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틸다 장인 최정원 “주환은 기적 같은 소년”

2023. 1. 4.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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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26일까지 ‘뮤지컬 마틸다’ 공연
빌리엘리어트·마틸다 4회 연속 출연
2021년 9월 ‘마틸다’ 첫 오디션 돌입
마틸다 엄마 미세스 웜우드 역 최정원
“주환 고음여전, 제2 박보검 될것” 극찬
에릭서 마이클·나이젤로 꾸준한 성장
6년차 배우 성주환 “내 점수는 73점”
성주환(왼쪽)은 2017년 ‘빌리 엘리어트’에서의 ‘스몰 보이’를 시작으로 ‘마틸다’의 에릭(2018), ‘빌리 엘리어트’의 마이클(2021)에 이어 현재 공연 중인 ‘마틸다’에선 나이젤로 무대에 서며 배우 최정원과 6년째 인연을 맺고 있다. 임세준 기자

“저요, 저요, 저요! 할 수 있어요. 저 시켜요.” 자그마한 등이 들썩이며 청량한 미성이 쩌렁쩌렁 울린다. 안달난듯 오른팔까지 번쩍 들어올리면 도무지 그 이름을 부르지 않을 수 없다. 교실 안의 ‘극 외향형’ 나이젤이다. 막상 이름이 불리자, 작은 등은 대답이 없다. 어쩔 줄 몰라하는 뒷모습을 바라보는 객석엔 웃음이 터진다.

“저도 이런 연기는 힘들어요. 나이젤은 전 세계에서 (성)주환이가 제일 잘할 거예요.”

뮤지컬 ‘마틸다’가 공연 중인 서울 디큐브아트센터에서 만난 배우 최정원은 40년 어린 후배 성주환의 연기에 이렇게 말했다. “말할 때는 허스키한데, 무대에만 올라가면 꾀꼬리가 따로 없어요. 관객들은 뒷모습만 보고 있지만, 생각나지 않는걸 인상을 찡그려 쥐어짜다 분에 못이겨 얼굴이 달아올라요. 그 모습이 뒤태에서도 느껴져서, 그 장면에서 매일 웃어요.”

무대에 서는 배우들 사이에선 우스갯소리로 ‘정면병’이라는 희귀병이 떠돈다. 관객은 반길지도 모른다. “상대 배우에게 이야기해야 하는 장면에서도 자꾸만 관객에게 보여주려고 몸과 시선을 객석에 돌리는” 병이다. “배우들은 관객을 등지고 연기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거든요. 그런데 주환이는 등 연기까지 잘 하더라고요.(웃음)”

성주환(13)은 “기적 같은 소년”(최정원)으로 불린다. 나이, 신장, 목소리까지 선별 기준이 되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와 ‘마틸다’의 단골 배우다. 2017년 ‘빌리 엘리어트’에서의 ‘스몰 보이’를 시작으로 ‘마틸다’의 에릭(2018), ‘빌리 엘리어트’의 마이클(2021)을 연기했다. 4년 만에 돌아온 ‘마틸다’에선 나이젤로 관객과 만난다. 하루가 다르게 외모와 체형이 커지는 아역 배우들에겐 딱 한 번 밖에 주어지지 않는 기회인데, 성주환은 햇수로 치면 6년째 이 어려운 무대에 발탁되고 있다. 대선배 최정원과도 2017년부터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성주환은 “‘마틸다’를 다시 하게 될 줄은 몰랐다”며 웃었다.

뮤지컬 배우 최정원(오른쪽)과 성주환. 임세준 기자

■ ‘마틸다’의 유일한 아역 경력직과 웜우드 부인

‘마틸다’(신시컴퍼니 제작)는 출연하는 배우들 모두에게 쉽지 않은 작품이다. 워낙에 준비 기간이 길다. 2021년 9월 첫 오디션을 시작했다. 배우를 꾸리고 연습하는 데에 상당 시간을 투자한다. “하고 싶다고 뚝딱 올릴 수 있는 작품은 아니에요. 개막 전 극장에 들어와 무대를 만들어 놓고 한 달 동안 또 연습을 해요. 배우들이 자신의 인생을 다 쏟아야 하는 작품이에요.” (최정원)

아이들이 중심에 선 작품인 만큼 ‘마틸다’가 무대에 오르기까지 아역배우들의 오디션과 연습 과정이 험난하다. 성주환은 이 혹독한 과정을 두 시즌이나 소화한 전 세계에서도 흔치 않은 ‘경력직’이다.

