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면 타고 천장 매달리고...산업현장 히어로 ‘사족 등반 로봇’

2023. 1. 4.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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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교량·송전탑·송유관·건설 현장 등
추락 위험 현장서 안전사고 예방효과
박해원(왼쪽)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사족등반로봇’을 살펴보고 있다.

다리가 4개인 로봇이 가파른 벽면을 초당 70㎝의 속도로 빠르 게 척척 올라간다. 영화 속 스파이더맨처럼 건물의 벽면을 자유자재로 타고 오르내릴 수 있는 신개념 로봇이 현실에서도 등장했다.

그 주인공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계공학과 박해원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사족 등반 로봇이다. 박해원 교수는 국내 최초 이족보행 휴머노이드 로봇 휴보룰 만든 오준호 KAIST 명예교수에 이어 국가대표급 로봇공학자로 꼽힌다.

이 로봇은 배, 교량, 송전탑, 대형 저장고, 건설 현장 등 대형 구조물에서 사람 대신 점검, 수리, 보수 임무를 수행하는 등 폭넓게 이용될 전망이다.

기존 벽면을 오르는 등반 로봇은 바퀴나 무한궤도를 이용하기 때문에, 단차나 요철이 있는 표면에서는 이동성이 제한되는 단점을 가졌다. 다리가 달린 등반 로봇은 장애물 지형에서의 향상된 이동성을 기대할 수 있으나, 이동 속도가 현저히 느리거나 다양한 움직임을 수행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사족 등반 로봇의 빠른 이동을 가능하게 하려면 발바닥은 흡착력이 강하면서도 흡착력을 빠르게 온-오프 스위칭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거칠거나 요철이 있는 표면에서도 흡착력의 유지가 필요하다.

연구팀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영전자석과 자기유변탄성체를 보행 로봇의 발바닥 디자인에 최초로 적용했다. 영전자석은 짧은 시간의 전류 펄스로 전자기력을 온-오프할 수 있는 자석으로 자기력의 유지를 위해 에너지가 들지 않는다. 연구팀은 사각형 구조 배열의 새로운 영전자석을 제안, 기존 영전자석과 비교해 스위칭에 필요한 전압을 현저하게 낮추면서도 보다 빠른 스위칭이 가능케 했다.

또한 연구팀은 고무와 같은 탄성체에 철가루와 같은 자기응답인자를 섞어 만든 ‘자기유변탄성체’를 장착, 발바닥의 자기력을 현저히 떨어트리지 않으면서도 마찰력을 높였다. 사각형 구조의 영전자석과 자기유변탄성체로 구성된 발바닥을 역동적인 보행에 최적화된 액추에이터와 통합해 등반 로봇을 개발했다. 발바닥 무게는 169g에 불과하지만 약 54.5㎏의 수직 흡착력, 45.4㎏의 마찰력을 제공한다.

개발한 등반 로봇은 초속 70㎝의 속도로 가파른 벽면을 고속 등반했고, 최대 초속 50㎝의 속도로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보행할 수 있었다. 이는 보행형 등반 로봇으로는 세계 최고의 속도다. 또한 바닥에서 벽으로, 벽에서 천장으로 전환이 가능하고, 벽에서 돌출돼 있는 5㎝ 높이의 장애물도 무난히 극복할 수 있는 성능을 뽐냈다.

연구팀은 배, 교량, 송전탑, 송유관, 대형 저장고, 건설 현장 등 철로 이루어진 대형 구조물의 점검, 수리, 보수에 폭넓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러한 곳에서의 작업은 추락, 질식 등의 심각한 위험성이 존재하고 있어, 자동화의 필요성이 시급한 곳이다.

엄용 KAIST 기계공학과 박사과정은 “벽과 천장을 포함한 다양한 환경에서도 로봇이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음을 증명했다”면서 “조선소와 같은 철제 구조물에서 사람 대신 위험하고 힘든 작업을 수행하는 데 활발히 사용돼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고 안전사고 예방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로봇 분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로보틱스(Science Robotics)’ 12월호 표지논문으로 선정돼 출판됐다.

한편 박해원 교수 연구팀은 큰 강아지를 닮은 4족 보행로봇 개발에도 성공했다. 이 로봇은 험로나 계단, 장애물 구간에서 자유롭게 이동하고 원격으로 조종이 가능하다. 특히 로봇 몸체에 다양한 임무장비를 탈부착할 수 있어 활용범위가 넓다.

연구팀의 성능 시연에서 이 로봇은 약 10㎞/h의 최고속도로 빠르게 달리면서도 35㎝ 높이의 장애물도 훌쩍 뛰어넘는 묘기를 선보였다. 사람의 발차기와 같은 외부의 강한 충격에도 넘어지지 않고 보행했다.

박해원 교수는 “더 강력한 토크와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는 모터를 포함한 로봇 부품을 탑재하고 카메라 센서와 지능 알고리즘을 강화할 예정”이라면서 “미국, 일본에 견줘 결코 뒤쳐지지 않는 로봇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구본혁 기자

nbgk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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