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밥상] 좁쌀로 만든 죽 ‘연푸국’…첫맛은 ‘심심’ 끝맛은 ‘감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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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곡 가운데 하나인 조는 낟알이 들깨만 하다.
하도 작아서 종종 하찮은 사람이나 물건을 비유할 때 조의 열매인 좁쌀을 들기도 한다.
연푸국을 먹고 싶다면 맹골마을에 자리 잡은 농가 맛집 '매화당'을 찾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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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시절 이웃과 함께 먹던 음식
다시마와 북어로 육수 만들고
잘게 썰은 두부까지 넣어 든든
현재는 좁쌀과 여러 재료 활용
향토음식이 ‘일품요리’로 변신
오곡 가운데 하나인 조는 낟알이 들깨만 하다. 하도 작아서 종종 하찮은 사람이나 물건을 비유할 때 조의 열매인 좁쌀을 들기도 한다. 좀스러운 사람에겐 ‘좁쌀영감’이란 별명이 붙고 가망이 없는 일을 두고는 ‘좁쌀에 뒤웅 판다’는 속담을 쓴다. 그렇다고 마냥 보잘것없는 취급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좁‘쌀’이지 않은가. 곤궁한 형편에는 흰쌀만큼이나 귀한 존재다. 조는 메마른 땅에서도 잘 자라는 데다 영양도 풍부해 쌀을 대신하는 곡물로 손색이 없다. 척박한 고장으로 꼽히는 곳마다 조로 만든 음식이 전해 지는 이유다.
경기 양주시 남면 맹골마을에 내려오는 연푸국도 그런 음식이다. 농사로 먹고살던 옛 시절엔 이웃끼리 서로 도와 일하고 끝난 후엔 음식을 나누는 것이 일상이었다. 이때 여럿이 함께 먹으려고 없는 살림에 궁리한 것이 연푸국이다.
이름은 국이지만 생김새는 영락없는 죽이다. 다시마와 북어로 뽑은 육수에 쌀 대신 노르께한 좁쌀을 갈아 넣고 한소끔 끓인다. 그러면 걸쭉하고 고운 죽이 되는데 한 그릇만 먹어도 금세 속이 든든하고 따듯하다.
여기에 잘게 썬 두부를 넣어 씹는 맛을 더하면서 부족하기 쉬운 영양소를 채웠다. 남면은 콩 산지로 유명한 파주와 인접한 동네로, 역시 콩이 많이 났다. 재배한 콩으로 집집이 두부를 만들었고 이는 곧 우수한 단백질원이 됐다.
연푸국은 단번에 반하는 음식은 아니다. 첫맛은 ‘무미(無味)’에 가깝다. 순하고 연하다. 갸우뚱하며 한입 두입 먹다 보면 은근히 구수하고 담백한 곡물맛이 느껴지는데 꽤 중독적이다. 반쯤 비웠을 땐 육수에 담긴 해산물의 감칠맛도 진하게 올라온다. ‘맛볼수록 매력’에 빠져드는 ‘볼매(볼수록 매력)’ 같은 한 그릇이다.
연푸국을 먹고 싶다면 맹골마을에 자리 잡은 농가 맛집 ‘매화당’을 찾으면 된다.
귀촌해 7년째 식당을 운영하는 조정희씨(68)가 마을 어르신에게 전수받은 솜씨로 연푸국을 차려낸다. “옛날에는 농사도 같이 짓고 마을청소니 뭐니 하면서 동네 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서 일하고 했대요. 특히 추운 겨울 일을 마치고 큰 가마솥에 연푸국을 끓여 나눠 먹었다고 해요. 수다도 떨면서 뜨끈한 국물을 들이켰으니 얼마나 속이 풀렸겠어요.”
조씨가 만드는 연푸국은 원조와는 조금 다르다. 풍족한 때이니만큼 재료가 다채로워졌다. 핵심인 좁쌀은 그대로 유지하되 육수를 신경 써서 낸다. 육수에 쇠고기·밴댕이·멸치·양파·무를 추가해 깊은 맛을 내고 완성한 국에 달걀지단과 잘게 찢은 쇠고기·북어포를 고명으로 올린다. 멀겋기만 했던 죽이 지금은 손님상에 내놓을 만한 일품요리가 된 것이다.
연푸국이 과거 옹색한 형편에 겨우 차려 내오던 음식에서 오늘날 귀한 음식이 된 데는 쌀과 좁쌀의 뒤바뀐 운명 탓도 있다.
지금은 쌀이 넘치는 시대다. 오히려 좁쌀이 별미 잡곡 대접을 받는다. 게다가 그리운 추억의 맛까지 서려 있으니 일부러 찾아 먹어야 할 향토음식이 됐다.
양주=지유리 기자, 사진=지영철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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