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곰 수장’ 이승엽 “이젠 조연으로 선수들을 빛나게 해주겠다”
“일본서 2군 강등 경험이 약
경기 작전·선수 기용 등 배워
선수 마음도 잘 헤아릴수 있어”
“이름값보다 잘하는 선수가 우선
‘난 못할거야’ 생각 버려야 한다
언제든 뛸 준비 돼 있어야 한다”
국민타자가 돌아온다. 그런데 대구의 사자가 아니다. 서울의 반달곰으로 변했다. 36번 푸른 피의 사나이의 다소 파격적인 복귀. ‘삼성 라이온즈 선수 이승엽’이 아닌 ‘두산 베어스 감독 이승엽’으로 5년 만에 그라운드에 복귀한 그를 지난해 12월 중순 잠실야구장에서 만났다. 프로 코치 경험 없이 곧바로 프로 사령탑이 된 그는, 감독 수업에 한창이었다.
왜 두산이었을까. 사실 지난해 여름부터 그의 현장 복귀설은 야구계에서 솔솔 흘러나왔다. 다만 정착지가 소문과는 달랐다. 이승엽 감독은 “현장 지도자를 꿈꾸고 있었는데 두산에서 제의가 왔다. 프로이기 때문에 선택했다”고 말했다. 때가 됐다고 생각했을 때 손을 내민 곳이 두산이라는 얘기다. 두산은 그에게 초보 감독 역대 최고 계약(3년 18억원)을 안겼다.
낯선 곳에서 지도자로, 그것도 감독으로 첫 발걸음을 뗐으나 마무리 훈련을 통해 두산 선수들과의 거리감은 좁혔다고 생각한다. “허경민, 강승호 등 중고참 선수들이 앞서서 하니까 어린 선수들이 따라왔다. 좋은 분위기로 선동이 됐다. 야간 연습을 없앴는데 다들 스스로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년에는 팀이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겼다. 선수들은 100점이었다. 이제 나만 준비되면 된다.”
예능 프로그램 〈최강야구〉(JTBC)에서 감독으로 은퇴 선수들을 이끌면서 깨달은 소통의 방식도 나름 도움이 됐다. ‘이 선수가 이 타순에 나갔을 때 어떻게 생각할까’라거나 ‘어떻게 하면 선수들이 좋은 플레이를 하도록 도울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해보는 단련의 시간이기도 했다. 박용택 등 타 구단 출신 스타플레이를 만나 얘기를 나누면서 야구에 대한 이해도가 더 생긴 것도 있다. 이 감독은 “〈최강야구〉에서는 (코칭을) 혼자서 했는데 프로에서는 수석, 타격, 투수 코치 등으로 분업화돼 있다. 선수 때는 내가 주인공이었지만 지금은 주인공의 조력자일 뿐이다. 나를 버리고 선수들이 좋은 퍼포먼스(경기력)를 펼칠 수 있게 돕고 싶다”고 했다.
지도자 무경험의 결핍을 채우려 한때는 “형”으로 불렀고, 한때는 “코치님”, “감독님”으로 불렀던 김한수 전 삼성 감독을 수석코치로 앉히는 결심도 했다. 김 수석코치를 “인간적으로 존경하는 분”으로 칭한 그는 “내가 약간 망각하거나 지나치고 갈 수 있는 부분을 잡아줄 수 있는 분이다. 내게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스토브리그 때 ‘양의지’라는 큰 선물도 받았다. 엔씨(NC) 다이노스에서 자유계약(FA) 자격을 얻은 양의지는 4+2년 152억원의 계약으로 4년 만에 두산으로 돌아왔다. 외부 에프에이 영입에 인색했던 두산으로서는 통 큰 투자였다. 이 감독은 “포수는 수비수 중에 유일하게 야구장 전체를 바라보고 서 있어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포지션”이라며 “양의지는 수비력, 공격력과 더불어 더그아웃 리더까지 할 수 있다. 제구력이 안 되는 투수들이 많아서 ‘포수 양의지’ 효과가 분명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그는 이어 “양의지가 1년 동안 풀타임으로 1군 엔트리에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팀 분위기 차이가 클 것 같다. 양의지가 와서 올해 목표치가 높아졌다”고도 했다. 그만큼 양의지에 대한 믿음이 크다.
외야가 포화 상태지만 “이름값은 뒤로 미루고 잘하는 선수에게 기회를 줄 생각”이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모든 기회는 공정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특히 어린 선수들에게는 “흘리는 땀이 나중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이기지 못할 거야’라는 생각보다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라”고 말해준다. 그 또한 신인 시절 선배가 부상 등으로 빠졌을 때 천금 같은 출전 기회를 잡았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아 국민타자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이 감독은 “운도 따라줘야 하지만 ‘나는 못 할 거야’라고 놔버리면 평생 못하게 된다. 그 한 번의 기회를 살리기 위해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한다”고 덧붙였다. 그가 선수들에게 계속 기본기를 강조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는 어떤 지도자가 되고 싶을까. 그가 현역 시절 겪었던 감독들에게 힌트가 있다. “류중일 감독님에게서는 선수를 믿어주는 마음을 배웠다. 1년 동안 부진했는데도 끝까지 인내하고 기다려주셨다. 김응용 감독님은 교체 타이밍 등에서 과감했고, 김성근 감독님은 선수를 대하는 애정이 정말 넘치셨다. 하라 다쓰노리 감독님은 냉철함이 돋보였다. 그분들의 장점을 취해 앞으로 나아가겠다.”
두산 감독으로 발탁되고 기대와 함께 우려 섞인 시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분명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승엽 감독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밤낮으로 머릿속으로 경기 시뮬레이션을 그려본다. 플랜A뿐만 아니라 플랜B, 플랜C도 준비하려 한다. 선수 시절 그는 준비를 위한 준비를 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만 다른 방법으로 할 뿐이다. 이 감독은 “모든 것은 결과가 얘기해 줄 것”이라면서 “남들의 우려처럼 미숙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고 의외로 좋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차후에 성적으로 판단해달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이 감독은 스스로의 장점을 “선수들의 마음을 잘 헤아릴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슈퍼스타였던 그가 과연?’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그의 절반밖에 모르는 것이다. 이승엽은 일본 시절 4번 타자에서 8번 타자로, 그리고 벤치 멤버였다가 2군으로 강등되는 경험을 했다. 낯선 타국에서 그는 그저 외국인 선수일 뿐이었고, 한국 최고 타자의 영광은 과거일 뿐이었다. 이승엽 감독은 “한국에서만 프로 생활을 했다면 실패를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조금 더 성숙해진 면이 있다”면서 “일본 시절 실패했던 경험이 지도자로 긍정적으로 가져갈 수 있을 것도 같다. 일본 2군 리그에서 경기 작전, 선수 기용 등도 배웠기 때문”이라고 했다.
2017년 10월 선수 은퇴 뒤 거울을 보며 “늬 진짜 고생했다”라는 말을 건넸던 이승엽 감독은 요즘 스스로에게 “늬 이제 고생길이 트였다”고 말해준다. 그래도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그의 좌우명대로 오늘에 최선을 다해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고 한다. 다만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이제는 조연으로 선수들을 운동장에서 제일 빛나게 해주고 싶다”는 그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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