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년의 기다림 - 진짜 기다린 건 누굴까[시네프리뷰]
2023. 1. 4. 07:19
진에게 소원을 비는 건 모두 여성이다. 소원은 사랑. 사랑은 상대가 필요하고 깨지기 쉽다. 조지 밀러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이후 7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연기파 배우들과 이야기를 맘껏 펼치는 능력이 부럽다.
제목 3000년의 기다림(Three Thousand Years of Longing)
제작연도 2022
제작국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상영시간 108분
장르 판타지, 로맨스, 멜로, 드라마
감독 조지 밀러
출연 틸다 스윈튼, 이드리스 엘바
개봉 2023년 1월 4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수입 ㈜엔케이컨텐츠
배급 ㈜디스테이션
공동제공 ㈜제이에이와이이 엔터테인먼트
알리테아는 서사학자(narratologist)다. 전 세계를 떠돌며 이야기를 수집한다. 알다시피, 전래 이야기에는 패턴이 있고 유사성이 있다. 말하자면 어떤 원형이 존재한다. 서사학이라는 학문분과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원래는 민속학에서 다루는 분야다. 알리테아는 꽤 저명한 학자인 듯싶다. 튀르키예 이스탄불을 방문한 그는 애거사 크리스티가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집필했던 호텔방에 묵는 특전을 받는다. 그런데 이스탄불공항에 내릴 때부터 왠지 불길한 일이 일어난다. 공항에서 그의 캐리어를 끌고 가려는 불길한 ‘존재’와 마주친다. 대중강연장 청중에는 분명히 사람이 아닌 어떤 존재가 화난 얼굴을 하고 좌석에 앉아 있다. 필사적으로 그를 무시하려고 안경도 벗고 외면하지만, 그의 얼굴 앞에 우뚝 선 그 ‘존재’는 그의 말이 다 헛소리라고 소리를 지른다.
뭔가 꺼림칙한 경험을 했지만 강연 후 방문한 ‘그랜드바자’의 한 골동품 가게에서 알리테아는 19세기에 만들어진 유리병 모작(模作)에 끌린다. 호텔방으로 돌아온 알리테아는 전동칫솔로 병 입구를 닦는데 짜잔, 진이 나타난다. 조금은 무섭게. (알라딘의 지니는 헝겊 같은 것으로 램프를 닦으면 나타나는데?) 진은 알리테아에게 세 가지 소원을 묻는다.
성인판 <알라딘의 요술램프> 우화
아뿔싸. 알리테아에겐 소원이 없다. 진짜로 바라는 게 별로 없다. 이야기의 역사에서 다양하게 변주되는 세 가지 소원 이야기가 담고 있는 ‘우화’는 욕심이나 욕망은 결국 그르치고 만다는 것이다. 행운처럼 보였던 것은 곧 불운으로 미끄러지게 마련이니 요행을 바라지 말고 현재의 삶에 충실하게 사는 게 낫다와 같은 교훈 말이다. 서사학자로서 알리테아는 그 교훈을 알기 때문에 소원을 빌지 않겠다고 한다. 진은 절박하다. 그는 자기가 왜 세 가지 소원을 들어줘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진은 시바의 인척이다. 솔로몬 이야기에 등장하는 그 시바의 여왕 맞다. 솔로몬에 의해 병에 갇힌 채로 2500년을 버텨 귈텐이라는 여성의 손에 들어간다. 귈텐은 오스만제국 쉴레이만 대제 아들 무스타파에 빠져 있다. 진은 세 가지 소원을 들어줘야 병에서 해방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아들에게 권력을 뺏길 것을 의심한 쉴레이만은 아들을 죽였다. 귈텐은 세 번째 소원을 비는 데 실패했고, 진은 다시 긴 세월을 병에 갇혀 기다려야만 했다. 알리테아는 마침내 그의 바람을 이뤄줄까.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3000년의 기다림(longing) 주체는 누굴까. 명시적으로는 진이다. ‘세 가지 소원 들어주기’라는 미션을 완수하면서 마침내 자신의 해방이라는 소원도 달성하는. 한편으론 이야기(내러티브)의 완결을 바라는 서사학자 알리테아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소원이라는 건 결국 어떤 일이 이뤄지길 간절히 원하는 것인데 관계 속에서 그 주체는 홀로 이뤄낼 수 없다. 신통하게도 진에게 소원을 비는 이들은 모두 여성이다. 그 소원의 형태는 사랑이다. 소원은 사랑의 변주다. 사랑은 홀로 이룰 수 없다. 상대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깨지기 쉽다. 자아의 경계를 허무는 행위이기 때문에.
