 겁니다. 코로나 백신은 아직 개발 전이고, 팬데믹이 언제 끝날지, 공연을 언제 재개할 수 있을지, 모든 것이 불투명하던 때였습니다. 결국 태양의서커스는 2020년 11월, 9억 달러의 대출을 인수하고 3억 7천5백만 달러라는 거액의 신규 투자를 결정한 기존 채권단에게 인수됐습니다. 12억 7천 5백 달러라는 기업 가치를 인정받은 셈입니다. 값비싼 부동산도, 팔 수 있는 재고 상품도 없고, 운영을 위한 최소한의 인원만 유지하고 있을 뿐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회사였는데도 말이죠.

(태양의서커스의 이전 대주주는 미국계 사모펀드 TPG캐피털과 중국 푸싱그룹입니다. 태양의서커스 창립자 기 랄리베르테 등이 소유했던 지분을 2015년 이들이 15억 달러(약 1조 6300억 원)에 공동 인수했죠. 태양의서커스가 중국 기업에 팔렸다는 뉴스가 그래서 나왔던 겁니다. 당시 TPG 캐피털이 지분 55퍼센트, 푸싱그룹이 25퍼센트를 가져갔습니다. TPG는 태양의서커스를 인수하고 9억 달러를 대출 받았는데, 이 대출을 해줬던 채권자들이 이번에 태양의서커스를 인수한 겁니다. 이제 미국과 캐나다에 있는 40개의 투자 회사가 태양의서커스 지분을 조금씩 나눠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태양의서커스는 코로나19의 기세가 수그러들고 일상이 회복되기 시작하자,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2021년 가을 '미스테르(Mystere)'와 '오(O)'를 시작으로, '비틀즈 러브(Beatles)', 카(KA) 등 태양의서커스의 상징 같은 라스베이거스의 상설 공연들이 차례로 돌아왔습니다. 중국과 멕시코의 상설 공연들도 이보다 먼저 재개되었고요. 공연이 재개되자,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팔린 티켓 판매량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보다 더 많았습니다. 팬데믹 기간 동안 라이브 공연에 목말랐던 관객들이 태양의서커스 공연장으로 몰려온 거죠.

태양의서커스 '뉴 알레그리아'


이렇게 부활한 태양의서커스는 한국에도 다시 찾아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 1일까지, 잠실 빅탑에서 '뉴 알레그리아'를 공연했습니다. 2001년 회사에 합류한 이후, 태양의서커스의 성장을 이끌었고 팬데믹의 암울한 시기를 통과해 재기하기까지, 현장에서 지휘해온 다니엘 라마르 부회장을 인터뷰했습니다. 태양의서커스 내한공연에 맞춰 출간된 그의 저서 '균형 잡기의 기술(BALANCING ACTS)'를 읽고 나서, 캐나다 본사에 있는 그를 화상으로 만난 겁니다.

다니엘 라마르 태양의서커스 부회장


Q. 4년 만에 다시 한국에서 태양의서커스 공연이 열렸는데, 소감은? (이 인터뷰는 지난해 12월 초에 진행됐습니다)
한국은 언제나 태양의서커스에 중요한 국가였고, 한국에서 다시 공연하게 되어 정말 기쁘다. '알레그리아'는 태양의서커스의 고전이며 크게 성공했던 작품이고, 한국 관객들의 반응도 좋아서 정말 만족한다.

Q. 팬데믹 때 큰 어려움을 겪었는데.
A. 팬데믹은 정말 큰 위기였다. 이틀 만에 전세계의 모든 쇼를 다 중단했고, 거의 모든 직원들을 내보내야 했다. 좋은 소식은, 16개월 전 우리는 아무런 공연도 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오늘밤 전세계에서 30개의 공연이 열리고 있다는 것이다. 태양의서커스는 놀랍게 재기했고, 한국 공연은 우리의 부활을 알리는 좋은 예다. 사람들은 태양의서커스를 좋아하고, 코로나 이전보다 더 라이브 공연 관람을 즐긴다.

Q. 팬데믹 이후 관객들의 반응이 달라졌나.
A. 사람들은 전보다 더 많이 공연 티켓을 산다. 전보다 더 공연을 좋아한다. 이들은 팬데믹 기간 동안 사람들이 무대에서 하는 공연을 그리워했고, 라이브로 보고 싶어했다. 이게 바로 우리가 지금 사람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보고 있는 이유다. 정말 행복하다.

