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기술로 ‘암세포 네트워크’ 규명… 차세대 암 진단 지표 개발[Science]
■ Science
- 권성훈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문경철 서울의대 교수 연구
암에 걸린 조직 세포 상호작용
시각적으로 표현한 지도 제작
그래프 기반한 딥러닝 활용해
환자 5년 생존율 정확히 예측
“MRI·엑스레이에도 적용가능
의료영상데이터 분석 큰 도움”
인공지능(AI)의 실력이 사람과 거의 비슷하거나 오히려 능가하는 대표 분야가 2가지 있다. 자연어 처리(NLP)와 이미지 처리가 바로 그것이다. 자연어 처리는 인간의 일상 대화를 컴퓨터가 알아듣게 하는 기술이다. 스마트 기기 주인이 말로 하는 지시를 척척 이행하는 시리, 빅스비, 알렉사 등 AI 비서와 은행, 관공서에서 안내원을 대신해 민원·상담 전화를 받는 챗봇은 NLP 기술의 상용화 사례다. 말로 기계를 움직이는 보이스 인터페이스(Voice Interface), 책의 활자를 사람 음성으로 읽어주거나 대화를 글로 받아 적어주는 TTS(Text To Speech), STT(Speech To Text)를 포함해 외국어의 통·번역에도 광범위하게 보급돼 활용되고 있다. 이와 함께 2016년 인간 바둑 최고수를 이겨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알파고는 이미지 처리 기술의 혁명이었다. 바둑판의 가로세로 19줄이 만드는 361개 교차점의 돌 위치를 좌표로 바꾼 다음, 승리 기보(棋譜)의 이미지를 기계 학습시켰다. 수많은 바둑 기보 속에서 승리의 규칙을 찾아낸 바둑 인공지능은 이미 인간 기사(棋士)를 능가할 만큼 똑똑해졌다. 특히 이미지 처리 기술은 의료 현장에서 크게 각광받고 있다. 병원에서 엑스레이(X-Ray), CT, MRI뿐 아니라 초음파·내시경 등 영상 장비를 통해 무수한 이미지가 의료 데이터로 축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공학자들이 의사들과 손잡고 AI 기술로 암 조직 이미지에서 ‘암세포 네트워크’ 찾기 방식으로 개발한 차세대 암 진단 지표가 주목받고 있다. 환자의 5년 생존율을 훨씬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암세포 네트워크란 암에 걸린 조직 내부의 세포 간 상호 작용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지도다. 세포 하나를 구성요소(node·노드)로 놓고 상호 관계(link)를 연구하는 그래프 이론을 동원했다. 그래프를 AI에 학습시킨다는 의미에서 그래프 딥러닝이라 불린다. 지금까지는 단순히 국소적인 암세포의 모양만을 AI가 학습, 판단하는 딥러닝 기술에 그쳤다. 그러나 암 환자의 생존율을 더 정확하게 예측하려면 암세포, 면역세포, 혈관세포 등 서로 다른 세포 간 관계를 파악해야 한다. 암 조직 내부의 세포 간 상호 작용을 암 미세환경이라 한다. 암 치료의 최강 타자인 면역 치료제는 암 미세환경에 따라 치료 성공 여부가 결정될 만큼 네트워크 자체가 하나의 생존율 예측 진단 지표다. 암 미세환경을 의료 현장에서 해석 가능한 방식으로 도출하려면 대량의 데이터에 기반한 검증이 필요하지만 인간 의료진이 이를 직접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만큼 비효율적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AI 딥러닝 기술이 도입됐으나 그동안 국소적인 암세포의 모양만 학습·판단했기 때문에 암 미세환경을 반영하지 못해 의료진이 암 조직을 진단하는 방식과 괴리가 발생했었다.
서울대 공과대 전기정보공학부 권성훈 교수는 서울의대 문경철, 박정환 교수와의 공동 연구를 통해 암 조직 이미지를 세포 간의 그래프인 ‘암세포 네트워크’로 표현하고 의료진이 해석 가능한 그래프 기반의 딥러닝 기술을 통해 새로운 진단 지표를 발굴했다고 밝혔다. 공동 연구팀은 암 조직상에서 암세포의 모양뿐 아니라 세포 간의 상호작용을 나타낼 수 있는 암세포 네트워크를 제작하고, 세포 간의 상호 작용 학습과 해석이 동시에 가능한 그래프 딥러닝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특히 해석 가능한 그래프 딥러닝 기술을 제안해 환자의 생존율에 영향을 미치는 암 미세환경을 규명함으로써 실제 현장 의료진들의 정확한 판단에 도움을 주었다.
연구팀은 서울대병원과의 협업을 통해 암 환자의 생존율을 예측하는 AI를 만들 수 있었다. AI를 해석해 암 조직 내 혈관 형성과 암세포, 면역세포 간의 관계성이 생존율 진단 지표가 될 수 있음을 밝혔다. 이를 위해 우선 암 조직 이미지에서 거리가 가깝고 모양도 비슷한 세포군(群)을 하나의 노드로 삼아 전체 네트워크 지도로 그렸다. 다음에는 이미 알고 있는 환자의 5년 생존율을 바탕으로 AI에 네트워크 패턴을 학습시켰다. 어떤 네트워크가 생존율이 낮은지 이제 AI가 알게 됐다. 최종적으로 조직 이미지를 10만 개의 작은 조각으로 나눈 패치(patch)별로 생존율 수치가 낮은 노드를 AI로 군집화(clustering)하자 암세포 네트워크를 볼 수 있게 됐다. 논문 제1 저자 이용주 박사와 신경섭 석·박사통합과정 연구원은 “이번에 개발된 암세포 네트워크 제작 방식과 그래프 딥러닝 기술은 암 조직뿐 아니라 MRI·엑스레이 등 어떤 의료 영상 데이터에도 적용 가능한 획기적인 방식으로, 다양한 의료 영상 데이터에서 중요한 상호 작용을 밝히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제1 저자로 공동 연구를 진행한 서울대 보라매병원 박정환·오소희 교수는 “의료진이 해석 가능한 딥러닝 모델이 이전에도 제시된 바 있지만, 복잡한 세포 간의 상호작용을 반영해 진단 지표를 제안한 연구는 처음이었다. 세포 간 상호작용과 같은 암 미세환경은 암의 위험도 판단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를 제시할 수 있는 본 모델은 새로운 진단 지표 발굴에 한 획을 그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번 연구는 세계적 권위의 국제 학술지 ‘네이처 바이오메디컬 엔지니어링(Nature Biomedical Engineering)’에 게재됐다.
노성열 기자 nosr@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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