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잘려도 선수들은 살려 달라 했는데…" 65살 노 감독의 절규
한국 테니스 남자 실업 무대에서 꾸준한 성적을 내왔던 도봉구청 선수단. 16년의 역사를 뒤로 한 채 지난해를 끝으로 결국 해체 통보를 받았다.
선수들은 구청의 미숙한 행정에 길거리로 나앉는 딱한 처지가 됐다. 해체 통보가 늦어 다른 팀으로 이적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것이다.
그동안 도봉구청을 이끌어왔던 노(老) 감독은 구청의 처사에 분통을 터뜨렸다. 임지호 감독(65)은 최근 CBS노컷뉴스에 "지난해 말, 정확히 12월 26일 구청이 우편 등기로 보낸 선수들에 대한 계약 만료 및 재계약 불가 통지를 28일 받았다"면서 "해체는 구청이 결정한 사안이라 이해할 수 있지만 최소한 선수들이 먹고 살 수 있게 다른 팀으로 갈 수 있는 시간적 여유는 줘야 하는 게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 감독에 따르면 구청은 계약 만료를 한 달 남짓 남겨놓고 팀 해체를 언급했다. 지난해 7월 취임한 오언석 구청장이 직장운동경기부로 테니스 대신 다른 종목을 운영할 것이라는 말을 구청 직원에게 들었던 것. 임 감독은 "11월 24일 구청 체육과 직원이 '감독님, 구청장님이 선수들과 재계약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라고 전했다"면서 "그러면서 '구청장님의 마음을 돌릴 수 있게 방법을 강구하셔야 할 것 같다'고도 했다"고 말했다.
선수단으로서는 날벼락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이미 다른 팀들은 모두 내년 선수단 구성을 마친 터라 도봉구청 선수들은 이적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 실업팀 감독은 "대부분 팀들이 10월 전국체전을 전후로 내년 운용 계획을 마무리한다"면서 "해체를 해도 최소한 3~4개월 전에는 통보를 해줘야 다른 팀으로 이적할 수 있는데 도봉구청의 경우는 도의적으로 너무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임 감독은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특히 오언석 구청장과 면담을 요청했지만 2번이나 묵살을 당했다는 게 임 감독의 얘기다. 임 감독은 "나는 감독을 그만둬도 좋으니 선수들이 다른 팀으로 갈 수 있도록 시간을 달라고 사정을 하려고 했다"면서 "그러나 구청장은 만나주지도 않았다"고 분을 삭이지 못했다.
그러면서 선수들은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됐다. 장우혁, 권시온, 이윤학, 김동환 등이다. 임 감독은 "계약 기간이 1년 남은 장우혁은 구청에서 올해까지 연봉을 지급해준다고 하더라"면서 "그러나 권시온은 다른 팀으로 이적을 포기하고 도봉구청으로 오려던 선수고, 대학과 고교를 졸업하는 이윤학과 김동환에게도 영입 제안을 해서 진로를 결정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팀이 해체되면서 선수들은 붕 떴고, 다른 팀으로도 갈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구청에서는 임 감독에게 3~4개월 전에 팀 해체와 관련해 언질을 줬다는 주장이다. 구청 체육 담당자는 "8월 말부터 2~3번 감독님에게 '구청장을 비롯해 직장운동경기부의 종목 변경 움직임이 일고 있으니 테니스팀의 필요성을 부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임 감독은 "해체와 관련한 공식 통보가 아니라 직원 개인의 의견이었다"고 반박했다. 임 감독은 "만약 당시 구청에서 통보해줬다면 선수들에게 오라고 영입 제안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구청 직원이 개인적으로 우려를 드러내 더 열심히 팀을 운영하려고 좋은 선수들을 데려오려 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구청 직원도 공식 통보가 아닌 개인적 의견이었다고 인정했다.
