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친 숙적' 하스불라토프 전 러시아 최고회의 의장 별세…향년 8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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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3년 러시아 헌정위기 당시 보리스 옐친 당시 대통령과 대릭각을 세웠던 루슬란 하스불라토프 전 최고회의 의장이 3일(현지시간) 80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그러나 최고회의는 하스불라토프의 주도로 같은달 23일 인민대표회의를 소집하고 옐친 대통령을 탄핵하고 루츠코이 부통령을 대통령으로 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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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민수 기자 = 지난 1993년 러시아 헌정위기 당시 보리스 옐친 당시 대통령과 대릭각을 세웠던 루슬란 하스불라토프 전 최고회의 의장이 3일(현지시간) 80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은 이날 하스불라토프 전 의장의 별세 소식을 전했다.
하스불라토프 전 의장은 1942년 11월22일 체첸의 수도 그로즈니 태생이며, 대학에서 경제학을 강의한 학자 출신이다.
그는 1990년 정계에 입문했으며, 같은해 5월 옐친의 후원에 힘입어 러시아 최고회의 부의장, 1991년 7월에 옐친이 러시아 최초 민선대통령이 되자, 최고회의 의장직을 물려받았다.
하스불라토프와 옐친의 사이는 1991년 12월 소련 붕괴 이후 경제 정책 및 기타 문제를 두고 논쟁을 벌이면서 경색되기 시작했다. 옐친은 러시아의 경제 구조를 조정하기 위해 시장 경제 개혁을 추진했지만, 하스불라토프는 이러한 급진적 개혁에 반대를 하면서 대립각을 세웠다.
옐친은 러시아의 새 헌법을 개정하면서 대통령 권한 강화에 초점을 두려 했다. 반면 러시아 최고회의는 소련 시절과 유사하게 최고회의가 실권을 갖는 내각제를 원했다.
1993년 9월21일 옐친은 최고회의를 해산하고 새로운 입법부인 국가두마를 선출할 것을 발표했다. 그러나 최고회의는 하스불라토프의 주도로 같은달 23일 인민대표회의를 소집하고 옐친 대통령을 탄핵하고 루츠코이 부통령을 대통령으로 임명했다. 이후 최고회의를 지지하는 시위대의 시위가 과격해졌다.
그러자 옐친은 같은해 10월4일 비상사태를 선포해 모스크바에 군 병력을 소집하고 의회파 시위대가 있는 국회의사당을 전차를 동원해 포위했다. 시위대는 이에 결국 정부군에 투항했다. 하스불라토프도 투옥됐으며, 1994년 사면됐지만 정치적 생명은 끝났다.
이후 그는 학계로 돌아와 모스크바에서 경제학을 강의했다.
2003년 그는 체첸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했지만 이후 입장을 번복해 출마를 포기했다. 당시 체첸의 선거는 1999년 제 2차 체첸 전쟁 이후 지역 안정을 위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주도 아래 계획된 것이었다.
하스불라토프는 체첸에 대한 푸틴 대통령의 '평화 계획'에 반대했으며, 지속되고 있는 전쟁을 끝내긴 위해선 분리주의자들과의 협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여러 인권 인사들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푸틴 대통령의 반민주·반인권적 면모를 공개적으로 호소하기도 했다.
kxmxs410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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