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다 고택 내부 3㎞ 쇼생크탈출로, 당황한 예비신부 [사우디 여행]
두번은 보아야 진면목 아는 알발라드
나 보다 남을 더 생각하는 고택 구조
얼굴 못본 정혼자가족 예고없는 방문
웰컴 다과 전하려던 손발 후들후들
전통공연단 “함께 하자” 이방인에 손
옛거리 패션 다양..메주 같은것도 판매
[헤럴드경제, 제다=함영훈 기자] 사우디아라비아 제2도시 제다에 머문다면,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원도심 ‘알발라드(Al Balad)’를 두 번 이상 가 보는 것이 좋겠다. 한 번 둘러보아서 그 깊은 맛을 다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화유산에 남겨진 스토리, 문양과 디자인에 담긴 뜻도 깊이 알게 되거니와, 자세히 보면 아직도 남아있는 옛시장에서 우리의 메주, 고춧가루 닮은 것도 팔고, 해가 지면 쇼핑거리에는 현대적 감각의 패션으로 치장한 내외국인들이 활보해 한국인이 그간 가졌던 선입견을 다시한번 지운다.
알발라드 마을 중심에 있는 마트볼리 고택(Matbouli House) 뮤지엄은 중세 히자즈(Hijaz) 생활문화의 속살을 들여다 보는 곳으로, 필수 여행지이다. 입장료는 10리얄(3300원).
돈 좀 모은 상인의 오래된 집을 관람이 편하도록 조금만 개조한 채 보존해, ‘라와신’(Rawashin) 양식의 돌출형 목재 발코니와 오래된 공예품을 그대로 보여준다.
제1응접실 손님들의 의자는 높다. 발을 땅에 닿지 않게 축 늘어지게하고 다리를 꼬지 않도록 함으로써 손님들의 발 휴식을 유도했고, 공간이 커진 의자 밑을 생활용품 수납장으로 활용한다. 주인이 손님보다 자신을 낮추려는 태도도 보인다. 작은 부분이지만 지혜와 배려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라와신’ 발코니창은 환기 채광을 위해 오픈해도 프라이버시가 보장된다.
제2응접실은 오락과 휴식 공간이고, 제3 접견실은 주인쪽에서 커피와 다과를 대접하는 공간이다.
역사문화해설사 나이프(Naif)씨는 주인 쪽 사람과 대면하기 시작하는 이 접견실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전했다. 옛 사우디에도 조선시대 처럼 예비 신랑-신부가 얼굴도 보지 못한 채 결혼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예비신부는 미리 신랑을 보고 온 엄마한테서 예비신랑의 모습에 대한 얘기, 첫날밤을 치르는 요령 등을 듣는다. 혼자서 예비신랑의 모습을 상상해보는 동안 예식일은 임박한다.
결혼을 코 앞둔 신부는 여느때 처럼 손님이 왔다고 하기에 늘 하던대로 아라비아커피와 대추야자 등 다과를 쟁반에 담아 접견실로 가져가는데, 손님 중 중년의 여성 한 분이 옆에 있는 아들에게 “얘야 저 규수가 네 신부될 분이란다”라고 말하는게 아닌가. 갑자기 웰컴다과 쟁반을 들고가던 처녀가 쟁반에서 달그락 소리가 날 정도로 손과 발을 부들부들 떨었다고 한다. 나이프씨의 액션연기는 스토리의 실감을 더했다. 이때 예비신랑은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못했는데, 이런 풍경은 옛 사우디 전통마을에서 종종 일어난다고 한다.
이 고택에는 전쟁 등에 안전하게 대피하기 위해 밖으로 은밀히 통하는 통로가 3㎞나 연결돼 있다고 한다. ‘쇼생크탈출’을 연상케 한다. 지하 6m 지점에 있는 이 통로는 평소엔 얼음을 저장하는 석빙고 역할을 한다.
최상층 바로 밑에 주인의 생활공간이 있는데, 응접실 3개에 비해 화려하지도 않고, 넓지도 않아 겸손함이 느껴진다. 맨 꼭대기층 이른바 스카이라운지도 손님을 위한 공간이다.
이처럼 히자즈 문화를 고스란히 담은 알발라드의 고택은 나보다 남을 더 생각하는 마인드로 지어졌다.
고택 인근에선 흥겨운 노래소리가 들린다. 알발라드 전통 노래와 춤 공연이 매일 오후 진행되는데, 가수와 춤꾼들이 한국손님, 미국손님, 유럽손님 손을 잡아 끌며 함께 놀자고 청하는 모습이 정겹다.
동쪽 ‘제다의 문’쪽에는 복원이 끝난 건물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하고, 보존-복원작업이 진행중인 와중에도 ‘제다 아카데이 오브 파인아트’, ‘염소 조형물’ 등 문화예술 관련 자취가 보인다.
이곳에서 조금만 더 가면 만나는 알샤피 모스크는 공사 시작단계에 땅 파보니 이미 다른 모스크의 자취가 있어 더 큰 규모로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석재는 육지와 바다에 많지만 목재가 많지 않았는데, 히자즈 산맥에서 들여오는 것도 있지만 알발라드에 입항했다가 출항하기 어려워진 배가 넘쳐났기에 이 배들을 해체해 건축자재로 쓰기도 했다고 한다.
