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 회사채는 찬밥, 은행에 줄 선다
중기, 자금조달 못해 발만 동동
높은 금리에 부실 우려 가속화
회사채시장에 다시 온기가 돌면서, 금리인상에 따른 이자 부담이 컸던 기업들이 대출을 갚고 채권으로 자금조달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채권 시장이 우량채 위주로 돌아가면서 대기업은 대출 잔액을 줄여나간 반면 중소기업은 여전히 ‘울며 겨자먹기’로 은행에서 높은 비용의 돈을 빌려 경영을 이어나가는 것으로 집계됐다. 실제 지난달 대기업의 대출잔액은 전월에 비해 7조원이 줄어든 반면, 중소기업대출은 2000억원 감소하는 데 그쳤다. 기업대출의 70% 이상이 중소기업 대출인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대출 감소는 대기업에서만 나타난 셈이다.
▶기업대출 감소세 시작됐지만...중기는 조달 방법 없어 ‘발 동동’= 4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기업대출잔액은 지난해 12월 말 기준 703조7000억원으로, 11월(710조4000억원)에 비해 7조원가량 줄었다. 이 같은 감소 추세는 1년 새 처음이다. 가계대출의 경우 금리 인상이 본격화되며 이미 감소세로 전환했지만 기업대출은 회사채시장 경색 등의 영향으로 자금 수요가 몰리며 꾸준히 증가 추세를 보여왔다.
이 같은 기업대출 감소세는 채권시장 안정화의 영향이 크다. 지난해 10월 레고랜드 사태 등으로 자금시장은 급격하게 경색됐다. 특히 회사채 금리가 치솟으며 기업들의 자금 수요는 은행으로 몰렸다. 그러나 금융당국의 채권시장안정화펀드 등 시장안정화대책 이후 시장은 점차 안정화됐다. 실제 지난해 10월 21일 5.73%로 연고점을 찍은 회사채(AA-,3년물) 금리는 이달 3일 기준 5.094%까지 떨어지며 안정세를 찾았다. 지난 12월 들어서는 국내 회사채시장이 약 두 달 만에 순발행 상태로 전환되기도 했다. 은행에 쏠렸던 기업들의 자금 수요가 점차 회사채시장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문제는 기업대출(개인사업자대출 제외)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중소기업대출이다. 지난해 말 기준 5대 시중은행의 중소기업대출 잔액(284조1000억원) 또한 전월에 비해 줄어들었다. 그러나 감소세는 약 2000억원으로, 대기업대출 감소액(7조원)의 35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마저도 중소기업의 대출 수요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지난해 기업대출 규모를 늘려왔던 은행권이 리스크 관리에 나선 결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중소기업대출은 비교적 마진이 큰 탓에 올해 은행들의 주력 대출 상품으로 판매됐지만, 중소기업대출의 위험 가중치가 높아지며 리스크 관리를 위해 증가폭을 둔화시킨 양상이 있다”고 분석했다.
▶중소기업 ‘대출 수요’ 계속...변동금리 비중 높아 ‘부실’ 우려 가속화= 실제 회사채 시장의 안정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들의 ‘자금난’은 계속되고 있다. 회사채 시장의 회복 또한 우량 회사채를 위주로 이뤄지고 있고, 비우량채는 발행조차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이달 회사채 발행에 나선 기업들은 대부분 AA등급 이상의 우량 기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단기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탓에, 당분간 A등급 이하의 회사채 수요는 살아나기 힘들 것이라고 보고 있다.
신용등급별 스프레드(금리 차)도 좁혀지지 않고 있다. AAA등급 3년물 회사채 금리와 같은 만기 A-등급 간 스프레드는 지난해 11월까지 1.02% 수준에 머물렀으나, 이달 3일 기준 1.237%p로 벌어졌다. 또 BBB- 회사채 금리가 현재 11%대를 상회하는 등 기업 자금 조달의 어려움은 점차 가중되는 상황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소기업의 대출 수요는 좀처럼 꺾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부실이다. 상반기 중 기준금리가 0.5%p까지 인상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경기침체 우려도 커진 탓에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한 기업대출 부실 우려는 점차 커지고 있다. 경기침체가 본격화되면 고금리 이자를 버티지 못한 기업대출의 연체가 발생하고, 곧 한계기업들의 도산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 기업대출의 변동금리 비중이 70%가 넘는 것을 고려했을 때,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 부담은 대폭 증가할 예정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기업대출에 대한 연간 이자부담액이 지난해 9월부터 올해 연말까지 최소 16조2000억원이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그중 한계기업의 올 연말 기준 이자부담액(연 9조7000억원)은 지난해 9월(연 5조원)에 비해 94%가량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기업대출 연체율은 점차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말 기준 국내은행의 기업대출 연체율은 0.26%로 전월 말 대비 0.03%p 상승했다. 특히 중소기업대출 연체율은 같은 기간 0.24%에서 0.3%로 0.06%p 올랐다. 물론 전반적인 수치는 높지 않지만 코로나19 만기연장·상환유예 연장 조치 등으로 인한 착시 현상이며, 실제 연체율은 1% 안팎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김광우 기자
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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