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방위에서 가치공유로… 비핵화 과제 남긴 한미동맹 70년
2000년대 초 반미, FTA로는 관계 확대
美 대외전략 변화 속 사드 갈등 휘말려
'난제' 북핵은 2018년 대화에도 진행형
편집자주
2023년 한미동맹이 70년을 맞았다. 전후방 주한미군기지 현장 르포, 전술핵 재배치 찬반 대담, 전문가 인터뷰, 70년의 역사적 장면 등 다각적 조망을 통해 동맹의 의미와 가치를 되짚어본다.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한미동맹이 심도 있고 포괄적인 전략적 관계로 성숙해 왔다는 인식을 공유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첫 정상회담에서 '포괄적 전략동맹'을 선언했다. 한미 양국은 전통 안보와 경제 이슈는 물론 자유와 평화, 번영의 가치에 기반해 국제사회의 주요 이슈에서 협력하는 관계로 진화했다.
하지만 70년 전 동맹을 맺을 때만 해도 북한의 침략을 막고 공산권을 견제하기 위한 비교적 단순한 관계였다. 이후 △외부 위협의 다양화 △미국의 아시아 정책 변화 △국내 정치 상황 △한국의 경제성장 등으로 동맹의 폭과 깊이가 확장됐다. 70년 역사의 주요 장면들에 이 같은 굴곡이 드러나 있다.
①한미상호방위조약
한미동맹은 1953년 10월 1일 체결한 한미상호방위조약에서 시작됐다. 6·25전쟁을 끝낸 정전협정(7월 27일) 체결 두 달여가 지난 시점이었다. 분단상태를 받아들일 수 없다던 이승만 대통령이 전쟁 중단의 대가로 요구한 것이다. 여기에 공산권의 세력확장에 우려가 커진 미국의 입장이 맞물려 군사동맹의 형태로 탄생했다.
조약은 △외부 무력공격에 한미가 상호 협의하고(2조) △공동으로 위험에 대처하며(3조) △미국이 육해공군을 한국 영토와 부근에 배치할 권리를 갖는다(4조)고 규정했다. 이에 따라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등 동맹의 주요 뼈대를 갖췄다.
②베트남 전쟁
베트남 전쟁으로 동맹의 힘과 한계를 동시에 확인했다. 1964~1973년 한국군 역대 최다인 연인원 32만여 명을 이역만리 전장에 보내 미국을 도왔다. 정부는 파병 대가로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유사시 미군의 한반도 자동개입' 조항을 추가하고 주한미군 감축을 중단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미국은 끝내 외면했다. 자동개입 조항은 여전히 희망사항으로 남아 있다. 1971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데탕트 정책에 따라 미 7사단을 철수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아시아 개입 최소화 원칙이 담긴) 닉슨 독트린이 나오면서 박정희 정부는 충격을 받아 핵 개발에 나서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③'효순·미선' 사건
5·18 민주화운동을 기점으로 1980년대 이후 미국에 대한 반감은 똬리를 틀고 있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취임 후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1981년 전두환 대통령을 백악관에 초청했다. 신군부에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다.
반미감정이 폭발하는 사건이 터졌다. 2002년 6월 13일 경기 양주시 국도에서 여중생 효순·미선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들끓은 민심은 미국을 향한 분노로 표출됐다. 이때부터 미 정부는 자신들을 향한 한국 국민들의 여론을 주시하고 반응하며 성의를 보였다.
이처럼 험악한 상황에서도 동맹의 정신은 버리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가 온갖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파병을 결정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④한미 FTA
한미 경제관계가 동맹의 핵심 현안으로 부각됐다. 200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다. 이후 수차례 재협상 끝에 FTA는 2012년 발효됐다.
협상과정에서 국내 반대시위가 거셌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FTA 폐지를 압박하기도 했다. 그러나 과거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FTA 발효 이후 10년간 한미 간 무역규모는 66.1% 늘었다. 한국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2배, 한국 기업의 대미 누적 투자금액은 3배 증가했다.
⑤주한미군 사드 배치
2016년 7월 주한미군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결정했다. 사드는 한미동맹이 한반도를 넘어선 갈등에 휘말린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은 사드가 오직 북한 미사일 방어 목적이며 미국 미사일방어체계(MD)에 참여할 의사도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반면 중국은 미국의 의도를 의심하며 한국에 경제보복으로 '화풀이'를 했다.
미중 경쟁에 한국이 끼인 모양새가 됐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전 국립외교원장)는 "미국이 9·11 테러를 계기로 안보·군사 중심 대외전략으로 복귀하고 대상을 테러리즘,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중국으로 넓히는 과정에서 한미동맹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았다"며 "우려되는 건 사드와 한미일 군사정보 공유가 그 일환으로 읽힌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⑥2018년 남북·북미 대화
비핵화는 한반도의 영원한 과제다. 그 대상은 북한이다.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으로 북핵위기가 시작됐다. 북한은 2006년 이후 6차례 핵실험을 감행하고 2017년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발사하며 위기를 키웠다.
2018년 남북·북미대화를 통해 돌파구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다. 사상 처음으로 북미 정상에 이어 남북미 정상이 얼굴을 맞댔다. 하지만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장을 박차고 떠나면서 대화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이상현 세종연구소장은 "과거 미국의 대북정책을 감안하면 한미동맹의 큰 틀에서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었다"며 "결국 북한이 진정성을 가졌는지가 의심스럽고, 트럼프 대통령도 본인의 인기를 고려한 측면이 커 아쉬움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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