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교육 개혁'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2023. 1. 4.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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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2023년 신년사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신년사 등을 통해서 노동‧교육‧연금의 3대 개혁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3대 개혁은 ‘어렵고 힘들지만 우리가 반드시 나아가야 하는 길’이고, ‘국민의 명령’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3대 개혁은 새로운 과제가 아니다. 오히려 취임식 직후였던 작년 5월 16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처음 내놓았던 해묵은 과제다. ‘지금 당장 3대 개혁을 추진하지 못하면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이 위협받게 된다’는 것이 당시 대통령의 절박한 입장이었다. 

그러나 정부와 국회의 ‘초당적 협력’은 비현실적인 환상으로 끝나고 말았다. 교육부는 장관 인선 문제로 넋을 빼앗겨버렸고, 국회도 대통령이 주도하는 ‘개혁’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었다. 더욱이 대통령이 강조한 ‘기술 진보 수준에 맞는 교육’의 정체가 분명치 않았다. 교육계에서는 대부분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디지털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실제로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AI 교육’과 ‘디지털 100만 인재 양성’ 등을 강조해왔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입시 불공정, 기초학력 저하, 학령인구 감소, 교육계의 이념 편향 등의 산적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훨씬 더 시급하고 절실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어쨌든 교육 개혁의 불씨는 완전히 꺼져버리고 말았다.

국정과제점검회의 주재하는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제공

● ‘복지’와 ‘성장’을 위한 ‘교육 서비스’

국정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던 교육 개혁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난 것은 작년 12월 15일 전국에 생중계된 제1차 국정과제 점검회의 덕분이었다. 대통령이 강조했던 교육 개혁의 정체와 공교육의 안타까운 현실에 대한 시민 패널의 지적이 있었다. 

대통령의 답변은 단순하고 명쾌했다. ‘유아 돌봄부터 중등교육’까지는 복지 차원에서 모두가 혜택을 누려야 하고, ‘고등학교부터 시작하는 고등교육’은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교육은 ‘복지’와 ‘성장’을 위해 국가가 국민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주장이다.

미래 지향적인 디지털 교육이나 난마처럼 뒤엉킨 교육 현안과는 거리가 먼 대통령의 답변은 단순하고 명쾌한 만큼 논란의 여지도 많은 것일 수밖에 없었다. 복지 차원에서의 교육 서비스에 대한 주장은 생뚱맞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중학교의 의무교육이 오래 전부터 정착되어 왔고, 2021년부터는 고등학교 무상교육을 시행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답변에서는 교육의 대상인 ‘학생’에 대한 고민이나 배려를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다. 학생은 국가의 경제 성장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인적자원’이 아니라 스스로의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이라는 분명한 인식이 실종되어 버렸다. 교육은 헌법을 통해서 모든 국민에게 보장된 기본적인 ‘인권’이라는 상식도 설 자리가 없어져 버렸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국민교육헌장이 떠오른다는 지적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신년사에서 밝힌 교육 개혁의 현실적인 방법론도 단순하고 명쾌하다. 복지를 위한 중등교육은 교육과정을 다양화해서 공정한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고, 성장을 위한 고등교육은 그 권한을 지역에 넘겨서 교육과 지역 산업을 연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 각국이 변화하는 기술과 폭발하는 인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교육 개혁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대통령의 인식도 놀라운 것이었다. 진정한 교육 개혁의 진정한 의미를 애써 외면한 지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고등교육의 권한을 과감하게 지역으로 넘겨서 교육과 지역의 산업이 연계해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주장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다. 대통령의 발언은 시도교육청에 투입되던 교육세 재정 중 일부를 떼어내서 신설한 9조7400억 원 규모의 ‘고등·평생교육특별회계’의 운영에 대한 교육부의 섣부른 제안을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현실적으로 고등교육을 지자체로 넘기기 위한 법과 제도가 마련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지자체가 고등교육의 권한을 넘겨받을 만큼의 행정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니다. 더욱이 중앙 정부도 해내지 못한 산학협력을 지자체가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공허한 것일 수밖에 없다. 교육부의 제안은 교육세의 일부를 포기하게 된 지자체를 달래기 위한 것이었을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그런 정책이 교육 개혁의 핵심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아이들의 돌봄이 교육 개혁의 핵심 과제라고 보기도 어렵다. 물론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합치는 ‘유보통합’이 정치적·행정적으로는 복잡한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보통합이 대단한 국민적 합의를 필요로 하는 일은 아니다. 이미 교육부가 2025년부터 유보통합을 시작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유치원위원회 관계자들이 3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영유아교육·보육통합추진위원회 및 추진단 설치·운영에 현장 교사 의견을 반영하라"며 교육부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 존재 이유를 잃어가는 교육부

