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대 오른 서울 ‘대중교통전용지구’…첫 지정 10년 만에 ‘연세로’로 끝나나
서울의 유일한 대중교통전용지구인 연세로가 시험대에 올랐다. 막혔던 일반 차량 통행을 재개한 데다 지구 지정 효과를 따져 존폐를 결정하기로 한 것이다. 지구 지정의 주 목적이었던 ‘교통’보다 ‘상권’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시는 연세로 대중교통전용지구 운용을 오는 9월까지 일시 정지하고 20일부터 일반 차량 통행을 허용한다고 4일 밝혔다. 그간 노선이 지나가는 시내버스와 사전 허가 조업차량 등만 진입했던 연세로에 일반 승용차 등 모든 교통수단이 지나갈 수 있게 된다. 심야와 새벽 시간대로 제한됐던 택시 운행도 상시 가능해진다. 이륜차는 계속 제한된다.
신촌로터리~연세대교차로 양방향 신호 체계와 차량 흐름은 지금과 같이 유지하기로 했다. 지체가 심해지면 경찰과 조율해 버스 정류장 인근에 별도 승하차 공간을 만드는 등 조치할 계획이라고 서울시는 설명했다.
이번 지구 운용 일시 중지는 일반 차량 통행 금지 후 매출이 감소했다며 주변 상인들이 지구 해제를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모든 교통수단 진입이 가능해진 연세로 인근의 변화에 대한 분석이 6월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서울시는 지구 운용 전후 신용카드 매출자료와 유동인구 등을 통한 상권 변화, 차량 속도·지체율 등 교통 영향을 살필 방침이다.
핵심은 신촌 상권 활성화 실패가 지구 지정에 의한 것인지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인근 상권 매출이 2017년 대비 2018년 연 10% 증가했다고 분석했지만 서대문구는 신촌동 상점들의 5년 생존율이 32.3%로 지역 내 최저치라고 파악했다.
신촌로터리에서 연세대 앞까지 이어지는 550m 연세로는 2014년 1월 서울에서 최초로 지정된 보행자·대중교통 전용공간이다. 단순히 통과하는 길이 아니라 사람들이 걷기 위해 들러 공간을 즐기는 문화거리를 만들자는 취지로 조성됐다.
당시 정부 차원에서 대중교통 이용 강화 방안이 추진되면서 국토교통부 중심으로 전용지구 지정을 논의했고, 도시교통정비 촉진법(제33조, 시행령 제14조)에 근거해 각 지자체장이 조례를 통해 지구 지정·유지·해제 권한을 갖게 됐다.
연세로는 지구 지정 이후 3~4m였던 보도 폭이 7~8m로 2배가량 넓어졌고 차로와 보도의 높낮이 차가 없어져 보행 환경이 대폭 향상됐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양방향 차량의 평균 시속이 10㎞ 미만으로 상습 정체 구역이었던 주변이 대중교통 중심으로 바뀌면서 유동인구의 접근성이 높아졌다는 게 중론이다.
이후 대중교통전용지구 지정은 다른 곳으로 확대되지 못했다. 서울시가 연세로 지정을 위해 지역 이해관계자를 설득할 때 주효하게 언급한 상권 활성화 효과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하지만 2012년 서울연구원의 선행 연구(서울형 대중교통전용지구 도입 연구)는 해외 사례 등을 바탕으로 “지정의 주요 목적이 주변 상권 수익성 제고일 때 대부분 실패했다”고 분석했다. 예컨대 1960~1970년대 최고 200개를 대중교통전용지구로 지정했던 미국은 이중 85%를 일반지구로 회귀했다. 단순하게 차량을 배제하는 ‘길’이 목표가 아니라 이를 통해 다양한 토지 이용, 인구 유입을 촉진하는 상권 등의 설계가 있어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지역에서는 상권 회복에 실패해 지구를 해제해야 한다는 주장과 보행 환경 등의 개선 효과가 커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붙은 상황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구체적이고 종합적인 분석과 검증을 통해 양쪽 입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상권 비교는 신촌뿐 아니라 유사한 지역까지 파악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조치가 사실상 해제 수순 아니냐는 시각도 많다. 서대문구는 이미 지난해 10월부터 연세로에 대한 주말 ‘차 없는 거리’ 운영을 중단했다.
특히 자동차 중심의 도시 환경을 사람 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해 도입한 지구가 ‘상권 평가’로 점철되는 데 대한 우려가 크다. 향후 서울에서 비슷한 보행 환경 개선 정책을 도입하거나 새로운 전용 지구를 추진할 때 당위성을 가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오성훈 건축공간연구원 보행환경연구센터장은 “대중교통전용지구는 차량을 억제하고 대중교통 선호도를 높여 지속가능한 교통 체계를 만드는 것이 목표고, 상권 활성화는 결과적인 효과”라고 설명했다. 오 센터장은 “누적 데이터 등 명확한 판단 근거가 부재한 상황에서 지구의 방향이 결정된다면 서울시와 국토교통부가 유사한 교통 전환 정책을 추진할 때 기준도 모호해진다”고 덧붙였다.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 강은 기자 e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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