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사막의 왕’ 김보통 작가가 사막에서 발견한 오아시스
평범한데 기발하고 엉뚱하다. 우리네가 매일 접하는 일상에 대해 ‘이대로 오케이인가’라는, 다소 불만을 가진 채로 바라보는, 결코 ‘보통’이 아닌 김보통 작가의 시선이다.
김보통 작가가 왓챠 오리지널로 지난해 12월 선보인 김보통 프로젝트 첫 작품 ‘사막의 왕’은 돈이 전부라고 믿는 사람들과 돈이 다가 아니라 믿는 사람들의 선택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진구, 양동근, 장동윤, 김재화, 이홍내, 정이서, 박예린 등 배우들은 총 여섯 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와 화상 인터뷰로 만난 김보통 작가는 ‘사막의 왕’에 대한 다양한 ‘썰’을 마치 이야기 들려주듯 즐겁게 풀어냈다.
“특별한 기획의도는 없었고, 여섯 개의 연작을 만들자고 했어요. 각 인물들이 각각의 이야기에서 어떤 이야기에선 주인공이고 어떤 이야기에선 조연인 맞물린 꼬여 있는 이야기를 만들자는 생각으로요. 그 여섯 개의 이야기가 인물들로만 이어질 수도 있지만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사막의 왕인 진구를 등장시켜 모든 인물들이 각각의 시련을 겪는 데 조금이라도 연결된 스토리를 만들었습니다.”
극중 진구가 열연한 ‘사막의왕’이라고 불리는 사장 캐릭터에 대해서는 “사실 현실성이 전혀 없는 캐릭터다. 그런 사장이 있을 수도 없고, 그렇게 거액을 도네이션하는 시청자가 있을 수도 없다. 그런데 돈이 정말 많은 사람이라면 마치 게임을 하듯이, 사람을 상대로 게임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살아있는 사람을 상대로 그 사람들의 인생을 나의 돈을 이용해서 내 마음대로 조종하는 걸 보며 즐거워하는 변태 같은 사람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만든 게 있다”고 극중 진구의 대사를 떠올리게 했다.
특히 김 작가는 사막의왕 캐릭터 자체를 “의인화된 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캐릭터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사람처럼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의인화된 돈이라고 생각했다. 현대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자유의지로 자기 인생을 자기 뜻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아무도 돈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살고 있다고 생각해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김 작가는 ”여섯 개의 에피소드 중 내가 연출한 작품은 ‘모래 위의 춤’ 한 작품 뿐이다. 나머지는 이태동, 이탁 감독님이 나눠 해주셨다. 각본, 원안, 초고, 수정본을 내가 썼지만 연출자의 손에 넘어간 이후엔 개입하지 않았다. 감독님의 해석에 따라 작업이 진행됐다“고 소개했다.
감독으로 나선 소감을 묻자 “송충이는 솔잎만 먹어야 한다고, 나는 집필에만 전념하겠다 생각했다”며 웃었다.
“연출은 내 영역이 아니구나 싶었어요. 연출은 너무나 들이부어야 하는 시간이 많고, 현장에 머물러야 하는 시간, 해야 하는 노력이 많아서 저는 연출은 감독에게 돌리고 글만 써야겠다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작가들도 의무적으로 단편영화 정도는 연출해봐야 한다는 생각도 했어요. 글만 쓸 때는 이게 어떻게 영상화될까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고 썼는데 ‘이렇게 쓰면 현장에서 다 고생하는구나’ 하는 걸 절실히 느꼈죠. 작가로서 연출하기 용이한, 연기하기 용이한, 시각화하기 용이한 연출 경험이 철저히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실제 ‘D.P’ 출신이라 ‘D.P’를 쓸 수 있었다며 “경험에서 영감을 많이 얻는다”고 밝힌 김 작가는 첫 에피소드 ‘모래 위의 춤’에서도 자신이 회사생활 할 때 느낀 감정을 스토리에 녹여냈다. 그는 “내가 다른 직장인들보다 조금 더 돈을 많이 받았는데, 그럼에도 직장인으로서 느끼는 괴리감, 회의감이 컸다. 그걸 다른 동료들과 상의했을 때 돌아오는 답은 늘 같았다. ‘우리는 그래도 돈을 많이 받잖아. 다른 회사들도 의미 없는 일을 하긴 마찬가지야’였다. 그렇게 블랙코미디, 우화가 탄생하게 됐다”고 담담하게 밝혔다.
출연 배우 캐스팅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지만 기억에 남는 배우에 대해 묻자 장동윤과 양동근을 꼽았다.
