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자율주행 혁신]① 운전석도 조수석도 비었다…퇴근길 도로 위 달리는 바이두 로보택시
운전석 빈 채 안전요원은 조수석에…만일 상황 대비
일반 도로에서 사람 개입 필요 없는 레벨 4 달린다
충칭·우한선 안전요원 없는 ‘완전 자율주행’ 택시도
중국 수도 베이징시 중심 고궁박물원(자금성)에서 동남쪽으로 약 20㎞ 떨어진 다싱구 이좡(亦莊) 경제기술개발구 내 ‘베이징시 고급별 자율주행 시범구(BJHAD).’ 명칭대로 자율주행차를 시범 운행하는 구역이다. 길거리 곳곳에 ‘자율주행 도로 테스트 구간’이라 쓰인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자율주행 시범구라고 해서 자율주행차만 다니는 곳이 아니다. 60㎢ 구역 안에서 일반 차량·행인과 뒤섞여 운행한다. 중국 위안단(중국 양력설) 연휴 마지막 날인 2일 오후, 이좡 시범구 안에서 중국 인공지능 기업 바이두(百度 Baidu)가 개발한 자율주행 택시(차량 호출), 일명 ‘로보택시(robotaxi)’를 불러 타봤다.
바이두가 운영 중인 로보택시 서비스 플랫폼 이름은 뤄보콰이파오(蘿卜快跑 Apollo Go 아폴로 고). ‘뤄보’는 무를 뜻하는 중국어 단어인데, 발음이 영단어 로봇과 비슷해 로보택시 서비스명으로 선정됐다고 한다. 뤄보콰이파오 전용 앱이나 바이두 지도 앱(바이두디투)에서 로보택시를 호출할 수 있다. 현재 베이징 내 6개 외곽 구역(이좡·퉁저우·순이·서우강·환바오위안·용펑)이 바이두 로보택시 시범 운행 지역으로 허용됐다.
앱을 사용하려면 전화번호를 입력한 후 회사가 보낸 인증번호를 넣고 전화번호 인증부터 해야 한다. 그다음 승하차 지점을 선택한다. 일반 택시처럼 아무곳에서나 타고 내릴 순 없고 시범구 내 지정된 승하차 지점을 이용해야 한다. 다음으로 탑승 인원 수를 선택한다. 현재 최대 3명까지 탈 수 있다. 다음 단계는 실명 인증 과정이다. 신분증 성명과 번호를 입력한다. 한국인인 기자는 여권 영문명과 여권 번호를 넣었다. 빨간색으로 ‘신분증 번호 격식이 틀렸다’는 문구가 떴다. 외국인은 이용할 수 없단 뜻이다. 외국인이 혼자 자율주행 택시를 부를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중국인 친구에게 미리 부탁해 함께 갔다. 중국인 친구의 신분증 성명과 번호를 넣으니 바로 차를 부를 수 있었다.
출발지는 ‘루이허차이써 인쇄 회사’ 건물, 목적지는 6.6㎞ 거리의 바이두 자율주행차 연구개발 기지인 ‘아폴로 파크.’ 약 3.9㎞ 떨어진 곳에서 출발한 베이징자동차의 전기차 브랜드 아크폭스(極狐 지후)가 10분 후 출발지로 나타났다. 차량 지붕엔 라이다와 센서 등이 달려 있고, 차량 번호판 끝엔 테스트 차량이란 의미로 ‘시(試)’라는 한자가 있었다. 이 차량은 바이두와 베이징자동차가 공동 개발한 자율주행 전기차 ‘아폴로 문’이다. 바이두가 아폴로 자율주행 시스템과 소프트웨어 개발을 맡고, 베이징자동차가 생산을 맡았다.
차량 안을 들여다보니 운전석은 비어 있고 옆자리 조수석에 안전벨트를 맨 사람이 앉아 있다.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개입하는 안전요원이다. 차량 외부 뒤편에 있는 모니터에 휴대전화 번호 끝 네 자리를 입력하고 신분 인증을 완료해야 차량 뒷문을 열 수 있다. 뒷좌석에 타고 안전벨트를 맨 후 앞좌석 뒤에 달린 모니터의 ‘출발’ 버튼을 누르자, 앞좌석 핸들이 저절로 돌아가며 차가 출발했다.
주행 중 승객 앞 모니터엔 도로 교통 상황이 실시간으로 표시된다. 차량 구석구석 설치된 카메라, 라이다, 센서가 도로 상황을 탐지한다. 반대 차선에서 오는 차량, 좌우에서 오는 차량, 뒤에서 옆으로 지나가는 차량의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다. 주변 주행 차량뿐 아니라, 인도와 횡단보도의 사람, 사물도 표시된다. 반대 차선에서 오는 차량은 차가 이미 지나간 후에야 앞쪽에서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것처럼 다소 늦게 표시되기도 했다. 좌회전, 우회전, 유턴 움직임이 대체로 부드럽지만, 차선을 변경할 때 간혹 약간 급한 움직임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주행 속도는 사람이 운전할 때보다 느린 편이다. 앞에 가는 차가 없는 직선 도로에서도 시속 40㎞대를 유지했다.
