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 보이지 않은 권리가 중요한 사회

박성순 배재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 2023. 1. 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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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순 배재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

이스라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저서 <사피엔스>에서 인류의 조상인 사피엔스 종이 지구를 지배할 수 있는 원인 중 하나로 '허구를 믿는 능력'을 제시했다. 보이지 않는 존재를 상징적으로 믿음으로써 협력을 이룰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신체적 능력을 극복해 지구를 지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능력으로 생겨난 것이 종교, 돈, 브랜드 등이라고 했고, 이를 통해 인류는 진화해왔다고 주장한다.

2022년을 정리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화두는 경기 침체다. 세계적인 경제 위기 속에서 주식시장, 암호화폐 시장은 폭락했다. 그러나 허구를 믿는 인간의 능력 때문인지 NFT(Non-Fungible Token), 콘텐츠 IP(Intellectual Property) 등에 대한 관심은 계속 높아지고 있고, 침체된 경기 속에서도 이런 보이지 않는 권리들을 취득하기 위한 사업자들의 경쟁은 심화됐다.

2016년 넷플릭스의 한국 서비스 시작과 함께 우리나라 미디어 이용 지형은 급격히 변화했다. 이제 더 이상 방송을 중심으로 콘텐츠를 향유하지 않고, OTT라고 불리는 통신 플랫폼으로 콘텐츠를 감상한다. 이런 변화에 따라 콘텐츠 제작 시장에도 변화가 시작됐다. 국내 방송 중심의 미디어 시장에서 가장 핵심적인 권리는 저작권이었다. 제작을 담당하는 제작사는 창작자의 입장에서 저작권을 확보하고 싶어 했고, 방송사는 비용을 지불한 입장에서 저작권을 확보하려 했다. 이 시기만 해도 저작권의 확보 외에 다른 지식 재산권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통신 영역 중심의 글로벌 OTT 플랫폼과 계약을 하게 되자 창작자의 권리가 더 확장되고 세분화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만 활용하던 콘텐츠 저작권이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 가능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보장하고, 국내보다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한 글로벌 OTT 사업자들이 제작자들의 저작권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확보한 저작권을 글로벌 미디어 사업자들은 영상과 관련한 테마파크 조성, 굿즈 판매 등 다양한 지적재산권의 영역으로 확장하여 이익을 높였다. 이때부터 콘텐츠 IP라는 개념이 형성됐다.

콘텐츠 IP란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부가 사업을 가능하게 하는 일련의 지식 재산권의 묶음으로 저작권과 상표권을 합한 권리를 기본으로 한다. 콘텐츠 IP는 향후 미디어 산업이 더욱 복합적으로 확장될 것이 예상됨에 따라 다양한 지식 재산권을 포함하는 권리로 확대될 것이다.

콘텐츠 IP의 중요성과 사업적 영역의 확장에 대한 기대감은 사업자들의 IP 확보 경쟁을 치열하게 하고 있고 미디어 산업의 미래를 장밋빛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나 콘텐츠 IP의 무분별한 확장은 어두운 부분도 존재한다. 일부 학자들은 이것을 NFT와 비교하며, 많은 사업자들이 확보했다고 하는데 실질적으로 뭘 확보했는지 모른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확실히 보이는 권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미디어 영역의 안정적인 발전을 위해서라도 보이지 않는 이 권리에 대한 명확한 정의, 범위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글로벌 OTT 환경에서 우리나라의 콘텐츠 제작 능력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창작자들의 권리를 확보할 수 있는 산업적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현재 창작자들은 창작의 영역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본인들의 권리를 글로벌 사업자에게 양도하고 있다. 앞으로 미디어 환경은 창작자의 자유로운 창작을 보장하면서도 창작자들의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구성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 기조가 중요하고, 보이지 않는 다양한 콘텐츠 IP를 명확하게 형성하여 활용할 수 있는 여건의 마련이 중요하다. 지금처럼 사업 영역에서 임의로 확장한 권리들이 난립하게 해서는 부작용이 클 것이다. 만약 콘텐츠 IP에 대한 대비가 없다면 우리나라는 콘텐츠를 단순하게 만들어내는 하청 영역에 머무를 것이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보이지 않는 권리의 거래가 활성화될 것이고, 중요해질 것이다. 미디어 영역부터 시작된 보이지 않는 권리의 확장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박성순 배재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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