Q. 팬데믹 때 파산보호신청까지 했는데, 어떻게 돌아올 수 있었나.
A. 우리 투자자들은 회사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특별한 결정을 하게 된 이유는 그들이 회사를 싼 값에 처분하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태양의서커스 브랜드의 힘이 그만큼 강력하다고 믿었으니까. 회사가 일단 살아나기 시작하면, 코로나 이전의 가치를 금방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투자자들은 그래서 요즘 아주 만족해 하고 있다. 회사를 싼 값에 팔아 치우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전보다 더 가치가 커진 회사를 갖게 되었으니까. 그러니 그들은 아주 훌륭한 투자를 한 셈이다. 그들은 태양의서커스의 미래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고, 회사는 재정적으로도 안정을 되찾았다. 탄탄해진 재정을 바탕으로 다시 조직을 확장시키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Q. 그들이 태양의서커스에 그렇게 투자하게 만든 힘은 뭘까.
A. 우리는 몇 안 되는 글로벌 브랜드 중 하나다. 태양의서커스라는 브랜드는 전세계에 알려져 있고, 이렇게 강력한 브랜드를 갖고 있는 회사는 드물다. 이게 그들이 우리에게 투자한 이유다.

Q. 그 브랜드를 만들어낸 힘은?
A. 훌륭한 공연 덕분이다. 아마도 한국인 경영학자 김위찬이 참여한 블루 오션 이론 들어봤을 거다. 여기서 태양의서커스를 굉장히 잘 설명했는데, 우리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창조해 냈다. 이건 전통적인 서커스가 아니고 연극도 아니고 음악도 아니고 콘서트도 아니다. 이 모든 예술적 양식을 융합한 것이다. 이게 태양의서커스가 오늘날까지도 세계에서 독특한 위상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다.

Q. 팬데믹 기간 동안 해고됐던 직원들은 다 돌아왔나.
A. 대부분 돌아왔다. 그들은 돌아와서 정말 행복해 한다. 어떤 직원들은 이미 다른 직업을 구했는데도 다시 태양의서커스로 돌아왔다. 태양의서커스는 그만큼 특별한 회사이다. 직원들은 이 회사에 헌신하고 열정을 쏟는다.

Q. 태양의서커스 공연을 하는 아티스트들은 공연이 없는 동안 어떻게 지냈나.
A. 그들은 엄밀히 말하면 태양의서커스 직원이 아니었지만, 마치 직원인 것처럼 계속 소통했다. 장기적으로 우리는 공연을 재개할 것이고, 그 때 당신들이 공연을 할 수 있도록 계속 신체를 단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얘기했다. 팬데믹 기간에 우리 아티스트들이 창의적인 방법으로 계속 훈련을 해온 것에 대해 정말 감사하고, 축복받았다고 느낀다. 그들은 다른 일을 하면서도 지하실에서, 차고에서, 계속 연습했고, 우리가 그들을 다시 불렀을 때 바로 올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게 태양의서커스가 그렇게 빨리 부활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Q. 팬데믹 기간 동안 정부로부터 어떤 지원이 있었나.
A 해고된 우리 직원들이 월급을 못 받는 동안 지원해줬다. 회사를 직접 도와준 건 아니지만, 직원들을 지원해준 것도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퀘벡 정부에서는 태양의서커스 본사와 고위 임원들이 퀘벡에 계속 남아있는다는 조건으로 2억 달러의 대출을 제공하기로 했는데, 태양의서커스를 인수한 투자자들은 이를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행되지 않았다.)

Q. 사내에 전세계의 새로운 트렌드만 찾아다니는 '트렌드 그룹'이라는 조직이 있다는 얘기를 읽었다. R&D에 쏟는 노력이 인상적이었다.
A. R&D는 정말 중요하다. 산업의 리더로 계속 남아있으려면 계속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해야 한다. 우리는 많은 세계의 대학들과, 또 삼성 같은 대기업들과 협업해서 새로운 기술에 대해 이해하고, 새로운 기술을 끊임없이 적용해서 업계 1위 자리를 지켜왔다.