“장동윤은 너무 꽃미남 배우라서 사실 작중 인물인 인간쓰레기 같은 패륜아 역이 부담일 수 있었는데, 본인이 너무 잘 할 수 있다고 하고 실제로 인간쓰레기 같은 연기를 해줘서 이태동 감독님도 놀라고 나도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또 양동근 배우의 경우, 실제 서은이(극중 딸 이름)와 비슷한 또래의 딸이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리딩 때부터 많이 울었어요. 자기가 생각할 땐 동현이가 이런 대사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본인이 업계 대선배임에도 작가와 감독을 너무 존중하며 교감해줘서 고마웠고 굉장히 인상깊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21세기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특별히 신분이나 계급이 없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우리는 다 알고 있죠. 돈의 노예라는 것을요. 돈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음에도 자유인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자문하게 하고 싶었어요. 사실 저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어요. 나 스스로도, 글 쓰는 게 재미있어서 하는 것이지만 결국 돈 받으니까 하는 거 아닌가?(싶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만이 목적이 되고, 돈에 끌려가면서 내 삶을 망치지는 말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김보통 작가는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 취업해 회사생활을 경험한 웹툰작가이자 에세이작가다. “로스쿨 등록금 마련을 위해” 만화가로 데뷔했으나 “보기좋게 떨어진” 그는 당시 연재한 웹툰 ‘아만자’와 ‘D.P’가 연달아 성공을 거두며 계속 만화가의 길을 걷게 됐다.
얼굴을 공개하지 않은 채 가면을 쓰고 다니는 모습으로도 유명한데, 이에 대해 그는 “처음 인터뷰 요청이 왔을 땐 사실 만화를 그렇게 오래 할 게 아니라는 생각으로 가면을 썼는데, 그게 벌써 10년이 됐다. 그런데 이젠 가면을 벗기도 애매한 상황이 됐다. 가면을 쓰다 벗으려면 유명인이어야 하는데, 애초에 가면을 쓴 것도 모르는 상황이라 벗는 게 무슨 의미인가 싶어” 계속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만화가로서의 무난한 여정에 화력이 더해진 건 넷플릭스 ‘D.P’ 성공이었다. 군 내부의 부조리를 신랄하게 그려낸 ‘D.P’는 시즌1의 인기에 힘입어 올해 시즌2 공개가 예정된 상태다.
작가로서 전작의 성공이 부담이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후속작을 쓰는 데 대한 부담은 없다”고 쿨하게 말했다. “애초에 ‘D.P1’을 썼을 때 이미 저는 ‘D.P2’를 쓰고 있었고, 다른 드라마도 쓰고 있었어요. 그 당시에 서너개를 동시에 쓰고 있어서 ‘D.P’가 망해도 나머지라도 되겠지 하는 생각이었고, 지금은 다른 게 망해도 ‘D.P2’가 잘 되겠지 하는 생각입니다(웃음).”
반드시 이뤄내리라는 “목표가 없으니 두려움이 없고, 두려움이 없으니 부담도 없는 것 같다”는 김 작가. 작품에 쏟아지는 피드백에 대해서도 애써 찾아보지 않을 뿐더라 혹여나 들려오는 이야기가 있더라도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면서도 그는 ‘사막의 왕’을 직원들과 함께 본 뒤에 접한 흥미로운 반응에 대해 소개했다.
“‘모래 위의 춤’ 이후 면담 신청이 많이 들어왔어요. 재미있게 봤다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영화를 보니 작가님이 사장님(진구) 같고 자기들이 이서(직원)인 것 같다고, 무의미한 일 시키면서 박봉 주는 건 아니지 않나는 항의성 질책을 받았죠. 그런데, 사실 제가 내가 바란 게 그거였어요. 하나도 말 안 되는 걸 보면서 자기 모습을 발견하길 바랐죠. 여섯 개의 이야기 중 어느 순간만큼은 ‘내’가 보였으면 좋겠다 싶었고, 그런 반응이 나온 것 같아서 좋았어요.”
김 작가는 “개인적으로는 쾌감이 있었다. 내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순간의 장면들이 있는데, 예를 들면 진구 배우를 통해 보였던, 내가 들어왔던 이야기들. ‘돈이 전부’라는 이야기에 맞대응하는 정이서 배우의 대사가, 너무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나는 사람이다’라는 이야기를, 우리는 너무 망각하고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원래 다들 그렇게 살잖아’라는 생각으로 외면하고 있던 게 아닌가 싶었다”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 김 작가에게 물었다. “사막엔 오아시스가 있나요?”
잠시 동안의 생각을 마친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현실적으로는 사막에는 오아시스가 있죠. 제가 만든 작품 속 사막에도 오아시스가 있어요. 노래(그는 2013년 발매된 가수 오소영의 곡 ‘사막의왕’ 작사가이기도 하다)에서도 만화에서도 그리고 드라마에서도, 사막은 돈이고 사람이면서 절망스러운 상황이죠. 하지만 이 사막에선, 반대로 움직이면 되요. 돈보다 가치를 좇고, 비인간성보다 인간성을 좇으며 얼마든지 회복할 방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막이, 돈이 다가 아니라 우리 조금이라도 더 ?에 있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돈보다 가치있는 일을 좇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한 겁니다.”
[박세연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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