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성별 전환’ 논란의 스코틀랜드
지난 12월22일, 스코틀랜드 의회는 개인의 성별 전환을 용이하게 만드는 성별 인정법 개혁안을 통과시켰다. 개혁안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성별 전환의 최소 연령을 18세에서 16세로 낮추고, 성별 위화감(정체성 불쾌감)에 대한 의학적 진단 요건도 없앨 뿐 아니라, 개인이 선택한 성별로 살아야 하는 기간을 성인의 경우 2년에서 3개월로, 16세와 17세의 경우 6개월로 단축했다. 즉, 성별 전환에 대한 절차를 간소화하는 것이 이 법안의 핵심이다. 스코틀랜드 정부는 트랜스젠더 및 성소수자의 사생활과 존엄성을 더 존중하고자 성별 전환 절차를 단순화하였으며 이 법이 포용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주장했다.
이 법안은 의회에서 찬성 86 대 반대 39로 통과되었지만 법안에 대한 반발은 거셌다. 반대론자들은 트랜스젠더, 성소수자의 불편함에 대해서는 이해하지만 간소화된 절차를 범죄로 악용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라는 점에 우려를 표했다. 특히, 여성 전용 서비스, 공간 및 법적 보호에 대한 영향을 지적했다. <해리포터> 작가 J K 롤링은 이 법안에 대해 가장 극렬하게 반대입장을 밝힌 인물로, 법이 간소화됨에 따라 남성들이 여성 쉼터, 화장실, 탈의실, 여성 전용 병동 등 여성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에 자유로이 들어올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보호받아야 할 여성권이 위협받는다는 것이다.
현재 스코틀랜드 정부를 이끌고 있는 니컬라 스터전 총리와 쇼나 로빈슨 사회 정의 장관은 이 법안 개정이 단순한 행정 처리 간소화에 불과하다며, 트랜스젠더의 권리와 여성의 권리가 충돌할 지점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매해 성별 전환 인정 증명을 받는 사람들은 30여명에 불과한 상태로, 법 개정 후에 250~300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적은 수에 불과해 그 영향이 미미할 것이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스코틀랜드 정부의 입장과는 달리 이 개혁안이 촉발할 논쟁은 다양하고 극렬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의 젠더 정치, 정체성 문제뿐 아니라 남녀 이분법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공간들을 어떻게 재구조화할 것인지, 최근 나타나고 있는 엘리트 스포츠에서의 트랜스젠더 선수 접근권 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영국 정부는 이번 개혁안 통과를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부는 이번 개혁안이 영국 내 성범죄자, 폭력범 등이 스코틀랜드로 젠더 투어리즘을 하도록 유인하여 영국 전역의 아동, 여성 안전권이 위협받을 것이라 우려했다. 영국 정부는 이번 법안이 가질 수 있는 확장성과 영향력을 우려하여, 법 제정 전 영국 왕실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을 차단하고, 소송 제기를 통해 개혁안에 반대할 수도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특히 2010년 제정된 평등법과 이번 개혁안이 충돌하는 지점에 대한 법적 문제 제기를 고려하고 있어 이를 둘러싼 스코틀랜드 정부와의 갈등이 표면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 및 유럽 국가들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젠더 다양성을 둘러싼 논의가 서서히 확산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는 여성가족부 폐지를 목전에 두고 있다. 여가부가 폐지되면 스코틀랜드 성 전환 절차 개혁안이 드러낸 젠더 다양성과 젠더 폭력 등의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창구가 우리에게 있는지 묻고 싶다.
송지원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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