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工期)보다 사람이 먼저다..빨리빨리, 그만

김희정 기자 2023. 1. 4.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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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은 현장경영이다-건설현장 이것만은 고치자]② 표준품셈처럼 '표준공기' 도입 검토해야
광주 서구 화정동 아이파크 아파트 신축공사 붕괴 사고 현장 내부가 잔해로 둘러싸여 있다. 2022.1.22/뉴스1


"공기 맞춰야 하니 그냥 주의만 주고 넘어가세요."

부천 건설 현장의 안전관리자 김 모 씨는 코로나19가 급속도로 퍼지던 지난해 여름 마스크 착용을 하지 않는 작업 반장들에게 '1시간 현장 퇴출' 조치를 했다. 작업 반장이 마스크를 끼지 않으면 다른 근로자들도 착용할리 만무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곧바로 '위'에서 연락이 왔다. 공기 맞추기가 급하니 주의만 주고 작업을 계속하게 하란 지시였다.

중대재해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올해 3분기까지 100대 건설사의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자는 되레 50% 늘어 18명을 기록했다. 국토교통부는 연말까지 특별점검을 실시하고 연속 사망사고 건설사들에 대해 강도 높은 정밀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건설안전관리자들은 "괜찮아, 서둘러, 빨리해"란 말이 현장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인재를 예방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민간 아파트 지을 때도 '표준공기' 도입해야
지난해 D사가 시공한 한 건설현장에는 이례적으로 안전관리자 출신의 현장소장이 왔다. 하지만 해당 소장은 빡빡한 공사기간을 맞추지 못해 결국 중간에 교체됐다.

익명의 건설업계 관계자는 "발주처가 정한 공사 기간은 예나 지금이나 늘지 않는데 지켜야 할 안전 수칙과 규범은 늘고 코로나에 건설자재 대란, 화물연대 파업, 건설노조의 업무 방해까지 현장의 변수가 너무 많아졌다"며 "원칙을 지키면서 공사를 진행할 경우 공기를 맞출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익명의 중소 철콘전문건설업체 임원 A도 "적정 공기와 공사비를 확보하지 않고 안전을 얘기해봤자 공염불"이라며 "공공을 제외한 민간공사 현장에선 정비사업조합 등 발주처가 정한 공기를 대기업 원청이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고, 다시 하청업체인 전문건설업체가 공사 기간을 맞추려고 무리한 작업을 강행하기 일쑤"라고 하소연했다.

실제 아파트 1000가구를 지을 때 시공사 밑으로 공종별로 작업하는 전문건설업체만 약 50여개사. 원청업체는 발주처가 요구한 공사 일정대로 공정표를 맞추라고 요구할 뿐 현장의 변수를 감안해 일정을 늦추진 않는다. 공기 지연으로 입주가 밀리면 19%에 달하는 지체보상금을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규제에 질려서"… '적정 공기 확보' 건설안전특별법, 정작 업계에선 반대
중대재해법 도입 전에 건설안전특별법(이하 건안법)이 먼저 논의됐던 이유도 건설안전과 공사기간이 직결된다는 문제의식에서다. 2021년 10월 당정 협의를 거쳐 재발의된 건안법은 설계·시공·감리자가 안전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발주자가 적정 기간과 비용을 제공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민간공사의 경우 공사기간과 공사비용이 적정한지 인허가기관의 장 등의 검토를 받게 한다. 공사 현장의 안전관리를 발주자와 직접 계약을 체결하는 원수급인에게 책임을 두는 것도 건안법의 주요 골자다.

하지만 원청인 대기업 건설사들은 물론이고 전문건설업체들조차 입법에 반대하고 있다. 중대재해법과 산업안전보건법 등 이미 안전을 위한 법안이 넘쳐 규제에 허덕이고 있는데 실효성도 없이 지켜야 할 법만 늘어날 것이란 우려에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건안법에 대해선 하청과 본청의 입장이 다르지만, 하청업체조차도 규제로 인한 업무 부담이 늘어날까봐 도입에 반대한다"며 "지금도 현장에 1명 뿐인 안전관리자가 해야할 서류작업이 산더미"라고 말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공공 공사의 예정가격을 선정하기 위한 기준인 표준품셈처럼 '표준 공기'를 도입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민간 공사에서도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사기간 기준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

전문건설업체 A 임원은 "지금도 착공 전 지자체에 착공계가 들어오면 담당 공무원이 검토하긴 하나, 현장 경험이 없다보니 절차만 맞으면 통과시켜준다"며 "시범적으로 주말, 동절기와 하절기 작업가능일수 등 감안해 30개월이면 끝날 일을 1개월 늘려보고 안전사고가 줄어드는 성과가 보이면 그 때 의무화하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김희정 기자 dontsigh@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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