Q. 기술을 적용한 사례를 소개해 줄 수 있나.
A. 팬데믹 기간, 처음 공연이 중단됐을 때 우리는 관객과 계속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새로운 네트워크 '서크 코넥트'(Cirque Connect)를 만들었다. 공연 영상과 비하인드 영상, 인터뷰 영상 등 새로운 영상을 매주 업데이트했다. 공연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지만, 회사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 관객들이 알 수 있도록. (*이 일은 대부분의 직원이 해고되고 난 후 단 두 명의 직원이 전담했다.) 서크 코넥트는 정말 성공적이어서 테스트 기간에 이미 1400만 뷰, 서비스 시작하자 7천만 뷰를 넘어섰다. 우리 고객들과 온라인에서 계속 만날 수 있도록 해준, 정말 중요한 일이었다.

Q. 팬데믹 기간에 온라인 공연, 즉 공연 영상이 범람하면서 공연 산업에 미칠 영향에 대해 많은 의견들이 있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A. 디지털 영상은 우리에게 마케팅 수단이었다. 공연이 없을 때에도 관객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었고, 소비자 경험을 극대화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디지털 덕분에 태양의서커스와 관객 간의 상호작용이 더 많아졌고, 우리는 더 많은 소비자 경험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책에서 '온라인에서 팬들에게 다가가는 것은 그들이 더 이상 우리의 라이브 쇼에 오지않게 만들기는커녕 고객의 더 깊은 참여를 이끌어 비즈니스에 도움을 준다'고 썼다. '뉴 알레그리아' 예술감독인 마이클 스미스는 '인간은 고립되어 살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라이브 공연은 유튜브 영상이나 그 어떤 다른 매체로도 대체될 수 없다. 라이브 공연은 반복될 수 없는 유일한 순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Q. 태양의서커스는 끊임없이 신작을 내놓고, 다른 공연도 인수하며 확장해왔는데, 앞으로도 그렇게 할 계획인가?
A. 우리는 계속해서 새로운 공연을 만들어나갈 계획이지만, 이전처럼 급하게, 빨리 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현재의 포트폴리오가 시장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니까. 전과는 다른 리듬으로 신작을 개발하려 한다.
(*태양의서커스는 TPG/푸싱이 인수한 2015년부터 새로운 공연 개발, 소규모 회사 인수 합병에 5억 5천만 달러라는 상당한 금액을 투자한 뒤, 속도를 늦추고 수익성을 최적화하는 새로운 전략으로 전환하려는 중에 코로나19라는 위기를 맞았다.)

Q. 저서의 제목인 '밸런싱 액트-균형잡기의 기술'이 인상적이다. 좀 더 설명해 줄 수 있나.
A. 회사의 창조적인 부문과 비즈니스 부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쇼 비즈니스(Show Business)'라는 말에서 '쇼'가 먼저 나오지 않나. 좋은 쇼를 보유하고 있다면 비즈니스도 잘 될 것이다. 좋은 쇼가 없다면 비즈니스도 없다. 이게 내가 책에서 말하려 한 내용이다. 좋은 쇼는 훌륭한 예술적 생산물이기도 하고, 회사를 먹여 살리는 훌륭한 비즈니스 모델이기도 하다.

Q. 태양의서커스에 재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A. 정말 많은 소중한 기억들이 있는데, 2021년 '비틀즈 러브' 공연을 라스베이거스에서 재개했을 때가 생각난다. 태양의서커스는 전보다 더 강해졌다. 가장 자랑스러운 것은 태양의서커스가 전 세계 각국을 찾아갔고, 오늘밤 한국에서도 공연이 열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저는 돌아온 태양의서커스에 관객들이 환호하는 걸 보면서, 팬데믹 이후 라이브 공연에 대한 욕구가 더 커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아티스트와 관객이 한 공간에서 그 순간을 공유한다는 '라이브'의 매력은 팬데믹 기간 동안 고립되었던 사람들에게 더욱 소중한 경험으로 다가오니까요. 실제로 한국 공연 시장도 지난해 코로나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해도 크게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태양의서커스 부활은 강력한 브랜드의 힘 덕분이고, 이 브랜드는 태양의서커스가 이 세상에 없던 새로운 공연을 창조해낸 덕분에 만들어졌습니다. 다니엘 라마르의 책 부제가 '인생과 일에서 창조성의 힘을 발휘하기(Unleashing the Power of Creativity in Your Life and Work)'라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 창조성이 그 원천이 됐던 거죠. 창조성 없이는 비즈니스도 없다! 이건 태양의서커스에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 같습니다.

김수현 문화전문기자shk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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