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는 투자법]③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대표 “모두 불황 얘기할 때가 투자 기회”

이인아 기자 2023. 1. 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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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리 기조 지속...가치주 재평가 기회
저평가 우량주·고배당주·지주회사 ‘유망’
“투자는 내가 생각하는 정답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

증시가 크게 하락할 때 종종 나타나 ‘위기가 곧 기회’라고 말하는 어른이 있다. 부침(浮沈)이 심한 증권업계에서 35년간 자리를 지키며 ‘가치투자’를 역설해온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대표이사다.

국내 가치투자 1세대로 꼽히는 허 대표는 1988년 신영증권에 입사 후 신영자산운용으로 자리를 옮겼고, 2017년 사장으로 임명돼 7년째 회사를 이끌고 있다. 긴 시간 시장을 이긴 허 대표의 투자 철학은 ‘탄탄한 종목을 싸게 사자’다. 단순하지만 어려운 이 명제에는 저평가 우량 가치주, 고배당주에 투자해야 한다는 원칙이 담겼다.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신영자산운용 본사에서 허 대표를 만났다. 그는 대다수 전문가가 올해 증시 침체를 예상하지만, 분명 좋은 투자 기회가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 1997년 IMF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어려웠던 시기를 돌이켜보면, 그만큼 큰 기회가 없었다고 상기했다.

유동성 장세에 주식 투자를 시작하고, 급격한 하락장을 겪고 있는 2030 투자자들에게 전하는 격려도 비슷했다. 누군가에겐 위기지만, 준비하는 자에겐 좋은 기회일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2022년 12월 30일 서울 영등포구 신영자산운용 허남권 대표가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김지호 기자

- 과거 투자가 어려웠던 시기는 언제였나. 어떻게 극복했는지 궁금하다.

“절대적인 하락 폭으로 따지면 1997년 IMF 위기 때가 가장 어려웠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고통스러웠다. 모든 주식이 폭락했다. 그런데 되짚어보면, 그만큼 큰 기회가 없었다. 우량주들이 바겐세일 가격에 버려졌다. 국가 부도, 글로벌 경제 붕괴에도 망하지 않을 기업을 찾기 위해 집중했다. 우량주를 집중 매수했고, 공포의 시기가 지나자 큰 수익으로 돌아왔다. 지금도 비슷하다. 현재 운영하는 펀드도 주식 비중을 가득 채웠다. 주식을 더 살 자금이 없는 게 안타까울 정도다.”

- 수년간 성장주의 시대였다. 가치주는 시장에서 소외당했다. 투자철학을 고수하는 게 어려웠을 것 같다.

“가치 투자자로서 폭락 장보다 가치주가 오랜 시간 소외당하는 시기가 더 힘들었다. 한국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다. 보통 투자자는 다른 투자자가 고수익을 내는 상황에서 소외되는 걸 참지 못한다. 특히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최근 4년간 시장에서 가치주가 소외당했다. 주식시장은 끝없이 오르는데 오히려 주가가 내려가는 가치주도 있었다. 가치주에 투자하는 방식이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낡은 방식이라 의심하고, 아예 등을 돌리는 투자자도 많았다.

투자 판단을 믿고 기다리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반복해서 겪으며 알게 된 건 이 순간을 견디지 못하고 시장을 따라가는 순간 투자자의 돈도 잃고, 고객도 잃는다는 것이다. 시장의 등락, 유행은 누구도 미리 알 수 없다. 소신 있게 투자하고,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수 등락을 쫓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면 좋은 자산을 싸게 살 기회가 온다는 것. 무엇보다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만 생각했다.”

- 많은 전문가가 올해 증시가 부진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어떻게 보고 있나.

“예측되지 않은 위험은 위험하지만, 예측되는 위험은 기회일 수 있다. 올해 예상되는 경기 침체 가능성은 어느 정도 반영된 상태라고 보고 있다. 지난해 초만 해도 대다수 증시 전문가가 주가가 상승할 거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코스피 지수는 지난해 25% 떨어졌다. 시장 등락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영역이다.

대체로 금융시장에서 큰 위기 전에는 큰 호황이 있었다. 35년간 시장을 지켜보면서 이런 상황들을 반복해서 봤다. 처음 투자하기로 결심했던 판단을 믿고 기다리면, 보상으로 돌아온다는 걸 상기해야 한다.”

