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그런 '트렌드'는 없다
새해가 밝았다. 한 해는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이어지는 자연의 순환법칙을 따른다. 인간은 그 법칙을 따라 삶의 주기를 만든다. 문화는 해를 따라 반복되는 삶에서 인간이 일궈낸 인공적 현상이다. 계절이 바뀌는 자연법칙은 만고불변하지만 문화의 양상은 시간이 흐르면서 색깔을 바꾼다.
자연법칙이 지배하는 세상에선 다시 돌아오는 하루, 한 달, 한 해의 삶이 다르지 않다. 그러나 문화의 변화가 개입하는 세상에선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지난달과 이달이 다르며, 지난해와 올해가 다르다. 그래서 인간은 어제도 떠오른 똑같은 태양을 보면서 새로운 각오를 다진다.
삶의 양상이 시절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경험한 인간은 앞으로 다가올 세상이 어떻게 펼쳐질지 호기심을 품는다. 새해라면 반드시 새로운 트렌드가 찾아오리라는 기대와 믿음이 싹튼다. 그 기대와 믿음을 '활용'하는 예언가가 생겨난다. 10여년 전부터 새해가 되면 서점에는 트렌드를 예언한 책이 넘쳐난다.
2023년 트렌드를 예언하는 책도 어림잡아 수십 종에 달한다. 주제도 점점 다양해지는 중이다. 교육, 머니, 문화, 물류, 세계, 소비, 여행, 외식, 인구, 채용, 푸드, 디지털, 라이프, 부동산, 콘텐츠, Z세대, 뉴미디어, 미래과학, 블록체인, 암호화폐, 에듀테크, 한국교회, 세계 지식, K컬처, IT, OTT 등등에 이르기까지 휘황찬란하다. 트렌드 책을 내는 일이 트렌드가 됐다.
트렌드(trend)는 원래 해안이나 산맥이 구부러진 모양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자연법칙이 만들어내는 방향의 변화와 흐름을 나타내던 말이 인간 삶의 과정이나 지향이라는 의미를 얻게 된 것은 19세기 말의 일이었다. 오늘날처럼 대중적인 패션이나 문화영역의 지배적인 경향이라는 뜻은 1950년대부터 쓰였다.
트렌드를 예언하는 책은 너도나도 '2023'이라는 연도를 붙인다. 그러나 어원에서 알 수 있듯 트렌드는 자연스러운 흐름의 변화를 가리킨다. 인공적 문화의 산물인 1년 주기 달력을 단위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새해 트렌드를 예언한 책은 대부분 지난해 여름부터 가을 사이에 출판됐다. 서너 달 전, 심지어는 예닐곱 달 전부터 새해의 유행을 내다본 셈이다.
트렌드는 문화의 산물이다. 문화는 제도, 관습, 이념, 정서로 구성된다. 이 중 제도는 인위적 변화가 가장 쉬운 요소다. 인간은 새로운 제도가 시작되는 날을 임의로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관습, 이념, 정서는 그렇지 않다. 한번 자리 잡으면 오랜 시간 변하지 않으려는 속성이 있다. 물론 4가지 요소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어떤 경향을 만들어낸다. 그렇다고 해도 그런 경향이 1년을 주기로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아니다.
트렌드의 예언은 갑자기 일어나는 상황을 아우르지 못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찾아오기 전 이를 예언한 트렌드 책은 하나도 없었다. 코로나19가 만들어낸 트렌드는 오히려 다음 해에 반영됐다. 트렌드의 예언이 그나마 정확성을 가지려면 빅데이터를 활용한 정교한 과학적 분석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직관과 추측으로 전락하고 만다. 트렌드 책은 대부분 1년이 가기도 전에 서점에서 자취를 감춘다. 지난해 나온 트렌드 책이 얼마나 '용하게' 미래를 점쳤는지 살펴보면 씁쓸하다. 새로운 유행이 펼쳐지리라는 점사의 대부분은 빗나가고 만다.
거꾸로 트렌드 책이 오히려 트렌드를 만들어내는 경향도 있다. 현상은 그렇지 않은데 트렌드가 그렇다고 하니 마치 그렇게 살아야 할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대부분 트렌드 책은 독자의 심리를 이용한다. 남들이 모두 그렇게 산다고 하니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할 것 같은 군중심리를 자극한다. 남 따라 살아보는 결과에 대해서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남들 사는 대로 살아보라는 유혹은 주체의 사고, 감정, 행위를 마비시킨다. 그런 '트렌드'는 없다.
임대근 한국외대 인제니움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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