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권모 칼럼] 윤석열 대통령의 수상한 ‘개혁 장사’

양권모 기자 2023. 1. 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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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에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2023.1.1 대통령실 제공

신년 기자회견을 대체했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신년사는 허망했다. 9분가량 낭독한 1971자(字)짜리 신년사는 노동개혁을 빼고는 껍데기뿐이었다. 경제위기 타개의 요체로 수출과 미래전략기술을 제시하고, 노동·교육·연금 등 3대 개혁에 대한 거친 구상을 밝힌 게 전부다. “1년에 한 번 하는 노변정담 느낌”(대통령실 관계자), 턱없다. 노조를 기득권으로 공격하고, ‘노사 법치주의’를 앞세운 윤석열표 노동개혁의 본색을 확인한 게 그나마 알맹이다.

양권모 편집인

집권 2년차의 문을 연 신년사에는 민생, 외교안보, 국내 정치 현안에 대한 내용은 하나도 담기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위로의 언어도 없었다. 협치와 통합에 대한 얘기는 한 줄도 나오지 않았다. 중차대한 집권 2년차의 청사진을 기대한 게 민망할 지경이다.

아무리 무모한들 이런 신년사로 신년 회견을 대체하나, 의문이 차오를 때 특정 언론(조선일보)과의 인터뷰가 예고됐다. 그 인터뷰에서는 남북관계, 외교안보, 경제와 부동산 정책, 3대 개혁, 선거제 개편, 대야 관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수사, 여당 대표 경선, 인사 등이 망라되기는 했다. 이 정도라면 신년회견이나 기자간담회를 통해 더 충분히 전달될 수 있었을 터이다. 굳이 신년 회견을 특정 언론과의 인터뷰로 대체한 것은 아프고 불편한 질문을 피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대통령이 하고 싶은 얘기를 일방으로 전달하고자 했기 때문일 것이다. MBC 전용기 탑승 배제와 출근길문답 중단 이후 노골화하고 있는 선별적 소통, 차별적 불통의 연장선상이다.

윤 대통령은 신년사를 필두로 가는 곳마다 3대 개혁을 설파하고 있다.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조차 “확실한 노동개혁”을 약속했다. 3대 개혁이 국정의 전부가 된 분위기다.

불편한 질문이 하나 있다. ‘어떻게’ 3대 개혁을 달성하겠다는 것인가. 윤 대통령의 개혁 언설에는 거칠게나마 ‘왜’와 ‘무엇’은 들어 있으나 ‘어떻게’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노동·교육·연금 등 3대 개혁의 골간은 모두 입법 사항이다. 3대 개혁에 의미 있는 진전이 있으려면 입법화가 필수적이다. 입법을 위해서는 협치와 정치 정상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한데 협치와 통합은 어느새 대통령의 언어에서 사라졌다. 노동은 물론 전 국민이 이해관계자인 교육, 세대갈등의 뇌관을 품은 연금 개혁은 고도의 사회적 합의와 여야의 협치 속에서야 진전을 이뤄낼 수 있다.

윤석열 정부가 지금처럼 협치를 외면해선 3대 개혁을 완수해낼 방도가 없다. 2024년 5월29일까지는 민주당이 입법권을 갖고 있다. 화물연대 파업 강경 대응처럼 공권력으로, 국회를 거칠 필요 없는 시행령으로 개혁을 추진하는 데는 한계가 뚜렷하다. 노동개혁이 노조 때려잡기와 ‘친기업 반노동’의 제도 손질에 머물면 이는 개혁이라 할 수 없다.

지금같은 여소야대 구조에서 윤석열 정권은 개혁 입법을 이뤄낼 정치력도, 능력도 없다. 그래서 기대는 게 선전전이다. 3대 개혁을 천명한 국정과제점검회의, 3대 분야 개혁간담회, 비상경제민생회의, 신년사 등은 대부분 생중계를 했다. 국민의 지지가 높은 개혁 ‘장사’는 시쳇말로 이문이 남는 일이다. 여론의 압박을 통해 야당의 협조를 끌어내면 여권에는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개혁의 지향점이 다른 데다 첨예한 진영 대립과 극단적 사정정국에서 야당이 ‘윤석열 개혁’ 입법에 협조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사실 윤 대통령에게는 개혁이 안 이뤄져도 그만이다. 개혁의 불발을, 정권의 능력이 아니라 야당 탓으로 핑계댈 수 있으면 된다. ‘국민 다수가 개혁을 원하는데 민주당 때문에 못한다’는 걸 각인시키면 족하다. 세밑의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주목받지 못했지만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예산안과 세법 개정안 처리 결과를 두고 “야당의 발목잡기”를 직접 거론했다. 지금 윤 대통령에게는 개혁을 성의껏 추진하려는데 야당이 발목잡아 못했다는 명분이 더 필요할 게다.

정권 임기 복판에 치러지는 내년 총선은 중간평가의 장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때까지 뾰족한 국정 성과를 낼 가망이 별로 없는 여권으로서는 ‘거대 야당의 반대 때문에’라는 구실만큼 요긴한 선거무기가 없다. 아마도 여권은 총선에서 국정의 성과가 아니라 야당의 반대 때문에 못한 개혁의 필요성을 앞세워 지지를 호소하고 싶을 터이다. 해서 혁명보다 어렵다는 개혁 과제를 이리 “‘무대뽀’로 밀어붙이겠다”(유승민 전 의원)고 기염을 토하는 윤 대통령, 진정 올바른 개혁의 실현을 바라고 있을까. 묻지 않을 수 없다.

양권모 편집인 sul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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