- 개인 투자자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올해 누구도 시장을 낙관하지 않는 상황이다. 이럴 때 주식시장의 등락을 쫓으려 한다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위기를 맞이하더라도 냉정한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위기 국면에서는 우량주, 비우량주가 같이 폭락하는 경우가 많다. 본인이 투자한 종목에서 큰 손실이 나더라도 ‘좋은 기업을 저렴한 가격에 투자할 기회’로 여길 수 있어야 한다. 공포에 휩쓸리면 이런 기회가 눈에 들어오지 않고, 바닥에서 팔거나 손실을 회복하는 시점에서 팔곤 한다.

반복하자면, 이럴 때일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불확실한 경기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높은 경쟁력과 탄탄한 재무구조를 가진 우량 기업들을 싼 가격에 투자하는 정공법이 필요하다. 배당금을 많이 준다면 더 좋다. 이른바 저평가 우량 가치주, 고배당주에 집중해야 한다. 과거로부터 배운 교훈이다.”

2022년 12월 30일 서울 영등포구 신영자산운용 허남권 대표가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김지호 기자

- 어떤 가치주에 투자해야 할까.

“거시경제 지표 중 금리가 가장 중요하다. 고금리 기조와 불확실한 경기 상황에서는 확실한 것들이 중요해진다. 가치주가 재평가받을 수 있다. 앞으로 상당 기간 고금리 상황이 지속될 것이다. 금리가 더 올라가지 않는 시점에서는 성장주에 대한 투자 심리가 다소 회복될 수 있다. 그러나 금리가 다시 내려가기까지는 상당히 오래 걸릴 것이다.

개별 기업을 투자할 땐, 본인이 잘 아는 기업 중에서 골라야 한다. 기업이 가진 경쟁력, 현금흐름, 재무구조 등을 꼼꼼히 따져야 한다. 화려한 미래를 그리지 못해도 꾸준히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기업인지가 중요하다. 주가가 과거에 비해, 동종 기업에 비해 충분히 저평가되어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 특히 배당금을 안정적으로 지급하는 것도 중요하다.”

- 올해 눈여겨볼 업종은?

“올해 정부가 경제성장률을 1.6%, 물가 상승률을 3.4%로 예상했다. 코스피 지수가 올라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수 변동 폭이 크지 않지만, 경기 상황에 상관없이 지속해 올라갈 기업들을 찾아내 투자해야 한다. 종목별 편차가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

지주회사를 눈여겨보고 있다. 승계와 관련해 국내 대다수 그룹사가 이미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됐다. 그룹 지배구조에서 정점의 위치에 있는 지주회사지만, 보유하고 있는 핵심 자회사들의 가치에 비해서는 크게 할인돼 거래되곤 한다.

금융당국이 의무 공개매수제도 도입을 고려하는 것도 지주회사 소액주주에겐 긍정적이다. 지배구조 재편으로 대주주의 이익에 부합하고, 투자자들의 이익에도 부합하는 배당금도 확대되고 있다. 지주회사들에 대한 투자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한국의 간판 기업들을 대폭 할인된 가격에 투자하면서 안정적으로 높은 배당도 받을 수 있는 좋은 투자처다.”

- 활황장에 주식투자를 경험한 젊은 투자자들이 많다.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은.

“투자에 대해 겸손하고, 공부해야 한다. 긴 안목으로 세상을 봐야 한다. 수익을 좀 내다보면 내가 투자를 잘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수 있다. 나도 젊을 때 손대는 것마다 잘돼서 ‘미다스의 손’인 줄 알았다. 하지만 주식시장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뜻하지 않은 수익은 그냥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다. 항상 운이 좋을 수 없다. 운을 실력으로 착각할 때 비극이 시작된다.

주식시장에는 전문적인 지식과 오랜 경험을 가진 투자자들이 많다. 이런 투자자들도 오랜 기간 높은 수익을 내는 경우는 드물다. 주식시장 자체를 예측하고 바닥에 들어가서 꼭지에 나올 수 있다는 건 착각이다.

일단 내가 어떤 기업에 왜 투자하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왜 투자했는지는 분명히 알아야 실패해도 무엇을 잘못 생각했는지 알 수 있고, 실패에서 배울 수 있다. 유행에 휩쓸려 사고팔기를 반복하다 돈을 잃기 십상이다.

투자는 정답을 맞히는 게 아니고 내가 생각하는 정답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젊을수록 시간이 많다. 철저하게 공부하고 신념을 갖고 투자해야 한다.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여유까지 생기면, 배당의 복리 투자 효과가 더해져 플러스 수익률을 얻게 된다. 길게 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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