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불협화음과 아이러니…뮤지컬 '거장'의 세계 빠져볼까
수십 년 지나도 세련된 음악·무뎌지지 않은 풍자로 짙은 여운
(서울=연합뉴스) 임지우 기자 = 길지 않은 뮤지컬 역사에서 '고전'의 자리에 오른 두 작품이 새해 공연장을 풍성하게 채운다.
브로드웨이를 세계적인 공연의 성지로 만드는 데 일조한 미국의 뮤지컬 작사·작곡가 스티븐 손드하임의 스릴러 뮤지컬 '스위니토드'와 지휘 거장이자 클래식·뮤지컬 작곡가로도 활동한 레너드 번스타인이 작곡하고 손드하임이 작사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두 작품은 모두 지난 2일 기준 공연예술통합전산망 예매 상위 10위 안에 이름을 올리며 고전의 저력을 증명하고 있다.
엉겨 붙은 핏자국처럼 얽히고설킨 복수극…'스위니토드'
"인류의 역사엔 언제나 윗놈이 아랫놈 등쳐먹지…정말 기막힌 반전이야 (이젠) 윗놈이 아랫놈 식사거리!"
탐욕스러운 판사 터핀에게 아름다운 아내를 빼앗기고 누명까지 써 감옥에 가게 된 가난한 이발사 벤자민.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피해자였던 그는 복수심에 불타 '스위니토드'라는 이름의 살인마가 되어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이는 가해자가 된다.
스위니토드와 그를 돕는 파이 가게 주인 러빗 부인은 그 시체로 파이를 만들어 팔 계획을 세우며 신이 나 노래하며 춤춘다. 소름 끼치게 잔인한 내용의 가사에 흥겹고 익살스러운 멜로디, 환하게 웃는 인물들까지, 모든 요소에서 풍자와 아이러니가 넘쳐난다.
3월 5일까지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하는 '스위니토드'는 파격적인 줄거리와 블랙 코미디, 긴장감 넘치는 음악으로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손드하임의 대표작이다. 1979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작품으로 복수심으로 가득 찬 이발사 스위니토드의 피로 낭자한 복수극을 그린다.
벤자민의 아내를 겁탈한 것도 모자라 그의 딸 조안나와도 결혼하려 하는 터핀. 그는 스위니토드로 변신한 벤자민의 이발소에 면도를 하러 와 자신이 청혼하려는 조안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노래한다. 그의 뒤에서 살의에 차 면도날을 준비하던 스위니토드도 자신의 딸 조안나를 그리워하며 그와 함께 노래하고, 터핀의 욕정과 스위니토드의 애끊는 부정은 기묘한 불협화음으로 겹쳐진다.
방해꾼으로 인해 터핀을 죽이는 데 실패한 스위니토드는 분노에 폭주하고, 딸 조안나를 구해오려는 계획을 세워본다. 그러나 그를 돕는 인물들마저 각자의 욕망에만 충실한 이 복수극은 극의 내내 흐르는 불협화음처럼 삐걱거리며 비극적 결말로 달려간다.
작품은 불평등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 기괴하면서도 아름다운 불협화음으로 인간의 어두운 욕망을 무대 위에 적나라하게 꺼내놓는다.
연극 '햄릿', 뮤지컬 '썸씽로튼'으로 연기력과 가창력을 인정받은 강필석이 복수심에 굶주린 사자와 같은 스위니토드를 무대 위에서 손색없이 구현한다. 이규형, 신성록이 같은 역할로 함께 무대에 오른다.
2017년 이 작품으로 한국뮤지컬어워즈 여우주연상을 받은 전미도가 6년 만에 러빗 부인으로 합류해 능청스러운 연기력을 뽐내며 배우 김지현과 린아가 같은 역할을 맡았다.
폭력 속에서 피어난 비극적 사랑, 한 편의 춤으로…'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미국 뉴욕 맨해튼 슬럼가의 어느 뒷골목. 거친 옷차림의 젊은이들이 무리 지어 등장한다. 패싸움을 할 듯 서로를 노려보는 이들은 주먹 대신 긴장감 넘치는 재즈 음악에 맞춰 점프와 턴을 주고받는다. 고성 한 번, 주먹질 한 번 오가지 않지만 눈빛과 손짓만으로도 팽팽한 긴장감과 적대감이 무대를 가득 채운다.
2월 26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뉴욕 슬럼가를 배경으로 갱단들 간의 대립으로 각색해 만든 작품이다. 미국의 전설적인 지휘자이자 작곡가 레너드 번스타인이 작곡했으며 손드하임이 작사를 맡아 1957년 초연됐다.
폴란드에서 온 이민자 2세대로 이뤄진 '제트파'와, 푸에르토리코 이민자로 이뤄진 '샤크파'의 대립을 배경으로, '제트파'인 토니와 '샤크파' 마리아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원작 '로미오와 줄리엣'과 거의 같은 줄거리를 따르지만, 이민자들 간의 갈등과 인종 차별 문제가 심각하던 당시 미국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와 아름다운 음악 등 극의 재미는 충분하다.
어떤 차별과 텃세에도 미국을 떠나 가난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샤크파'의 젊은이들. 기성세대와 권력을 상징하는 경찰은 대놓고 인종 차별과 폭력을 조장하고, 이들이 만들어 놓은 구조 속에서 제트와 샤크는 서로를 물어뜯는 희생자들일 뿐이다.
제트와 샤크의 갈등이 최고조에 다다른 순간, 마리아와 토니가 부르는 사랑의 세레나데와 그들의 친구들이 분노에 차 부르는 폭력의 노래가 오중주로 겹치는 곡 '이 밤'(Tonight)은 비극적인 현실의 모순을 아름다운 음악으로 빚어낸 작품의 하이라이트다.
안무가이기도 한 제롬 로빈스가 연출을 맡은 작품으로 독창적이고 풍부한 춤이 음악과 더불어 큰 역할을 한다. 발레, 탱고 등을 활용한 고전적이면서도 세련된 안무로 분노와 긴장감부터 첫눈에 반한 사랑까지, 인물들의 감정을 무대 위에 펼쳐 놓는다.
김준수, 박강현, 고은성이 비극적 사랑의 주인공 토니 역을 맡았다. 또 다른 주인공 마리아 역으로는 한재아, 이지수가 출연하며, 마리아의 친구 아니타 역으로는 김소향과 정유지가 무대에 오른다.
wisefoo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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