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춘추] 고구마에게 띄우는 러브레터

김숙자 시인 2023. 1. 4.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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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등천 너머로 기우는 저녁노을이 한 뼘 남짓 아쉬움으로 머뭇거리고 있다.

너른 농장엔 소담한 야채들도 많았지만 내 눈길은 오로지 검푸른 네 줄기에 꽂혀 버린 거야.

늦은 봄날 너의 연약한 줄기를 땅에 묻으며 너는 빛나는 광합성을 시작했었지.

게다가 너는 우리 인류에게 꼭 필요한 산소도 내뿜어주면서 우리가 숨 쉬고 살아갈 수 있도록 안간힘을 기울여준 네 존재가 정말 보물처럼 느껴지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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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자 시인

유등천 너머로 기우는 저녁노을이 한 뼘 남짓 아쉬움으로 머뭇거리고 있다. 마치 잘 익은 너의 속살 같은 시간이다. 나는 누가 뭐래도 언제 어디서든 널 반색하며 즐겨 맞이했지. 지난 가을 친구네 농장에서 네 줄기를 솎아가라는 전갈이 왔었어. 나는 두말 없이 곧바로 농장으로 직행을 했지. 너른 농장엔 소담한 야채들도 많았지만 내 눈길은 오로지 검푸른 네 줄기에 꽂혀 버린 거야.

너는 마치 날 유혹이라도 할 듯 온갖 아양을 떨며 정겨운 손사래로 날 맞아주었어. 나도 진심을 다해 너를 품에 안았지. 그리고 너의 이파리 하나하나에 뽀뽀 세례도 퍼부었던 거야. 그러고 나서야 긴장하고 있었을 너의 손목도 잡아 준거야. 커다란 대광주리 가득 담긴 연한 줄기들을 집안 가득 들여왔을 때 마치 농장이 굴러 온 줄 알았어. 늦은 봄날 너의 연약한 줄기를 땅에 묻으며 너는 빛나는 광합성을 시작했었지. 그날부터 너는 햇볕과 물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야 할 지구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이산화탄소도 빚어내기 시작했어.

그러면서 네 몸을 키우고, 뿌리도 꿋꿋이 뻗으며 신나게 자라기 시작했어. 탄소도 포집해 지구온난화에 작게나마 공헌을 하고 있었던 거야. 이런 작은 실천 하나만을 보더라도 난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어. 게다가 너는 우리 인류에게 꼭 필요한 산소도 내뿜어주면서 우리가 숨 쉬고 살아갈 수 있도록 안간힘을 기울여준 네 존재가 정말 보물처럼 느껴지더구나.

뿐만 아니라 넌 작은 줄기서부터 진한 골육이 되는 뿌리까지 아낌없이 우리에게 다 내어주었던 거야. 요즈음 출출할 때면 너를 굽거나 삶아서 입에 넣는 순간 나는 온 천지와도 연결되는 따스한 사랑과 감미로움을 누리고 있지 뭐니? 내 몸 안으로 깊숙이 들어온 너의 따스한 기운으로 나는 네 몸 속에 녹아있는 저 태양과도 만날 수 있고, 온 천하를 감고 휘돌아온 탄소도 내 몸에 이르게 했지.

그리고 지상에서 뽑아 올린 맑은 물을 통해 우리 어머니와도 같은 지구와 나를 연결시켜주는 고마운 존재도 되었던 거야. 이토록 경이로운 너를 단지 나의 혀끝의 만족만을 위해 가볍게 좋아했던 내 배은망덕을 너그럽게 용서해 주기 바래. 이제는 나 혼자만의 만족이 아닌 더 그늘진 곳에 한 끼 나눔이 되게 하고 싶어. 그리고 네 속살 같은 따스함과 달콤함이 머문 곳에 네 사랑을 송두리째 전하고 싶어.

그래서 겨우내 떨고 있을 너의 몸이 가슴 시린 영혼들에게 따스한 온기로 전해졌으면 좋겠어. 그리고 나 지금이라도 철저히 너에게 사과 먼저 할게. 이토록 자비로운 너를 일찍이 알아보지 못하고, 가벼운 말 한마디로 그대를 사랑해 왔던 나의 무지에 대해 오늘 정중하게 용서도 청할 게. 앞으로는 그대를 대할 때 온 우주와 나를 연결해 준 뜨거운 감사를 표하면서 그대를 더 진실되게 사랑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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