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전시
관람객에게 술 한 잔씩 선물
작품에 취한다는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입구에서 술잔을 고를 수 있다. 술잔도 작품이다. 이윽고 안내인이 술 한 잔을 따라준다. 조선시대 문헌을 참고해 구현한 과하주(過夏酒)다. 잠시 마스크를 내리고 홀짝이니 추위가 풀린다. 술잔이 있으니 걸음이 자연히 느려진다. 공예가 박선민이 폐유리병을 자르고 붙이고 연마해 제작한 술병들(‘시절의 잔상’) 앞에 선다. 찬장 빼곡이 담금주를 보관하던 할머니를 떠올리며 만든 것이라 한다. 김민정 큐레이터는 “여성이 쓴 요리책 레시피대로 빚은 술을 마시며 여성 작가 6인의 작품을 둘러보는 전시”라며 “가끔 우리가 술의 힘을 빌어 솔직해지듯 작품을 응시하며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서울 성수동 우란문화재단에서 2월 8일까지 열린다.
작품은 모두 ‘술’을 주제로 삼았다. 공예가 박혜인은 장(腸)처럼 구불구불 기다란 유리관(‘기념의 날을 위한 증류장치’) 안에 맥주 500㏄를 넣어뒀다. 작가의 최대 주량인 한 캔의 맥주가 조금씩 정제되는 과정을 바라보며 시간, 특히 술로 몸이 오래 젖어있던 지난해 연말을 떠올리게 된다. 전시장 맨 구석에 국가무형문화재 소목장(小木匠) 이수자 유진경이 오동나무로 짠 탁자와 의자가 놓여 있다. 스피커에서는 빗소리가 흘러나온다. 빗줄기를 안주 삼아 친구와 술잔 기울이던 한때를 회상하며 연출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술자리가 유쾌할 수는 없다. 공예가 최수진이 뿔 달린 술잔과 기다란 칼 등(‘안전한 술자리를 위한 도구들’)을 도자로 빚어 좌대에 올려놓은 이유다. 술 먹다 피 보기 싫다면 추태를 삼가야 한다.
2층 전시장에서도 술과 풍류(風流)를 다룬 멀티미디어 전시가 2월 24일까지 열린다. 관람 후 운전 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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