“주환이는 정말 신기한게 스몰보이 때도, 에릭 때도 지금 이 목소리였어요.” (최정원) 아이치고는 허스키한 목소리인데, 무대에 서면 맑고 곱다. 게다가 천장을 찌르는 고음이 터진다. “변성기가 오면 더이상 ‘마틸다’ 출연은 힘들 거라 생각했어요.” (성주환) 기적처럼 아직은 변성기가 찾아오지 않았다. 아역 배우들에게 요구되는 신장 조건에도 맞아 떨어졌다. “‘마틸다’가 올라간다고 했을 때 사실 정말 하고 싶었어요. 어릴 때,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많은 경험을 하고 싶었거든요.” (성주환)

‘마틸다 장인’ 최정원은 모성애는 외계어로 여기는 주인공 마틸다의 엄마인 미세스 웜우드 역을 다시 연기 중이다. 지금은 ‘자신만의 웜우드’로 무대를 채우고 있다. “초연 땐 원작에 충실해, 허영심 많고 자기밖에 모르는 엄마를 그렸다면, 이번엔 내 안의 웜우드를 꺼내며 함께 만들어가고 있어요.” (최정원)

성주환에겐 극적인 연기 변화가 필요했다. 성주환은 “에릭은 엄청 차분한 아이인데, 적극적이고 활발한 나이젤의 이미지로 변화해가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 성격은 MBTI로 치면 ENFP. “나이젤의 모습에 더 가까긴 한데…. 낯 가리는 나이젤이에요.(웃음)“

‘마틸다’의 신 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지만, 어린 배우의 연기 고민은 끝이 없다. “놀이터에서 소리 지르며 대사를 하거나, 교장 선생님인 미스 트런치불이 잡으러 올 때 자는 척 하다 일어나는 연기는 항상 어색한 것 같아요.” 가만히 듣던 최정원은 “나이젤이 자는 척하다 일어나야 했기에 상황상 어색한 것이 맞다”며 격려한다.

“주환아! 자는 척 하품하면서 일어나 ‘엄마, 나 학교 가야해요. 어어? 여기가 어디지?’ 다음 공연엔 우리 이렇게 해보자. 더 재밌을 것 같지?” (최정원) “네!”

뮤지컬 배우 최정원과 성주환이 처음 만난 것은 2017년이다. ‘빌리 엘리어트’를 시작으로 현재 공연 중인 ‘마틸다’까지 지난 6년간 네 작품을 함께 했다. 아역 배우 성주환의 성장을 지켜봐온 최정원은 “주환이는 제2의 박보검, 류준열이 될 보석 같은 아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임세준 기자

■ “제2의 박보검 될 보석같은 아이”…“늘 당당하고 멋진 선생님”

영국 작가 로알드 달의 소설을 원작으로 지난 2018년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 막을 올린 ‘마틸다’는 주조연 배우로 자리한 아이들의 입을 통해 무수히 많은 말이 쏟아다. 언어가 가진 창의력으로 어른들의 세계의 부당함을 말한다. 스무 명의 아이들이 자리한 작품이기에 무대 위 긴 시간을 건너뛴 호흡도 중요하다. 최정원은 “어려운 만큼 성취감이 있다”고 말했다.

“아역 배우들이 주는 힘을 통해 끊임없이 자극을 받아요. 뾰족한 돌들이 파도에 부딪혀 맨들맨들해지는 것처럼 제게 이 작품은 배우로서 부들부들하게 만들어주는 아름다운 동화예요. 아이들이 주는 상상 못한 에너지를 받으며, 계속 도전하게 되더라고요.” (최정원)