곱씹어보는 ‘소원’, 그리고 ‘사랑’의 의미
진에게 소원을 빈 여성들의 사랑은 얼핏 실패를 반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소원을 들어주면서 진도 조금씩 바뀌어 간다. 상황도 변주되는 것처럼 보인다. 예컨대 쉴레이만은 진을 병에 가둬버렸던 성서 속에 등장하는 지혜로운 왕 ‘솔로몬’을 튀르키예어로 썼을 때의 이름이다. 지(知)를 사랑한 제피르에 대한 사랑을 깨지 않기 위해 진은 스스로를 유리병에 유폐한다. 알리테아에게 비로소 소원이 생겼다. 시바와 제피르를 넘어 진과 사랑을 완성하는 것. 무모한 욕심일까. <3000년의 기다림>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2015) 이후 7년 만에 내놓은 조지 밀러 감독의 신작이다. 영화의 원작은 1994년 발표된 단편소설 ‘나이팅게일 눈 속의 진(The Djinn in the Nightingale’s Eye)’이다. 원작 단편소설을 찾아보려 했는데 아직 국내에 번역 출판되진 않은 듯하다. 연기파 배우들을 데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맘껏 펼칠 수 있는 감독의 능력이 부럽다.
문화적 다양성과 페미니즘 리부트를 옹호하는 조지 밀러 감독
그 지니가 이 ‘진’이었던가. 극장에서 돌아오자마자 사전을 찾아봤다. 다르다. 진이 3000년을 버티며 만났던 세 사람 중 알라딘이 없는 이유다. 어린 시절 읽은 동화책이나 디즈니 영화 속 <램프의 지니>는 지니(Genie)였고, 영화 속 진은 이슬람 정령 진(Djinn)이었다.
위키피디아의 ‘진(Jinn=Djinn)’ 항목을 보면 진은 이슬람 쪽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정령인데 그렇다고 딱히 선악으로 구별되지 않는 존재로 이슬람 밖의 다른 신들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슬람교 이전 시대 왕궁 유적에 부조로 조각된 진의 모습을 보면 어깻죽지의 날개가 눈에 띈다. 일신교(一神敎)상 하나님의 말씀 밖에 있는 타락천사쯤으로 생각하면 될 듯싶다.
사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사진)는 여러모로 화제를 모았다. 가장 큰 것은 B급 정서가 물씬 풍기는 이 포스트 아포클립스 시리즈물을 같은 감독이 30년 만에 다시 잇는 게 가능할까라는 의구심이었다. 감독은 보란 듯이 그런 우려를 날려버리고 흥행이나 비평에서 대성공을 거뒀다. 감독 인터뷰를 보니 “<3000년의 기다림>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와 다른 세계관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기자가 보기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를 통해 선보였던 페미니즘 리부트, 다양성(diversity) 옹호가 이번 영화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알리테아에 앞서 진에게 소원을 빌었던 사람들은 모두 여성이다. 말하자면 여성 화자와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다. 감독은 알리테아의 대사를 빌려 문화적 다양성을 부인하는 이웃집 할머니들을 비난한다. 그럼에도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미는 것은 다시 문화적 다양성의 공존 내지는 우수성을 주장하는 알리테아가 될 수밖에 없다. 사랑보다는 증오가 더 쉽게 번지는 감정이며, ‘정령’의 시각에서 봤을 때 인간은 쉽게 흔들리는 한계 속에 놓인 존재라는 것을 알면서도.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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