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김정은, 건강엔 핵무기보다 ‘이밥에 고깃국’이 좋다

이용수 논설위원 2023. 1. 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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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부자 死因은 심근경색
경제난 스트레스가 뇌관 역할
핵 완성한다고 경제 곤두박질
金, 무엇이 최선인지 고민할 때

심혈관 질환 고위험군에 스트레스 관리는 생사가 달린 문제다. 말년의 김일성은 총체적 경제난, 특히 전력난으로 골치를 앓았다. 1994년 7월 5일 경제 간부들을 묘향산에 모아놓고 “함흥·해주에 중유발전소를 건설해야 한다”며 터빈발전기 마련 방안을 다그쳤다.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하자 실무자를 데려오라며 헬리콥터를 띄웠다. 회의가 끝난 뒤에도 헬리콥터가 떴는지, 어디쯤 가고 있는지, 실무자가 언제 오는지를 캐물었다. 서기실 책임서기 전하철은 밤 9시까지 김일성 전화를 받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일 조선소년단 제9차 대회 대표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일 보도했다. 2023.1.2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회의 둘째 날 김일성은 전력, 비료, 비날론, 시멘트, 선박 등 부문별로 만기친람식 지시를 내리다 돌연 “돌파구를 열어야 할 일꾼들이 사무실에 앉아 허송세월하니 안타깝다”고 했다. 안색은 어두웠고 목소리는 갈라졌다. 김일성은 왼쪽 가슴을 두드리더니 담배를 찾았다. 한 개비 태운 김일성은 “피우지 않던 담배까지 피운다”며 잔소리를 쏟아냈다. ‘심려 어린 어조’였다고 전하철은 기록했다. 김일성은 7월 8일 새벽 2시 사망했다. 심근경색이었다.

김정일 집권 말기 최대 화두는 ‘강성대국’이었다. 모든 기관·단체들이 2007년부터 “수령님 탄생 100돌(2012년)에 강성대국의 대문을 활짝 열어제끼자”고 합창했다. 강성대국의 ‘기둥 사업’이라 선전했던 게 희천발전소다. 만성적 전력난을 일거에 해결해 줄 거라며 2009년 3월 첫 삽을 떴다. 뇌졸중 후유증에 시달리던 김정일은 부축을 받아가며 첩첩산중의 건설 현장을 8차례 찾았다. 10년 걸린다던 공사가 3년 만에 끝났다. 노동신문은 ‘희천 속도’란 신조어로 도배됐다.

무리한 공기 단축은 부실 공사로 이어졌다. 허위 보고에 속은 김정일만 몰랐다. 2011년 12월 중순이 돼서야 “누수가 심각하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강성대국 원년이 코앞이었다. 대로(大怒)한 김정일은 12월 17일 이른 아침 현지 시찰을 서둘렀다. 평양이 영하 13도, 자강도 희천은 영하 30도가 넘었다. 이틀 뒤 아나운서 리춘히는 “김정일 동지가 초강도의 현지지도 강행군 길을 이어가다가 겹쌓인 정신·육체적 과로로 열차에서 순직했다”고 발표했다. 심근경색이었다.

가족력을 물려받은 김정은은 고도비만에 술·담배를 달고 산다. 조부·부친보다도 스트레스 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 김정은의 인생 최대 고비는 2019년 2월이었다. 하노이까지 4500㎞를 열차로 66시간 여행하는 여유를 부렸다. ‘빈손 귀환’은 상상도 못한 충격이었다. 평양행 열차 안에서 “대체 무슨 이유로 이런 기차 여행을 또 해야 하느냐”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최근 김정은의 핵폭주는 하노이의 굴욕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발버둥이다. 다음번 대미 담판의 필승 카드를 쥐겠단 계산이다. 그런데 며칠 전 전원회의 발언이 의외였다. “2022년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은 시간이었고 분명코 우리는 전진했다”고 했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말투였다. 또 “패배주의를 청산하기 위해 투쟁해왔음에도 낡은 사상이 경제 일꾼들 속에 고질병처럼 잠복해 있다”고 했다. 영(令)이 서지 않는 모양이다.

김일성·김정일의 말년을 짓누른 건 경제난과 복지부동하는 관료들이었다. 공화국 외교의 금자탑이라는 NPT 탈퇴와 제네바 합의도, 미제의 코를 납작하게 했다는 핵과 미사일도 부질없었다. 핵이 많아질수록 ‘이밥에 고깃국’은 멀어지고 면종복배(面從腹背)가 만연할 것이다. 담판이 다시 열린다 해도 미국이 선뜻 체제 보장과 경제 보상을 해줄지 장담할 수 없다. 김정은도 이제 곧 마흔이다. 두 번째 노딜은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핵만 쳐다보는 게 최선일지 고민할 때다. 장소로는 따뜻한 원산 특각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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