장관이 ‘사회부총리’를 겸직하고 있는 거대 교육부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누구에게나 공정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중등교육은 민주화와 함께 본격적인 지방자치제가 시작되면서 시도교육청으로 이관되어버렸다. 그동안 교육부가 초·중·고등학교의 관리·운영에 대해서 전국의 시도 교육감들과 끊임없이 갈등을 빚어왔던 것은 제도적으로 정상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실제로 새로 개편된 교육부 직제에서는 지방의 초·중·고등학교를 관리하는 조직은 찾아볼 수 없다.

초·중등학교의 교육과정도 작년 7월에 새로 출범한 국가교육위원회의 핵심 업무가 되어 버렸다. 국가교육위원회법 제12조(국가교육과정 기준 및 내용의 고시 등)에 명시된 사항이다.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에서 운영하는 ‘교육과정’의 기준과 내용에 대한 기본적인 사항을 고시하는 업무는 이제 교육부가 아니라 국가교육위원회가 담당하도록 명시되어 있다.

결국 대통령이 교육 개혁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면 교육부가 틀어쥐고 있던 대학 관련 업무도 지자체로 넘길 수밖에 없게 된다. 물론 거대 야당이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현실에서 대학 업무의 지자체 이관이 순조롭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과 교육부가 밝힌 교육 개혁이 추진되면 교육부에 남아있던 마지막 동아줄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 과연 평생교육 업무만으로 거대한 교육부의 존재 이유를 정당화시킬 수 있을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교육부가 역사 속으로 영원히 사라지게 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기대하듯이 ‘교육 서비스’를 통해서 ‘복지’와 ‘성장’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게 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지난 정부가 성급하게 출범시켜놓은 국가교육위원회가 원만하게 운영될 것이라는 기대도 지나치게 순진한 것이다. 벌써부터 위원들의 이념적 성향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고 있고, 불편한 내부 파열음도 터져 나오고 있는 모양이다. 정권 교체기마다 임기제인 위원들의 거취 논란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교육 현장의 현실도 암울하다. 교육과정에 대한 이념적 논란이 쉽게 해결되기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맹목적인 스펙 쌓기로 무너져버린 공정한 입시 제도에 대한 기대를 되살리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다. 과거의 ‘학력고사’와 근본적으로 아무 차이가 없는 ‘짝퉁 수능’의 폐해도 심각하다. 교육부가 국사 교과 필수화를 위해 무작정 밀어붙인 ‘문·이과 통합’의 부작용이 심각한 ‘문과 침공’으로 드러나고 있다.

결국 공정하고 투명한 대학입시를 위한 제도 개선이 교육 개혁의 핵심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초·중·고등학교의 기초학력 저하도 두고 볼 수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수월성’과 ‘기회 균등’을 두고 줄다리기를 해왔던 교육 현장의 이념적 편향을 해소하기 위한 진정한 ‘통합의 노력’이 절실하다. 현실화되고 있는 ‘학령인구 감소’에 대한 합리적인 대안도 마련해야 한다. 대학에게 ‘자율’과 함께 무거운 ‘사회적 책무’를 떠맡기는 길을 찾아야 한다. 남아돌게 될 대학의 자원을 사회적으로 유용하게 활용하기 위한 대안도 찾아내야 한다. 학생의 학습권과 교사의 교권을 함께 지켜줄 수 있는 공교육 현장을 만들어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야만 진정으로 지속 가능한 사회를 구축할 수 있다.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9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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