베테랑 배우 최정원의 사전에 ‘대충’이란 단어는 없다. “매일 아침 일어나 어제 공연의 부족한 점, 과했던 점을 고민”한다. ‘나만 돋보이는 공연’이 아닌 ‘모두가 돋보이는 공연’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적재적소에 들어가 관객들을 쥐락펴락 하는 애드리브도 고민과 분석의 결과다. “잠을 자다가가 아이디어가 좋다 싶으면 휴대폰에 녹음하거나 적어두기도 해요.” ‘오늘의 무대’에 서기 위해 그는 공연 4시간 30분 전에 극장에 도착한다. 공연장 앞 도림천을 한 시간 반 정도 걸은 뒤, 배우들과 워밍업 시간을 갖는다. 사실 ‘마틸다’에서 미세스 웜우드는 작은 역이다. 보편적인 ‘엄마’의 모습과는 달라 공감대를 쌓는 것도 어렵다. “관객들이 마틸다의 대사에 더 공감하고 연민을 가지도록 아역 배우들과 연기할 때 제가 할 수 있는 연기를 다 해주려고 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면, 결국 아이들에게 제가 준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받고 있었다는 걸 알게 돼요.” 어떤 역이든 ‘최정원화’하는 능력으로 인해 관객과 제작사엔 ‘믿고 선택하는 배우’로 자리한다. “캐릭터는 얄밉지만 장면들이 너무 좋다는 팬레터를 받을 땐 너무나 감사해요. 이 작품에 조금이나마 소금 같은 역할을 했구나 생각이 들어요.” (최정원)

성주환은 ‘빌리 엘리어트’에서 빌리 역할을 맡았던 형(성지환)의 영향으로 뮤지컬 배우를 꿈꾸게 됐다. 여덟 살에 막대 사탕을 입에 물고 무대 위로 등장한 작은 소년(‘빌리 엘리어트’)은 매작품마다 ‘1만 시간’을 넘게 쓰며 에릭으로, 마이클로, 나이젤로 성장했다. 매작품 무대에 처음 나설 땐 여전히 떨린다. 이제 시작이지만, 어른들 못지 않은 자기관리도 필수다. “공연이 있는 날엔 최대한 목을 아끼고,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기 위해 잠도 충분히 잔다”. “무대에 선 순간만큼은 지치고 힘든 일도 사라진다”고 한다. 어느덧 6년차 소년 배우가 됐지만, 스스로에게 매기는 점수는 박하다. “아직 만족하지 않아요. 73점 정도예요.” (성주환)

대선배 최정원이 보는 성주환은 “보석 같은 아이”다. “여러 색깔을 가지고 있고”, “워낙 연기를 잘해 뮤지컬을 떠나 TV와 영화에서도 돋보일 수 있는 배우로서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봤다. “무대 뒤에서도 아이들의 소리를 듣다 보면, 주환이는 바로 알아요. 한 번도 에너지가 떨어진 적이 없어요. 그런 주환이에게 영향을 받아 저도 끌어올릴 정도죠. 잘 닦아주면 크리스털이 될 아이예요. 73점이 아니라 103점이에요.” (최정원)

수십 년을 건너뛴 두 사람은 배우 DNA로 끈끈하게 연결돼있다. 매일 “오늘이 마지막일 것처럼 공연”하고, “다시 보여줄 수 없다는 생각으로 모든 것을 쏟아붓자”(최정원)는 마음이다. “공연이 두 번 있는 날이 있어요. 낮에 모든 걸 쏟았는 데도 저녁 공연이 더 좋을 때가 있어요. 주환이 그런 적 없어?” 최정원의 이야기에 성주환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한다.

“에너지를 다 써도 저녁이 되면 재정비가 돼 다시 힘이 솟더라고요. 전 그렇게 조금씩 33년 전보다 나아진 것 같아요.” (최정원) 그 모습 자체가 함께 하는 후배들에게 버팀목이 된다. 성주환은 “정원 선생님이 연습하고 계실 때면 옆에서 가만히 보기도 하고, 무대에 올라가 계시면 하트도 보낸다”며 “언제나 무대에서 당당한 모습이 정말 멋지다”며 감탄했다.

“주환이는 더 좋은 배우로 성장할 거예요. 제2의 류준열, 박보검이 될 거라 생각해요. 아직은 상대역으로 만난 적은 없지만,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성주환이라는 배우를 무대에서 제 아들이나 손자로 만나는 게 제 꿈이에요. (웃음)” (최정원) “정원 선생님처럼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언제나 제 공연을 믿고 보러올 수 있게 만드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성주환)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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