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채 문제 어떻게?…주택채권 본뜬 ‘국민탄소중립채권’ 발행案 부상
③ 돈맥경화를 뚫어라
자금시장 경색, ‘한전채’ 문제 해법 찾아야 해결
‘국민탄소중립채권’ 발행해 한전 자본 확충
국부펀드 조성해 기업 직접 지원 아이디어도
지난해 하반기 돈맥경화 현상은 ‘한전채 등 초우량 물 공급 확대에 따른 채권시장 내 구축(驅逐·여타 회사채 자금 수요를 몰아서 쫓아냄) 효과’로 요약된다. 그래서 새해 정부가 골몰해야 할 자금시장 경색 해법은 결국 돌고 돌아 ‘한전채 문제’로 수렴된다.
전문가들은 당연하게도 ‘정공법’인 전기료 인상을 제1 해법으로 꼽는다. 일단 신호탄은 쏘아 올려졌다. 2023년 1월 1일부터 전기요금은 1킬로와트시(㎾h)당 13.1원 올랐다. 지난해 한국전력 적자는 34조원으로 추산되는데, 일단 이번 1분기 인상분만으로 최소 연간 7조원 정도 적자를 개선할 수 있을 전망이다.
정부가 한전 경영 정상화 방안을 통해 밝힌 1년간 전기 요금 인상 적정액이 ㎾h 당 51.6원이고 앞으로 4·7·10월 전기 요금 인상 기회를 통해 그 계획이 차차 실현된다면 연간 적자 개선 효과는 이보다 더 확대될 전망이다. 정부는 일련의 계획을 통해 2026년까지 4년에 걸쳐 한전의 누적 적자를 완전히 해소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시장에선 이런 속도로는 지금의 자금시장 왜곡 현상을 바로잡기에 역부족이라고 지적한다. 이에 추가 정책적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가칭 ‘국민탄소중립채권’을 발행해 한전의 자본을 확충해주자는 의견이 부상하고 있다. 국민주택채권(국주채)을 본뜬 아이디어다.
국민주택채권은 정부가 국민주택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국채의 일종으로, 임대주택 공급 사업 등을 지원하는 주택도시기금에 보탬이 된다. 부동산 거래 후 등기할 때 의무적으로 매입해야 하는 강제 소화 채권이다.
이처럼 탄소중립 관련 거래나 행위에 대해 해당 채권 매입을 의무화한 뒤 이를 통해 조성한 자금을 한전 등 에너지 공기업에 대주자는 식의 구상이다.
박성욱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제도 설립과 시장 구축을 수반하는 새로운 종류의 채권인 만큼, 단순히 한전의 비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며 “만약 탄소중립과 같이 긴 계획을 가지고 해결해야 할 에너지 관련 과제를 위해 자금을 모으는 것이라면 설득력이 그나마 더해질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이를 현실화하려면 각종 논란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박 실장은 “공기업이긴 하지만 민간 소유 지분도 있는 만큼, 특정 기업의 자금 조달에 국채를 동원한다면 일종의 혜택 논란도 불거질 수 있는 사안”이라고 했다.
또 다른 채권시장 관계자는 “지금 있는 국민주택채권을 없애고 국채로 다 통일하자는 컨센서스가 시장에서는 형성돼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특수 목적을 가진 새로운 정부 채권을 만드는 게 상충하는 측면이 있다”라고도 했다.
한전채 그 자체가 아닌 민간 기업에 자금이 돌게 할 더욱 직접적 정책이 동원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태원 SK그룹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에게 “시장이 현재 상당히 막혀있다. 이것을 풀려면 펀딩이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며 “오히려 정부가 전문가들이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는 목적성 형태의 펀드를 만들어 전략 산업을 육성하는 게 필요하다”고 건의한 바 있다.
싱가포르나 사우디아라비아처럼 국부펀드를 조성해 반도체 등 국가전략산업에 투자하자는 것이다. 한국투자공사(KIC)·국민연금을 비롯한 각종 연기금의 돈을 모아 펀드를 설립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은행 등 보수적인 기존 금융권을 통한 자금 조달 통로는 일정 담보를 필요로 하므로, 모험성이 있는 사업에 대규모로 투입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문제의식에서다.
실제로 정부 일각에선 이런 아이디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분위기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벤처기업 크기에서는 민관 합동 펀드를 조성하는 등 기회가 있지만, 국가전략산업을 위해서 믿고 맡길 대규모 펀딩은 아직 선례가 없다”며 “민관이 관리 위험성을 공유할 수 있는 자본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공감대를 가지고 관련 사안에 대해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한전의 해외채 발행을 적극적으로 늘려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장기적으로 적자를 해소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단기적으로 불가피한 적자 상황을 막기 위해 돈을 빌리는 것(한전채 발행)인데, 국내에 다 쏟아내 문제가 생겼으니 다른 조달 수단을 발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전은 지난해 6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각 8억달러씩 총 16억달러의 해외채를 발행한 바 있다.
하지만 국내 외환시장 상황이 여전히 불안한 상황에서 외환 수급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탓에 발행 규모 측면에서 한계가 있는 데다가, 한전의 재무 상태를 고려할 때 두자릿수대 고금리 발행이 이뤄지면 한국계 외화채권에 대한 글로벌 신뢰도 하락이나 투자 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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