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성, 죽은 자에게 해줄 유일한 것

이정규 기자 2023. 1. 4.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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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재난 이후 사회적 돌봄이 필요한 이유 <유류품 이야기>

가까운 사람을 예상치 않게 잃고 나면 삶이 끝없이 흔들린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다면 그 사람을 향한 마음이 쉽게 정리될 수 없다. 사람의 육체가 사라지더라도 감정이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인 ‘모호한 상실’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참사로 많은 사람이 숨졌지만 죽음이 끝까지 규명되지 못할 때 일어난다. 떠난 이를 향한 감정의 여진이 사회 곳곳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평범한 우리 삶까지 뿌리째 흔들기도 한다.

대규모 참사 현장에서 죽음을 마주하는 일을 해온 재난 수습 전문가가 책을 냈다. 현재 재난 수습 회사 대표로 일하는 로버트 젠슨은 실종자의 주검을 수습하고 신원을 확인해 그 사람의 소유물을 가족에게 돌려보내는 일을 해왔다. 그가 마주한 현장은 9·11테러, 허리케인 카트리나, 2004년 아시아 쓰나미, 2010년 아이티 대지진, 오클라호마 폭파사건 등이다. <유류품 이야기>(김성훈 옮김, 한빛비즈 펴냄)에는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재난을 마주하며 그간 겪었던 일이 정리돼 있다.

책에는 삶과 죽음, 죽음을 대처하는 우리의 바람직한 태도 등에 대한 지은이의 생각이 담겨 있다. 지은이는 “대량 사망 사건에 직접 영향을 받은 생존자는 고개를 돌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시스템이 이들을 어떻게 돌보느냐에 따라 이 시기가 얼마나 길고 힘들게 이어질지가 달라진다”고 밝혔다.

존엄성이야말로 죽은 자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 오클라호마시티 폭탄테러 사건을 수습하며 지은이가 든 생각이다. 그는 당시 전사자 예우 담당국 주요부대인 육군 제54 병참중대 지휘관으로 생존자 수색에 참여했다. 주검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잔해에 끼여 제복이 드러난 해병의 주검을 반으로 잘라 빼내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명령을 거부했다. 대신 주검을 오롯이 빼낼 수 있을 때까지 보이지 않게 덮어뒀다. 온전한 주검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때, 그제야 가족이 새로운 현실을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어서다.

지은이는 내전을 겪은 발칸반도에 1995년 파병되기도 했다. “우리 지도자들은 죽은 사람을 처리하지 않고는, 유족과 난민이 그들이 잃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답을 찾도록 돕지 않고는 그저 슬픔을 뒤로 미루고 내전으로 갈가리 찢긴 나라의 궁극적 회복을 뒤로 미룰 뿐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려 하지도 않은 것 같다.” 당시 주검의 처리를 소홀히 하는 정부에 던진 지은이의 메시지는 각종 참사와 재난에 노출된 한국 사회에도 유효한 듯 보인다.

이정규 기자 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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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허무를 보다

김영민 지음, 사회평론 펴냄, 6만5천원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대형 판본이다. 글씨를 크게 하고 화보를 다섯 배로 더 넣고 판형을 두 배로 키웠다. ‘허무’에 관한 책은 왜 이런 예술적 도판으로 가득하고 그것이 필요할까. 인간이 풍요롭게 산다는 건 문화의 바닷속을 유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술의 사회학적 읽기

최샛별·김수정 지음, 동녘 펴냄, 2만2천원

거대한 햄버거 조형물은 예술적으로 평가됐지만, “햄버거에는 케첩이 필요하다”며 거대한 케첩병을 만들어 기부하려 한 고등학생들의 제안은 거절당했다. 예술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가까운 예로 병역특례 기준이 되는 ‘예술 공헌’이 있다. 정부는 BTS의 빌보드 1위를 기준에 미달한다고 판단한다. 이러한 모순에 답하기 위해 예술을 사회사적으로 다시 읽어야 한다.

이상한 나라의 모자장수는 왜 미쳤을까

유수연 지음, 에이도스 펴냄, 1만6천원

제목의 모자장사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온다. 신경과 전공의인 저자는 그 이유를 당시 유행한 톱해트를 만드는 노동자가 수은에 노출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성냥팔이 소녀가 성냥을 켜면서 환상을 보는 건 성냥의 주재료에 백린이 들어가서다. 고전과 동화책, 신화 속에서 의학적 맥락을 살펴본다.

마약 중독과 전쟁의 시대

노르만 올러 지음, 박종대 옮김, 열린책들 펴냄, 2만2천원

나치 시대의 독일 제약회사는 모르핀을 포함한 약을 생산하면서 크게 성장한다. 과자에도 마약 성분인 메스암페타민이 들어갔다. 마약을 상시 복용한 독일군은 밤낮없이 진격하고 망설임 없이 도시를 점령한다. 만성소화불량이 있던 히틀러도 각종 마약을 처방받는다. 저자는 최악의 범죄자와 제국의 탄생 배경에 마약이 있다고 대담한 가설을 내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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