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후의 팔팔구구] 메타박스

이근후 이화여대 의과대학 명예교수 2023. 1. 4.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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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의 허황된 신화 아닌
‘3D 가상현실’ 체험할 수단
첨단 과학시대 새로운 희망
오감 한계 능가 영역 커지면
영혼과 대화 공간도 생길까

요즘 들어 사회 변화가 갈수록 빨라지다보니 듣기에 생소한 용어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온다. 메타박스(Meta Box)란 말도 그 가운데 하나다.

메타(Meta)의 어원을 알아볼까. 그리스어로 ‘넘어서, 위에 있는, 초월하는’ 등의 의미를 가진 접두사다. 의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메타박스의 뜻을 상세히 설명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 대신 아날로그 시대를 산 ‘올드보이’인 만큼 판도라의 상자(Pandora’s Box)는 익숙하고, 누군가에게 의미를 잘 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판도라의 상자는 그리스신화에서 나왔다. 판도라는 신화 속에서 이 세상 최초의 여성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제우스가 불의 신이자 장인의 수호신인 헤파이스토스에게 부탁해 흙으로 여자를 빚게 했다. 가장 처음으로 탄생한 여성이니 얼마나 기대감이 컸을까. 신들은 앞다퉈 자신이 고른 가장 좋은 선물을 판도라에게 건넸다. 제우스도 예쁜 단지를 그에게 선물했다. 그러면서 절대 단지를 열어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호기심이 많은 판도라는 결국 그 단지를 열고 말았다. 단지 안에는 온갖 고통과 질병, 악이 가득했고 단지가 열리는 순간 인간에게 해로운 것들이 퍼지고 말았다. 그는 놀란 나머지 급하게 입구를 다시 봉했다. 그래서 최후에 남아 있던 ‘희망’이란 것이 남게 됐다고 한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인간은 어떤 악조건에 놓이더라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됐단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판도라의 상자’는 허황되고, 흥미롭게 이야기할 만한 대화 소재 정도로만 여겨진다. 분명 여기서 과학적인 실체를 발견할 수는 없다. 이와 달리 메타박스는 첨단 과학시대를 살면서 새로운 희망을 품게 해줄 만한 도구다.

메타박스는 메타유니버스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한 3차원(3D) 가상현실(VR) 플랫폼으로서 가상 영상을 감상할 수 있는 수단이다. 전용 안경을 끼면 가상현실을 실재처럼 느낄 수 있는 게 특징이다. 그러니 판도라의 상자처럼 허황된 신화는 아니란 얘기다.

판도라의 상자나 메타박스를 생각하다보니 자연스레 연상되는 한가지가 있다. <흥부전>이라는 고전소설이다.

미물이라도 어려움에 처한 것이라면 발 벗고 나서는 흥부는 마음을 다해 다친 제비를 돌본 후 강남으로 날려 보냈다. 이듬해 흥부네 집을 찾은 제비는 박씨를 물어다 줬다. 흥부는 씨앗을 심어 수확했고, 다 자란 박을 열었더니 재물에, 큰 집까지 나와 호강을 누리게 됐다.

이것을 본 놀부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놀부는 잘 날아다니는 제비를 잡아다 일부러 다리를 부러뜨린 뒤 치료하고서 강남으로 보냈다. 그 제비 역시 다음 해 봄에 날아와 박씨 하나를 놀부에게 건넸다. 박씨를 심어 가을에 박을 열어봤는데 이게 웬일인가. 박 안에서 탈을 쓴 사람이 나와 놀부의 목숨을 위협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흥부는 메타박스를 선물 받은 것이고, 놀부는 판도라의 상자를 받은 게 아닌가 싶다.

메타박스 하면 생각나는 위인이 또 있다. 발명왕 에디슨이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후 ‘영혼 전화기’를 만들어 팔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게 무엇인고 하니 전쟁에 나갔다 전사한 자식과 통화할 수 있는 전화기다. 물론 그 제품을 산 부모가 자녀와 실제 통화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는다.

이와 달리 메타박스가 구현하는 세상은 우리 오감의 한계를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 가늠할 수 없는 메타박스 영역의 크기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영혼과 대화할 수 있는 가상공간도 생겨나지 않을까. 만약 죽은 자와 소통하고 싶은 이들의 간절한 소망을 기술자들도 공감한다면 꿈이 현실이 되지 않을까 하는 공상에 빠져 본다.

이근후 (이화여대 의과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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