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월회의 행로난] 2023년, 평화를 상상하자
1910년 3월26일, 사형 집행 직전 일본인 관리가 안중근 의사에게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안중근 의사는 동양평화를 세 번 외치고 싶다고 하였다. 물론 일제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3·1운동 당시 독립운동가들은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세계만방에 고하여 인류평등의 대의를 천명한다”(3·1독립선언문)고 선포하였다. 조선의 독립을 ‘동양평화’, 나아가 ‘인류평등’이라는 차원에서 사유하고 실천했음이다. 지속 가능한 평화 구현을 독립의 참된 완성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계묘년 새해에 평화를 화두로 삼은 까닭이다.
개인 차원에서 누리는 평화는 한계가 분명하다. 타고난 성품 덕에 유달리 낙관적이라고 해도, 평소 마음공부에 힘써 마음의 화평을 잘 유지한다 해도, 나라가 남의 노예가 된다든지 전쟁에 휩싸이면 개인의 평화는 여지없이 깨지고 만다. 범위를 국가로 넓혀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선진국 반열에 오르고 높은 수준의 문화를 누린다고 해도, 이웃 나라가 전범국임에도 자기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타국 공격 권리를 운운하는 한, 대국굴기를 외치며 세계 유일의 패권국이 되고자 영토 확장과 군비 증강에 열을 내는 한, 국가 차원의 평화를 유지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더구나 북한은 계속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고 핵무장을 강화하고 있다. 남한도 갈수록 “눈에는 눈” 식으로 대처하고 있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주한미군이 개입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급기야 일본은 반격 능력을 보유하겠다고 선언했고 북한 공격에 남한 동의는 필요 없다고 단언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폭력과 전쟁에 집단적으로 둔감해지고 있다. 참혹한 죽음에 무감한 이들이 늘고 있다. 폭력과 전쟁, 참혹한 죽음에 무관심하다고 하여 평화가 실현된 것이 결코 아님에도 연신 그렇게들 하고 있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서 평화가 일상적으로 구현되는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다. 다시 상상이 필요하다. 인류 역사에서 무에서 유를 빚어내왔던 그 상상이 절실하다. 평화가 개인과 국가의 기본으로 우뚝 선 일상을 빚어낼 동력이 필요하다. 노력한 만큼 공평하게 살 수 있는 사회, 대비한 만큼 평온하게 살 수 있는 국가의 실현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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