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적 그림 그리고, 회화적 소설 써… 다음, 그다음 세대까지 위로 닿길”

장재선 기자 2023. 1. 4.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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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는 순하고 착해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동물입니다. 토끼의 해인 올해는 평화롭고 희망에 찬 나날이 되길 바랍니다."

그는 전시기획사 레이빌리지가 서울 코엑스에서 오는 13일까지 여는 '묘령전'에 초대돼 토끼 그림(사진)을 출품했다.

작가가 달나라에 간 토끼를 상상하는 모습의 그림이다.

작가의 그림들을 소설 내용에 맞게 책 곳곳에 비치했기 때문에 그림 소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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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주리 작가

■ ‘소설 쓰는 화가’ 황주리

수집한 우표 붙인 ‘토끼 그림’

평화 기원하며 ‘묘령전’ 전시

장편으로 출간한 ‘바그다드…’

폭력 역사·삶의 희로애락 그려

“토끼는 순하고 착해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동물입니다. 토끼의 해인 올해는 평화롭고 희망에 찬 나날이 되길 바랍니다.”

황주리(65) 작가는 이렇게 신년 소망을 전했다. 그는 전시기획사 레이빌리지가 서울 코엑스에서 오는 13일까지 여는 ‘묘령전’에 초대돼 토끼 그림(사진)을 출품했다. 작가가 달나라에 간 토끼를 상상하는 모습의 그림이다. 화면 오른쪽엔 우주선과 관련돼 발행된 우표들이 붙어 있다. 작가가 어렸을 때 공들여 수집했던 것들이라고 했다. 우표를 붙임으로써 평화로운 나날에의 소망을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했다. “제 그림은 다음, 다음, 훨씬 더 다음 세대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황 작가는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고유한 화풍으로 주목받아왔다. 독특한 색감의 그림은 풍성한 서사를 담고 있다. 그는 화업과 더불어 문필 작업을 병행해 산문집 6권과 소설책 3권을 펴낸 바 있다. ‘소설 쓰는 화가’로 불리는 까닭이다.

“그림과 글을 병행한다기보다 그냥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숨 쉬듯 하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제 그림은 문학적이고, 제 문학은 회화적인 특성을 지닙니다. 장르는 다르지만 같은 세계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최근에 출간한 장편 소설 ‘바그다드 카페에서 우리가 만난다면’(파람북 발행)은 페이크 다큐멘터리(Fake documentary) 형식이다. 페이스북을 통해 아프가니스탄에 거주하는 미국인 외과 의사와 몇 번 대화를 나눈 사실을 뼈대로 해 상상의 살을 붙인 것이다. 서울의 여성 화가와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남성 의사 사이에 오가는 편지글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서간 소설이다. 작가의 그림들을 소설 내용에 맞게 책 곳곳에 비치했기 때문에 그림 소설이기도 하다.

소설 속 남녀는 뉴욕 소호의 전시장에서 만났던 인연을 바탕으로 SNS를 통해 편지글을 주고받는다. 그들은 맨해튼의 한 극장에서 영화 ‘바그다드 카페’를 같은 날 따로 봤음을 알게 되고,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고독과 불안 속에서도 희망을 꿈꾸는 일상을 서로에게 꾸준히 전한다. 여자는 중국계였던 남편이 동성 연인을 만나 자신을 떠나간 과정을 담담히 되돌아보고, 남자는 포탄이 떨어지는 분쟁지역으로 떠날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외로움을 어루만진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연심(戀心)은 폭력으로 얼룩진 세상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된다. 그 폭력의 근원이 되는 역사적 사건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성찰하게 해 주고, 삶의 희로애락을 껴안게 한다. 풍성하게 펼쳐지는 그림과 노래, 그리고 영화 이야기들이 소통의 다리 역할을 한다.

소설을 읽다 보면, 연필로 줄을 긋고 싶은 문장을 자주 만나게 된다. 작가는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써 나갔다”고 했는데,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유려하면서도 심미적인 문장의 아우라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쓸쓸한 시간을 보듬어 준다. 예컨대, 이런 대목이 그렇다. “세상 어느 곳에나 찾아드는 저녁노을이 마치 지적이고 따뜻한 외계생물이 보내는 사랑의 신호처럼 느껴지는 평화로운 저녁입니다. 이곳은 지금 ‘노을’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당신께 눈물이 날 것 같은 이곳의 노을 한 조각 보냅니다.”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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