종목 변경과 관련한 구청장의 언급도 계약 만료까지 2달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임 감독과 구청에 따르면 오 청장은 지난해 11월 3일 도봉구 체육인 간담회에서 "테니스단의 홍보 효과가 그렇게 크지 않다"면서 "향후에는 고양시청에서 활약했던 역도 장미란 같은 스타를 키우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견해를 밝혔다는 것이다. 해석에 따라 테니스단 해체의 뜻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후 오 청장은 말을 바꿨다는 게 임 감독의 주장이다. 도봉구 체육회 이사도 맡고 있는 임 감독은 "간담회 말미에 오 청장에게 '제가 테니스단 감독'이라며 인사를 했다"면서 "그러자 오 청장이 '감독님, 아까 말씀드린 것은 그런(해체) 뜻이 아니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구청 직원은 "다른 행사 때문에 직원들은 미리 자리를 떠서 청장님이 추후 그런 말씀을 하신지는 몰랐다"고 했다. 때문에 임 감독은 선수 영입과 관련한 작업을 이어갔다는 것이다.
도봉구청은 권순우(당진시청), 홍성찬(세종시청), 정윤성(의정부시청), 이재문(한국산업은행), 남지성(세종시청) 등 국가대표급 선수들은 없다. 서울시와 도봉구가 반분하는 1년 5억 원의 예산으로는 특급 선수들을 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우혁이 지난해 순천오픈과 안동오픈 남자 복식 우승을 차지했고, 신승훈도 제1회 대한테니스협회장배 전국테니스대회 혼합 복식 준우승을 거두는 등 의미 있는 성적을 냈다. 임 감독은 "선수들과 시간이 날 때마다 구민들을 위한 재능 기부 행사 등에도 참석했다"고 했다.
구청은 홍보 효과가 더 큰 종목을 고려하고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체육 담당 직원은 "2개 종목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향후 예산이 더 들더라도 장미란 같은 스타급 선수를 영입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흔히 구청장이 바뀐 데 따른 게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는데 그건 아니다"며 정치적 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도봉구의 체육 정책은 최근 한국 스포츠의 흐름에 역행한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코로나19 시기에 실외 종목인 테니스는 골프와 함께 최고의 인기 스포츠로 거듭났다. 지난해 남녀 프로테니스 코리아오픈에는 구름 관중이 몰렸고, 테니스 관련 용품의 품귀 현상이 일어날 정도다. 오리온도 농구단 대신 테니스단 운영을 선택했다. 한 체육계 관계자는 "도봉구 예산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지만 장미란급 스타를 데려오려면 엄청난 투자를 해야 한다"면서 "최고의 인기인 테니스 대신 어떤 종목을 택할지 궁금하다"고 꼬집었다.
해가 바뀌었지만 선수들은 여전히 무적 신세다. 임 감독은 "영입 제안을 했던 선수들과 그 부모님들께 뭐라고 할 얘기가 없다"면서 "미안해서 연락도 못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변호사에게 상의하니 '공식 통보가 12월 26일이면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하는데 이미 팀이 해체된 마당에 무슨 소용이 있겠냐"면서 "다만 너무 화가 나고 괘씸해서 구청의 이런 행태가 다른 팀에서도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CBS노컷뉴스는 이와 관련해 오 청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지난달 29일부터 수 차례 연락하고 문자를 남겼지만 답이 없었다. 이틀 뒤 청장 비서관이 "청장님이 거의 30분 간격으로 각종 송년회에 참석하시느라 정신이 없다"면서 "곧 연락을 취하실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청장의 연락은 오지 않았고, 다른 비서관이 "실무자들도 휴일과 지방 출장 등으로 바빠 새해 업무일에 연락하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하루 아침에 선수들은 엄동설한에 직장을 잃고 노 감독이 이들을 살리기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니는데 청장은 송년회 등 행사에 참석하느라 나 몰라라 하는 상황. 테니스단 해체를 밀어붙인 도봉구청이 과연 어떤 종목을 운영하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CBS노컷뉴스 임종률 기자 airjr@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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