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녀라는 숙명, 그 앞에서…다큐 '시간을 꿈꾸는 소녀'

김정진 2023. 1. 4.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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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살 평범한 대학원생과 돈 많고 유명한 무녀.

다큐멘터리 '시간을 꿈꾸는 소녀'는 무녀가 되어야 하는 운명 앞에 선 한 소녀의 이야기다.

'시간을 꿈꾸는 소녀'라는 작품의 제목은 꿈을 통해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예측하는 무당으로서의 수진의 모습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자신만의 미래를 꿈꾸는 한 명의 청춘으로서 수진의 삶을 나타낸 것으로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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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시간을 꿈꾸는 소녀' [하이하버픽쳐스·영화사 진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정진 기자 = 25살 평범한 대학원생과 돈 많고 유명한 무녀. 둘 중에 무엇을 택하겠느냐는 장난스러운 질문에 수진은 한참을 망설인다.

6살 때부터 사람의 운명을 예언하며 살아온 수진은 20년 차 무당이다. 부모의 이혼으로 할머니 경원 밑에서 자란 그는 4살이 되던 해 다른 사람의 미래를 말하기 시작한다.

결혼 후 신내림을 받아 홀로 산속에서 살아왔던 경원은 손녀가 자신과 같은 운명을 밟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아이에게 묻지 말라'는 경고문을 붙여뒀지만, 수진은 결국 무당이 됐다.

다큐멘터리 '시간을 꿈꾸는 소녀'는 무녀가 되어야 하는 운명 앞에 선 한 소녀의 이야기다. 다큐멘터리 '춘희막이'(2015) 등을 연출한 박혁지 감독은 수진이 수능을 치렀던 2015년부터 7년 동안 이 작품을 만들었다.

다큐멘터리 '시간을 꿈꾸는 소녀' [하이하버픽쳐스·영화사 진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작품은 무속인 수진의 삶을 꿈도 열정도 많은 한 청춘의 고민이라는 측면에 집중해 담아냈다.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꼭 내가 하고 싶은 게 될 거야. 그래서 다른 걸로 내 인생을 돌려서 이걸(무당 일) 하지 않을 거야. 늘 그렇게 생각했어요."

서울의 한 대학에 합격한 수진은 할머니와 함께 살던 충남 홍성을 떠나 서울에서 홀로 살게 된다. 여느 대학생들처럼 강의와 과제에 치여 살아가지만 그에게는 그 평범함이 발버둥 쳐야만 가질 수 있는 것들이다. 주말마다 홍성의 법당을 찾아야만 한다는 '보살님'과의 약속이 일상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시간을 꿈꾸는 소녀'라는 작품의 제목은 꿈을 통해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예측하는 무당으로서의 수진의 모습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자신만의 미래를 꿈꾸는 한 명의 청춘으로서 수진의 삶을 나타낸 것으로도 보인다.

다큐멘터리 '시간을 꿈꾸는 소녀' [하이하버픽쳐스·영화사 진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경원과 수진의 관계도 작품의 한 축을 차지한다. 경원은 자신과 같은 무녀가 된 손녀를 불쌍히 여기는 한 명의 할머니면서도, '신령님과의 약속' 앞에서는 엄하기 그지없는 선배 무속인이다.

대학 생활과 무녀로서의 의무 사이에서 고민하는 손녀에게 '두 가지를 다 할 수는 없다'며 다그치던 그가 간만에 떠난 여행에서 한껏 들뜬 손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조용히 기도를 읊조리는 장면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카메라의 존재가 크게 드러나지 않는 박 감독 특유의 연출 방식은 관객이 스크린으로 인물의 삶을 관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박 감독은 "인간은 매 순간 선택을 한다. 그리고 그 시간이 켜켜이 쌓여 인생을 만든다. 소녀는 이미 선택권 하나를 빼앗겼다고 말하지만, 남은 하나를 받아들이는 것 역시 그녀의 선택이었음에 영화는 완성됐다"고 전했다.

다큐멘터리 '시간을 꿈꾸는 소녀' [하이하버픽쳐스·영화사 진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11일 개봉. 110분. 12세 관람가.

stop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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