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저리’의 서스펜스, 영화를 보는 듯

임석규 2023. 1. 4.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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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의 넘버원 팬이에요." 1991년 국내 개봉한 영화 <미져리> 를 봤다면 오싹한 느낌을 자아낸 이 대사를 잊기 어렵다.

변덕스러운 광신도 애니 역을 탁월하게 연기해 아카데미상과 골든글로브상을 휩쓸며 '불멸의 스토커'로 각인된 영화 속 캐시 베이츠에 대한 잔상을 떨쳐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애니의 병적인 안달과 집착이 혹시 결핍과 상처, 외로움에서 비롯한 게 아니냐고 상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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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중·길해연 출연 연극 ‘미저리\'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 연극 <미저리>의 한 장면. 배우 김상중과 길해연이 세번째로 호흡을 맞췄다. 그룹에이트 제공

“내가 당신의 넘버원 팬이에요.” 1991년 국내 개봉한 영화 <미져리>를 봤다면 오싹한 느낌을 자아낸 이 대사를 잊기 어렵다. 베스트셀러 작가 폴 셸던을 향한 자칭 ‘1등 팬’ 애니 윌크스의 광적인 집착을 섬뜩하게 그려낸 서스펜스 스릴러. 미국 작가 스티븐 킹의 소설이 원작이다. 2015년엔 영화를 각색한 브로드웨이 연극 <미저리>도 흥행했는데, 스타 배우 브루스 윌리스의 연극 데뷔작이었다. 국내에선 배우 김상중과 길해연이 2018년, 2019년에 이어 이번에도 호흡을 맞췄다.

“진화하고 발전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죠.”(김상중) “나이 들면서 집착과 광기를 드러내는 게 확실히 달라져요.”(길해연) 최근 기자들과 만난 두 배우는 ‘왜 계속 이 연극에 출연하느냐’는 물음에 ‘매번 맛이 다른 연극만의 묘미’를 꼽았다. 김상중은 “연극은 최고의 공연을 하면 더 잘하고 싶어서, 만족스럽지 않으면 또 해보고 싶어서 하게 된다”고 했다. 길해연은 “배우가 한 역할을 맡아서 같이 나이 들어간다는 게 좋다”며 “나이 여든에, 파파 할머니가 되어 애니 역할을 하면 어떨지 궁금하다”고 했다.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 연극 <미저리>의 한 장면. 배우 김상중과 길해연이 세번째로 호흡을 맞췄다. 그룹에이트 제공

무대는 폭설에 두절된 숲속 외딴 가옥. 눈보라 속에 교통사고를 당한 인기 작가 폴을 그의 광팬인 전직 간호사 애니가 구해낸다. 수줍어하던 애니가 점점 감정의 극단을 오가며 광기를 드러내자 공포에 빠진 폴은 필사적인 탈출을 시도한다. 빙빙 돌아가는 회전형 무대가 폴이 감금된 방과 부엌, 현관 앞 등 3개의 공간으로 변형될 때마다 관객은 영화를 보는 듯한 착시에 빠지게 된다. 감정선을 따라 음산하게 흐르는 음악, 세밀하게 배치된 소품들은 무대에 현실감을 불어넣는다. 연극이 영화처럼 보이는 건 드라마로 명성을 날린 황인뢰 피디의 연출이란 점과도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황 연출은 “국내에서 서스펜스를 강조하는 연극이 흔치 않은데, 관객들이 긴박감을 느끼며 볼 수 있도록 세밀한 곳까지 애를 썼다”고 말했다.

연극의 성패는 극심한 감정의 기복을 보이는 여주인공 애니 역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변덕스러운 광신도 애니 역을 탁월하게 연기해 아카데미상과 골든글로브상을 휩쓸며 ‘불멸의 스토커’로 각인된 영화 속 캐시 베이츠에 대한 잔상을 떨쳐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여리고 얄캉한 몸피의 ‘길해연표 애니’는 사납고 그악스러운데 이상한 동정심을 불러일으킨다. 애니의 병적인 안달과 집착이 혹시 결핍과 상처, 외로움에서 비롯한 게 아니냐고 상상하게 한다. ‘미저리’라는 이름을 붙이고 키우는 자신의 돼지를 흉내 내는 길해연의 연기가 압권이다.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 연극 <미저리>의 한 장면. 배우 김상중과 길해연이 세번째로 호흡을 맞췄다. 그룹에이트 제공

김상중은 내내 침대에 누운 채 기묘한 ‘베드신’을 온몸으로 연기한다. 김상중은 “혼자서 고통스러워하는 이런 베드신은 처음 해본다”며 “그냥 침대에 누워 있는 게 아니라 객석에 모습을 잘 보여줘야 해서 목에 힘을 주다 보면 무리가 온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연기 인생 23년 만에 처음 연극 무대에 서는 배우 서지석이 김상중과 번갈아 폴을 연기한다. 서지석은 “연극 도전의 가장 큰 원동력은 김상중 선배”라고 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tvN)에서 ‘덕선 엄마’로 인기를 끈 배우 이일화는 길해연과 함께 애니 역을 맡았다. 그는 “제가 소녀 같은 이미지가 있지만 다른 면도 있다”며 “모순된 집착, 잘못된 사랑을 미쳐가며 연기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보안관 버스터 역은 배우 고인배와 김재만이 맡는다. 2월5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엠(M)씨어터에서 상연한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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