조수석의 안전요원은 가끔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놓인 모니터를 손으로 만지며 운행 상황을 확인할 뿐, 별 움직임이 없었다. 현재 바이두 로보택시의 자율주행 기술 수준은 레벨 0~5의 6단계 중 다섯 번째인 레벨 4(L4)다. 차가 대부분 상황에서 사람 개입 없이 스스로 운전할 수 있는 단계다. 가장 높은 단계인 L5는 완전 자율주행 수준으로, 사람 개입이 전혀 필요 없다. 베이징시는 지난해 4월 바이두와 샤오마즈싱(Pony.ai)에 지정 구역 내 일반 도로에서 앞자리 운전석에 안전요원 없이 승객을 태울 수 있는 중국 내 첫 자율주행 택시 라이선스(자격)를 줬다. 베이징에선 운전석엔 안전요원이 없어도, 앞자리 조수석엔 안전요원이 있어야 한다.
이 안전요원은 “내 역할은 자율주행차 운행 중 비상 상황이 발생할 때 차량을 통제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근무시간은 오전 9시~오후 5시로, 1시간에 10분씩 쉰다. 오후 5~10시엔 다른 요원이 교대로 근무한다. 그는 “보통 하루 10여 명이 자율주행 택시를 호출해 탄다”고 했다.
약 20분 후 목적지에 도착했다. 바이두 자율주행 택시는 유료다. 2020년 9월 베이징에서 처음으로 자율주행 차량 호출 서비스를 시작한 데 이어, 2021년 11월엔 상용화 허가를 받아 일반인 대상 자율주행 차량 호출 서비스에 요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운전석엔 여전히 안전요원이 있어야 했다. 아직까진 시범 서비스 기간이라 할인 혜택이 많아 거의 공짜로 이용할 수 있다. 총 요금 45.20위안 중 할인 40.68위안을 적용 받아 4.52위안(약 835원)만 결제했다.
목적지인 바이두의 자율주행차 연구개발 기지인 아폴로 파크 서문으론 차량 옆면에 ‘뤄보콰이파오’ 로고가 그려진 자율주행 택시가 끊임없이 드나들었다. 차종은 훙치·링컨 등 다양했다. 아폴로 파크 안의 거대한 차고 안엔 테스트 차량 수백 대가 세워져 있다. 건물 외부에도 테스트용 차량들이 늘어서 있었다.
바이두는 현재 베이징·상하이·광저우·선전·충칭·우한·청두·창사·허페이·양취안·우전 등 10개 이상 대도시에서 자율주행 택시를 운영 중이다. 지난해 3분기(7~9월) 뤄보콰이파오 호출 주문 47만4000건을 포함해, 9월 말 기준 누적 승차 횟수는 140만 건을 넘어섰다. L4 자율주행 테스트 마일리지는 4000만㎞ 이상이며 자율주행 특허는 3477건에 달한다.
이 중 충칭시와 후베이성 우한시에선 2022년 8월부터 지정 구역에서 차에 운전자나 안전요원이 아예 없는 ‘완전 자율주행’ 유료 로보택시 서비스를 시작했다. 승객만 차에 타는 것이다. 중국에선 처음이다. 특히 최근 우한에선 일부 지역에서 ‘완전 자율주행’ 유료 로보택시 서비스 운영 시간이 밤 11시로 연장됐다. 중국에서 저녁 시간대에 ‘완전 자율주행’ 유료 로보택시를 운영하는 곳은 바이두가 유일하다. 2022년 12월 말엔 베이징에서도 충칭·우한에서처럼 운전자도 안전요원도 없이 ‘완전 자율주행’ 로보택시를 시범 운영할 수 있는 허가를 처음으로 받았다. 베이징에선 차량 뒷좌석에 안전요원이 탄다고 한다. 우선 ‘완전 자율주행’ 차량 10대가 이좡 경제개발기술구 내 20㎢ 구역 안에서 시범 운행한다. 자율주행 택시의 대규모 상용화로 가는 과정으로 평가된다.
이날 두 번째 탄 바이두 로보택시엔 앞자리 운전석에 안전요원이 앉아 있었다. 차량 번호판 끝엔 테스트 차량이 아닌 영업용 차량이란 의미로 ‘영(營)’이란 한자가 있었다. 함께 바이두 로보택시를 탄 중국인 친구는 “차에 안전요원 없이 자율주행차를 타도 불안하지 않을 것 같다”며 “일반 택시나 디디(중국 차량 호출 서비스)와 비슷한 요금이라면 자율주행 택시를 탈 의향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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