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자와 끝 자를 30분 안에 조직 의사결정 내리듯 써야
먹에 든 아교 성분 때문에 갈아 놓은 먹물은 시간이 지날수록 색이 탁해진다. 아무리 긴 대작도 ‘일필휘지(一筆揮之)’로 30분 안에 마쳐야 첫 글씨와 끝 글씨의 먹색이 똑같다. 서예는 혼과 기술을 한순간에 담아야 한다. 그러려면 완전히 몰입해야 한다.
경영도 비슷하다. 조직을 이끌다 보면 중요한 의사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많다. 매번 고민이 너무 길어지면 일을 진행하는 힘이 떨어진다. 신중하게 검토하되, 추진력 있는 일 처리가 필요하다. 평정심을 기르면서 추진력을 키울 수 있는 서예는 지금도 늘 곁에 두는 마음속 스승이자 때로는 온전히 나를 내려놓고 의지할 수 있는 지우(知友)이다.
여섯 살 때 처음 붓을 잡았다. 부친께선 54세 늦은 나이에 얻은 나를 귀여워하시며 무릎 위에 앉혀 놓고 천자문을 가르치셨다. 신문지에 붓으로 한자를 끄적였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러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서예로 방과 후 특별활동을 하면서 재미를 붙였다. 서예가로 40년 넘게 활동하게 된 게 어쩌면 운명 같다. 39세인 1997년 대한민국미술대전(국전) 서예 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뒤 3차례 국전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서예박물관인 ‘무민재(無悶齋·근심 없는 집)’에서 후학도 양성했다.
선친 때부터 수집해 온 서예 작품 3000여 점이 보물 1호다. 특히 추사 김정희 선생께서 말년에 쓴 8폭 병풍 작품을 가장 아낀다. 화려한 색으로 눈을 희롱하지 않고 단색으로 힘 있게 써내려 간 작품이다. 볼 때마다 마치 흰 종이 위의 막대기가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추사 선생은 살아있는 선을 그리셨다. 선 하나에 뼈와 근육이 있고 피부와 신경이 있다.
추사 선생께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쓴 ‘판전(板殿)이란 글자도 좋아한다. 이 글씨를 흉내 내려면 왼손으로 붓을 잡아야 한다. 전형적으로 ‘잘 쓴 글씨’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경상도 사투리로 치자면 ‘얼빵하다’는 표현이 떠오를 정도다.
그럼에도 나는 이 글자를 좋아한다. 나이가 들면 점차 글씨에 꾸밈이 들어가기 마련인데 추사의 마지막 글씨는 가장 순수했을 때의 아이 같은 모습이다. 그 속엔 성숙의 단계들이 녹아있다.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이다.
서예는 고도의 형이상학적인 예술인 것 같다. 절대 머리가 복잡할 때 하면 안 된다. 마음이 평온하고 가장 기분이 좋을 때 해야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서예는 비 오고 바람 부는 날 해도 안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맑은 물에 맑은 정신이 필요하다.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잘 안 나올 땐 사람인지라 화가 나기도 한다. 평균적으로 한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20~50장 정도는 버린다. 그래도 될 때까지 계속 쓴다.
올해 우리 신협 임직원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것도 이런 정신이다. 어떤 일을 포기하는 이유는 불가능해서가 아니라 불가능할 것 같아서다. 어렵고 힘든 일도 시작해서 포기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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