옛 법원 옆에는 노인들의 쉼터가 있다. 경로당이기도 하지만 카운슬링을 해주는 곳이기도 하다. 법정으로 사건을 가져가기 전에 노인들이 사건관계인들을 온화한 미소와 함께 불러다 자초지종을 듣고 조언을 해주는 곳이기도 하다. 갈 데 까지 가기 전에 한 번 더 숙려해 볼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다. 창가에 앉아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위험하거나 빗나간 행동을 하려할 때 “좀 조심하렴”이라고 말해주는 우리의 이웃집 아줌마 ‘창변경찰(窓邊警察)’ 풍경이 문득 떠오른다.
한국탐방단 일행의 적극적인 마을 탐색 모습을 멀찌감치 지켜보던 알발라드 마을 유지 60대 ‘F4’가 우리들에게 다가왔다. 무하마드(63), 알리레미(60) 등 4명은 한국인 일행에게 반가움을 표한 뒤 마을에 대한 자부심, 마을 사람들의 인심, 전통을 보존하면서도 국제적인 관광지가 되겠다는 의지를 전했다.
잠시 카페에서 쉬고 있노라니, 초가을을 맞은 12월의 제다 알발라드 곳곳에 파키에, 로즈우드 등 퍼플,핑크,주홍색 꽃들이 보인다. 모두 작지만 알발라드 마을이 주는 또하나의 매력이었다.
마을 서쪽 어귀엔 침략하면 응징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대포들이 설치돼 있다. 동서양의 교차로, 홍해의 중심지, 인도네시아를 거쳐 한국까지 이어지는 V자 해양실크로드의 기착점이었기에 탐내는 이민족들이 많았다고 한다. 숱한 외침에도 굳건히 마을을 지키고 옛 역사문화를 보존한 모습에서 제다의 힘을 느낀다.
제다 구시가지 알발라드 투어는 혼자 해도 나름의 운치가 있고, 데이라(Deira Tours) 또는 팜랜드(Palms Land Tours) 등 여행에이전트를 통해 할 수 있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밝지 않은 조명을 켠 알 발라드 마을을 돌아나오던 길엔, 잘 갖춰입은 외출복 토브 차림의 샐러리맨이 전통킥보드 탄 채, ‘휙’ 지나가고 있었다.
■한국 여행기자 첫 사우디탐방 글 순서 ▶2022년 12월21일자 [칼럼] 사우디의 재발견, 클릭 ‘새로고침’ ①사우디에 이런 면이? 진짜 우정, 여행교류는 ‘제3 중동붐’ ②정(情) 문화 ‘하파와’..8000㎞ 거리 韓-사우디 많이 닮았다 ③리야드, 제대로 즐기기, 블루바드·킹덤센터·옛도성 3색 매력 ▶12월27일 ④신비의 사우디 알울라..“어서와, 우리집은 처음이지?” ⑤사우디의 세계유산들..제다 알발라드, 최대 암각화군 ⑥함께 가는 韓-사우디, 왕세자·공주·원희·루디의 꿈 ▶2023년 1월3일 ⑦사우디 산호초 구경, 난파선 다이빙..홍해레저의 메카는? ⑧사우디 여성들 한국인 밝히자 “꺄르르, 와~” 우정 표현 ▶1월4일 ⑨사우디 최고 여행지, 제다 알발라드 정밀 탐방기 ⑩석유붐에 쇠락한 알발라드, 非무슬림 묘지의 애상 ⑪제다 고택 내부 3㎞ 쇼생크탈출로, 당황한 예비신부 ▶1월10일 ⑫빗장 푼 성지 메디나, 힐링 여행지 같은 활기 ⑬메디나 성지 면세, 건강 성수..근엄해도 명랑했다 ⑭‘홍해의 공주’ 제다, 볼거리·놀거리 팔방 미인 ⑮사우디 캅사·램, 침샘 자극, 치킨은 한국과 경쟁? ▶지면기사 인터넷판 〈2022년 12월27일자〉 ▷대자연이 감싼 알울라...오아시스 품은 문명을 만나다 ▷사막 도시에 꽃 피울 K-문화관광...확장·진화하는 한-사우디 교류 〈2023년 1월10일자〉 ▷빗장 열린 성지 메디나, 부활하는 알발라드 히자즈 문명 ▷물위의 모스크-312m 분수-일품요리들...제다 가이어(제다는 다르다) ▶포토뉴스 사우디= 수시
abc@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엑소 출신 크리스 ‘화학적 거세’ 위기…'성폭행 혐의' 결국 체포
- [영상] 아버지뻘 공무원에 발길질, ‘도로 난동’ 20대女 최후
- 배우 지수 '학폭' 폭로 명예훼손 아니다…"허위 사실로 볼 수 없어"
- “연봉 1억원 직장 알아보려다” 졸지에 세상에 ‘내 연봉’ 공개
- "짬뽕에 홍합 빼달라" 요청에…중국집 사장 "손 없나" 황당 답변
- “속쓰림엔 ‘겔포스’로 떼돈 벌더니” 800억 베팅 30대 재벌 3세, 여기에 꽂혔다
- AOA 권민아 "중고거래로 5000만원 상당 사기 당해"
- “건물주 고발합니다”…강남 육회집 女사장 흉기들고 나체 시위 왜?
- “전기경련 치료까지” 의학박사 여에스더, 우울증 치료 고백
- “1월에 개나리 피었다, 끔찍해” 박진희 피켓까지 든 사연 [지구, 뭐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