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 칼바람이 키운다, 용대 황태 2000만마리
지난 1일 찾은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황태덕장. 얼기설기 엮은 통나무 덕대(명태를 걸기 위해 나무로 만든 대)에 160여만 마리 명태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이곳에선 매년 12월이면 배를 갈라 내장을 뺀 명태를 덕대에 내건다. 덕장에 널린 명태는 눈과 해, 바람이 얼리고 녹이기를 반복한다. 4개월의 시간이 지나면 명태는 포슬포슬한 속살을 자랑하는 황태로 새롭게 태어난다.
이날 용대리 아침 최저기온은 영하 15도. 설악산 자락에서 몰아치는 칼바람에 체감온도는 영하 25도를 넘나들었다. 잠시 서 있는 것조차 힘든 추위였지만, 덕장 사람들에게 추위는 오히려 반가운 손님이다. 30년째 황태덕장을 운영하는 이강열(63)씨는 “좋은 황태 생산을 위해서는 첫째도 날씨, 둘째도 날씨, 셋째도 날씨”라며 “황태가 되기 위해선 기온과 일교차, 일조량, 바람, 습도 등 모든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황태 70% 생산하는 인제 용대리
인제군 북면 용대리는 ‘황태의 고장’으로 불린다. 용대리 일원에만 22곳의 황태 덕장이 자리해 있다. 덕장의 크기를 모두 합하면 약 8만평(26만4000㎡)에 달한다. 축구장(7140㎡) 37개 규모다. 이곳에 내걸리는 명태만 한 해 2000만 마리로 전국 황태의 70%가량이 용대리에서 생산된다.
용대리에선 1960년대 실향민들이 정착하며 황태를 만들기 시작했다. 6·25전쟁으로 함경도 청진 등에서 내려온 피란민들이 용대리에 터를 잡았고, 망향의 한을 달래기 위해 고향의 맛을 찾다가 함경도와 날씨가 비슷한 진부령 일대에서 명태를 건조한 것이다. 황태는 명태의 여러 이름 중 하나다. 명태는 가공 방법에 따라 이름이 달리 붙는다. 싱싱한 생물이면 생태, 얼리면 동태가 된다. 또 건조 방식에 따라 황태·북어·백태 등으로 불린다. 이 중 황금빛 속살을 자랑하는 황태를 최고로 쳐준다.
내설악(설악산 주봉인 대청봉을 중심으로 서쪽 일대)을 낀 용대리는 강원도 영동 지역과 영서 지역을 잇는 경계에 자리해 있다. 눈이 많고 진부령과 미시령에서 불어치는 바람도 있어 황태를 만들기에 최적인 환경이다. 해발 400m의 고산 지대에 덕장이 자리해 일교차도 크다. 최고 품질의 황태를 위해선 적절한 눈과 바람, 추위의 세 요소가 필요하다. 덕장에 내린 눈은 영상의 기온에도 추위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바람은 명태를 잘 마르게 해 상하는 것을 방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추위는 명태를 얼렸다 녹였다 하면서 명태 살 조직의 수축과 팽창을 반복해 부드러움을 극대화한다.
이종구(61) 인제용대황태연합회장은 “일교차가 유지되며 얼고 녹기를 반복해야 황태가 탄생한다”면서 “최근엔 맛뿐 아니라 황태의 해독 작용이 주목받으며 건강 식품으로 다시금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황태는 지역 경제의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인제군에 따르면 용대리 22곳의 덕장에서 2021년 한 해 동안 8200t의 황태를 생산해 350억원의 소득을 올렸다. 2019년엔 500억원, 2020년엔 360억원의 소득을 기록했다.
◇‘용대황태산업특구’ 2년 연장 추진
인제군은 황태를 지역 대표 상품으로 육성하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인제군은 우선 올해 만료되는 ‘용대황태산업특구’의 2년 연장을 추진하고 있다. 인제군은 황태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지난 2013년 황태 특구 지정을 추진했고, 중소기업청(현 중소벤처기업부)은 2014년 용대리 일원 132만4170㎡를 ‘용대황태산업특구’로 지정했다. 특구 지정으로 올해까지 132억5000만원의 국비 등이 투입돼 덕장 시설 개선과 가공 생산 시스템 구축 등 황태 생산 및 소득 기반 조성 사업이 추진됐다.
황태 특구 지정이 연장되면 용대리 황태만의 브랜드 가치를 이어갈 수 있을 뿐 아니라 국비 지원을 통한 황태 생산 및 유통 체계의 현대화를 추진할 수 있다. 1999년부터 시작된 황태 축제의 규모도 확대할 수 있다. 인제군 관계자는 “특구 연장을 통해 용대리 황태의 우수성을 전국에 알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덕장 인증제도 도입할 계획이다. 덕장 인증제는 인제군수가 용대리 황태 덕장에서 생산된 황태라는 것을 인증해 주는 제도다. 덕장 인증제가 도입되면 외국산 황태가 용대리 황태로 둔갑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황태 생산자 표기로 품질 좋은 명품 황태를 생산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인제군은 황태의 단순 생산을 넘어 가공을 통한 산업화도 추진 중이다. 인제군엔 15개의 황태 관련 공장이 있다. 이곳에서는 황태를 활용한 조미료와 양념구이 등의 가공식품은 물론 애견 사료 등도 생산하고 있다.
황태축제 활성화도 추진한다. 황태축제는 코로나 여파로 중단됐다가 작년 10월 3년 만에 재개됐다. 작년 축제엔 5만여명이 다녀갔다. 축제에선 황태의 건조 과정을 체험하고 햇황태를 싼값에 살 수 있다. 인제군은 축제 활성화를 위해 체험형 관광 상품 개발과 황태 음식 거리 조성, 마케팅 지원 등의 사업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최상기 인제군수는 “용대리 황태는 인제 오미자 등과 더불어 인제를 대표하는 특산품”이라며 “황태 판로를 국내뿐 아니라 해외로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인제=정성원 기자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Minute to Read] Samsung Electronics stock tumbles to 40,000-won range
- “주한미군 이상 없나?” 트럼프 2기 미국을 읽는 ‘내재적 접근법’
- 온 도시가 뿌옇게… 최악 대기오염에 등교까지 중단한 ‘이 나라’
- 한미일 정상 "北 러시아 파병 강력 규탄"...공동성명 채택
- [모던 경성]‘정조’ 유린당한 ‘苑洞 재킷’ 김화동,시대의 罪인가
- 10만개 히트작이 고작 뚜껑이라니? 생수 속 미세플라스틱 잡은 이 기술
- 와인의 풍미를 1초 만에 확 올린 방법
- [북카페] ‘빌드(BUILD) 창조의 과정’ 외
- [편집자 레터] 가을 모기
- [우석훈의 달달하게 책 읽기] 스위스에서 막내에게 농지를 우선 상속하는 이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